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나는 분함을 참을 수 없어 두통이 심했으나 며칠 뒤에 나았다. 그 후 한 달가량은 무사하게 지나는가 했는데 또다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하루는 검찰관이 내게 말했다.

 

“공판일이 이미 6~7일 뒤로 정해졌소. 그런데 영국 변호사나 러시아 변호사는 허가되지 않고, 이곳에 있는 관선 변호사가 선임됐소.”

 

나는 혼자 생각했다.

 

‘전에는 내게 유리하거나 중간 정도의 판결이 날 것으로 희망했는데 그것은 지나친 기대였구나. 이제는 불리한 판결이 나겠구나.’

 

그 뒤 공판 첫날이 돼 법원 공판석에 앉았다. 정대호·김성옥 등 다섯 사람은 이미 무사히 풀려 돌아갔고, 우덕순·조도순·유동하 세 사람은 나와 함께 피고로 출석하게 됐다. 방청인도 수백 명이었다. 한국인 변호사 안병찬 씨와 전에 허가를 받았던 영국인 변호사가 참석했으나, 변호권을 얻지 못해 다만 방청할 따름이었다.

 

재판관이 출석하자 검찰관이 심문한 문서에 의해 대강의 경위를 물었다. 그런데 도중에 내가 자세한 의견을 진술하려 하면, 재판관은 그저 회피하기에 급급하며 내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아 내 의견을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이미 그 까닭을 알기 때문에 기회를 봐 몇 가지 목적을 설명하려 했다. 그랬더니 재판관은 크게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즉시 방청을 금지시키고 다른 방으로 물러갔다.

 

그러더니 조금 뒤에 재판관이 다시 출석해 내게 다시는 그 같은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오늘 내가 이렇게 당하는 것이 꿈인가, 현실인가? 나는 당당한 대한국의 국민인데 어째서 오늘 일본 감옥에 갇혀 있는가? 더구나 내가 일본 법률에 따라 재판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언제 일본에 귀화라도 했다는 말인가? 판사도 일본인, 검사도 일본인, 변호사도 일본인, 통역관도 일본인, 방청인도 일본인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벙어리가 연설하고, 귀머거리가 방청하는 것 아닌가? 내가 진정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꿈이라면 어서 깨어나라, 어서 빨리 깨어나라!’

 

이러한 지경이 되니 설명이고 무엇이고 다 필요가 없었다. 아무런 말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재판관 마음대로 하라. 나는 다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다.”

 

다음날 검찰관이 피고의 죄상을 설명한 후 내게 사형을 구형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으면 많은 한국인이 그 행동을 본뜰 것이므로 일본인들이 이를 두려워하고 겁이 나서 마음 놓고 지낼 수 없습니다.”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혼자 생각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 협객과 의사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들이 모두 나를 본떠 그랬단 말인가? 속담에 열 사람의 재판관과 친해지기보다는 단 한 가지라도 죄가 없기를 바란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말 옳은 말이다. 만일 일본인이 죄가 없다면 무엇 때문에 한국인을 두려워하고 겁낸다는 말인가? 그 많은 일본인 가운데 왜 이토 한 사람만이 피해를 입어야 했다는 말인가? 오늘 또다시 한국인을 겁내는 일본인이 있다면 그는 바로 이토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내가 사사로운 원한으로 이토에게 해를 가했다고 하는데, 나는 본래 이토를 알지 못했는데 무슨 개인적인 원한이 있다는 말인가? 내가 만일 이토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 그랬다면, 검찰관은 내게 무슨 사사로운 원한이 있어 이런다는 말인가? 만일 검찰관의 말대로라면 세상에는 공법과 공적인 일은 없고, 모두 사적인 정과 사적인 혐오만이 존재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미조부치 검찰관이 나를 개인적인 혐오 때문에 사형을 구형한다면, 또 다른 검찰관이 미조부치의 죄를 심사한 뒤에 같은 형벌을 구형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세상 일이 언제나 끝날 것인가?

 

또 이토가 일본 천지에서 가장 높고 큰 인물이어서 일본 4천여 만 인구가 모두 존경하기 때문에 내 죄가 크다고 생각하고 중대한 형벌을 구형한다면 왜 하필 사형을 구형하는가? 일본인이 재주가 없어 사형보다 더한, 극히 중대한 형벌을 미리 마련해 두지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형을 경감해 준다고 생각해서 한 것이 그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