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빨리 가시오. 어제 아랫마을에 일본군이 왔었소. 그들은 죄 없는 양민을 다섯 사람이나 묶어 놓고 의병들에게 밥을 주었다는 구실을 붙여 그 자리에서 쏘아 죽이고 갔다오. 여기도 때때로 와서 뒤지니 나를 원망치 말고 어서들 가시오.”

 

우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밥을 받아 산으로 올라왔다. 세 사람이 조밥을 똑같이 나눠 먹었다.

 

우리는 다시 산을 넘고 내를 건너 방향도 모르고 걸었다. 언제나 낮에는 엎드려 있다가 밤길을 걸었다. 장맛비가 그치지 않아 힘이 들었다. 며칠 뒤 어느 날 밤이었다. 어느 집 문을 두드리며 주인을 불렀더니 주인이 나와 내게 말했다.

 

“너는 틀림없이 러시아에 입적한 자일 것이니, 차라리 일본 군대에 묶어 보내야겠다.”

 

그리고는 몽둥이로 때리며 같은 패거리를 불러 나를 묶으려 했다. 나는 형세가 위급해 몸을 피해 도망쳤다. 그러다 보니 좁은 길목을 지나게 됐는데, 그곳은 일본 병사가 파수를 보고 있었다. 캄캄한 가운데 지척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맞부딪치자, 일본 병사가 나를 향해 총을 서너 발 쏘았으나 다행히 맞지 않았다.

 

나는 급히 동료 두 사람과 함께 산 속으로 피해 들어가 다시는 큰길로 나가지 못하고, 산길로만 다녔다. 이후 4~5일 동안 다시 전과 같이 밥을 얻어먹지 못하니, 춥고 배고프기가 전보다 더 심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이렇게 권했다.

 

“두 형은 내 말을 믿고 들으시오. 세상 사람들이 만일 천지간의 큰 임금이요, 큰 아버지인 천주님을 믿고 섬기지 않는다면 금수만도 못한 것이오. 더구나 지금 우리는 죽을 처지를 면하기가 어렵게 되었소. 그러니 빨리 천주 예수의 진리를 믿어 영혼을 구제받아 영생을 얻는 것이 어떻겠소?”

 

그리고 나는 천주가 만물을 창조하신 도리와, 지극히 공평하고 지극히 의롭고 선악을 상벌하는 도리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내려와서 속죄하는 도리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두 사람은 내 말을 들은 뒤 천주를 믿겠다고 했다. 나는 곧 교회의 규칙대로 대리하여 세례를 주었다.

 

의례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인가를 찾았다. 다행히 깊은 산 외진 곳에 초가집 한 채를 찾아 문을 두드려 주인을 불렀다. 잠시 후 노인 한 분이 나와 우리를 방 안으로 맞아들였다. 인사를 마치고 밥을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분은 곧 어린아이를 시켜서 음식을 가득 차린 상을 주었다.

 

염치 불구하고 한판 배부르게 먹은 뒤 정신을 차리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무려 12일 동안 겨우 두 끼 밥을 먹고 목숨을 부지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우리는 집주인 노인에게 크게 감사드리고, 그동안 겪은 고생을 자세히 설명해 드렸더니 노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렇게 나라가 위급한 때를 만나 그 같은 곤란을 겪는 것은 국민의 의무라고 할 것이오. 흥겨움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고생이 끝나면 즐거움이 온다는 말이 있지 않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런데 지금 일본 병사들이 곳곳마다 뒤지고 있으니 길을 가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이오. 그러니 꼭 내가 이르는 대로 따르시오.”

 

노인은 어디로 해서 어디로 가면 지름길로 갈 수 있어 쉬울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두만강이 멀지 않으니 속히 건너 돌아가서 뒷날 좋은 기회를 이용해 큰일을 도모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나는 노인의 성명을 물었으나 노인은 

 

“깊이 물을 것 없소” 

 

하고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노인에게 깊이 감사하고 작별한 뒤, 그의 지시대로 따라서 며칠 뒤에 세 사람 모두 무사히 두만강을 건넜다. 그제야 겨우 마음을 놓고 어떤 마을의 어느 집에 이르러 며칠 동안 편안히 쉴 수 있었다. 그곳에서 비로소 옷을 벗어 살펴보니 거의 다 썩어 몸을 가리기 어려운 지경이었고, 이가 득실거려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전투에 나선 이후로부터 날짜를 헤아려보니 벌써 한 달 반이 지났다. 그동안 집 안에서 자 본 적이 없고 언제나 야외에서 밤을 지냈으며, 장맛비가 쉬지 않고 퍼부었으니 그 갖가지 고초는 글로 다 적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