1909년 음력 9월 13일(양력 10월 26일)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새 옷을 모두 벗어 놓고 수수한 양복 한 벌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권총을 지니고 바로 하얼빈 역으로 나갔다. 그때가 오전 7시쯤이었다. 정거장에 이르러 보니, 러시아 장관과 군인들이 많이 나와 이토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9시쯤 되어 드디어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도착했다. 이토가 열차에서 내렸다. 군대가 경례하고, 군악대 연주소리가 하늘을 울리며 귀를 때렸다. 나는 곧바로 군대가 늘어서 있는 뒤에까지 이르러 앞을 보았다. 러시아 일반 관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맨 앞에 누런 얼굴에 흰 수염을 가진 늙은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저것이 필히 늙은 도둑 이토일 것이다”
라고 생각한 나는 곧 단총을 뽑아들고 그의 오른쪽 가슴을 향해 신속히 네 발을 쏘았다. 다시 뒤쪽을 향해 일본인 단체 가운데서 가장 의젓해 보이며 앞서 가는 자를 향해 다시 세 발을 잇달아 쏘았다.
이때가 바로 1909년 음력 9월 13일 상오 9시 반쯤이었다. 나는 곧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대한 만세를 세 번 부른 다음, 정거장 헌병 파견대로 끌려갔다. 러시아 검찰관이 한국인 통역과 같이 와서 이름과 어느 나라 어디에 살며, 어디에서 와서 왜 이토를 해쳤는가를 물었다. 나는 대강 설명해 주었는데 통역하는 한국인의 한국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때 사진을 찍는 자가 와서 사진을 서너 차례 찍었다.
저녁 8~9시쯤 러시아 헌병 장교가 나를 마차에 태우고 어느 방향인지 모를 곳으로 갔다. 내가 도착한 곳은 일본 영사관이었다. 그는 나를 넘겨주고 가버렸다. 그 뒤에 그곳 관리가 두 차례 심문했고, 4~5일 뒤에 미조부치 검찰관이 와서 다시 심문했다.
미조부치 검찰관이 이토 히로부미를 가해한 일에 대해 내게 물으므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요,
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요,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요,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요,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요,
철도·광산·산림·하천 등을 마음대로 빼앗은 죄요,
제일은행권 지폐를 발행, 마음대로 사용한 죄요,
군대를 해산시킨 죄요,
교육을 방해하고 신문 읽는 권리를 금지시킨 죄요,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요,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요,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요,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분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요,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죄요,
일본 현 천황의 아버지 효명천황을 살해한 죄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