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하는 말도 일리는 있다만, 그것은 다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가족을 외국으로 옮긴다는 것은 잘못된 계획이다. 만약 너희 나라 2천만 민족이 모두 너같이 행동한다면 나라 안은 텅 빌 것이고, 그것은 바로 곧 원수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우리 프랑스가 독일과 싸울 때 두 지역을 비워 준 것을 너도 알 것이다. 

 

지금껏 40년 동안 그 땅을 되찾을 기회가 두어 번이나 있었지만 그곳에 있던 뜻있는 사람들이 모두 외국으로 피해 갔기 때문에 그 목적을 달성치 못했다. 그러니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한 해외에 있는 동포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국내 동포에 비해 나라 사랑의 마음이 곱절은 더하니 서로 모의하지 않아도 같이 일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주변의 여러 나라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네가 하는 말을 들으면 모두가 가엾고 안 됐다고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한국을 위해 군사를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각국은 이미 한국의 참상을 알고 있으나, 각기 제 나라 일에 바빠 전혀 남의 나라를 돌봐 줄 겨를이 없단다. 그러나 만일 훗날 때가 돼 운이 좋으면 혹시라도 일본의 불법행위를 성토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정이 이러하니, 오늘 네가 한 설명은 별로 효과가 없을 것 같다. 옛말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너는 속히 본국으로 돌아가 우선 네가 해야 할 다음과 같은 일을 행하도록 해라. 

 

첫째는 교육의 발달이요. 둘째는 사회의 확장이요. 셋째는 민심의 단합이요. 넷째는 실력의 양성이다. 이 네 가지를 확실히 성취시키기만 하면 2천만의 마음의 힘이 반석과 같이 든든해져 비록 1천만 문의 대포를 갖고도 능히 공격해 깨뜨릴 수가 없을 것이다. 사나이 한 사람의 마음도 빼앗기 어렵거늘, 어떻게 2천만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하면 강토를 빼앗겼다는 것도 형식적인 것일 뿐이요, 조약을 강제로 맺었다는 것도 종이 위에 적힌 빈 문서일 뿐이므로 침략자의 획책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거침없이 사업을 이룰 수 있고, 목적도 반드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말한 이 방책은 세계 모든 나라에 두루 통하는 원칙이므로 네게 권유하는 것이다. 잘 헤아려 보도록 해라.”

 

그 말을 다 들은 후에 나는 대답했다.

 

“신부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곧 행장을 꾸려 1905년 12월 상해로부터 기선을 타고 진남포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집안소식을 알아보았다. 그동안에 가족들은 이미 청계동을 떠나 진남포로 왔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병세가 더욱 악화돼 세상을 뜨셨기 때문에 가족들은 아버지의 영구를 모시고 청계동으로 다시 돌아가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통곡하며 몇 번이나 까무러쳤다.

 

다음날 길을 떠나 청계동에 이르러 상청(喪廳)을 차려 놓고 며칠간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 상례를 마치고 나서 가족들과 함께 그해 겨울을 청계동에서 지냈다.

 

그때 나는 술을 끊기로 맹세했고, 그 기한을 대한이 독립하는 날까지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