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에서 이러한 일을 하며 지내고 있을 때 고향집에서 아버지의 병환이 위중하다는 편지가 왔다. 급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곧장 행장을 차려 고향으로 떠났다. 마침 계절이 한겨울이라 몹시 추웠고, 온 세상이 흰 눈에 덮이고 하늘에서는 찬바람이 불어 닥쳤다.
독립문 밖을 지나면서 돌이켜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친구가 죄도 없이 감옥에 갇혀 풀려나지 못하고, 이 추운 겨울을 차가운 감옥 안에서 고생하며 지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느 때나 돼야 저렇게 악한 정부를 단숨에 부숴버리고 개혁해 정부 내의 문란한 신하 놈들과 도적질하는 놈들을 쓸어버린단 말인가? 언제 우리는 당당한 문명 독립국이 돼 국민의 자유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피눈물이 솟아올라 차마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죽장망혜로 혼자 천 리 길을 걸어 고향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마침 말을 타고 역시 고향으로 향하던 이웃 친구 이성룡을 만났다.
이성룡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잘 만났네. 서로 길동무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면 참 좋겠네.”
“한 사람은 말을 타고 가고, 한 사람은 걸어가는데 어떻게 동행이 되겠나?”
“그렇지 않네. 이 말은 경성에서부터 값을 치르고 세를 낸 말일세. 그런데 날씨가 추워서 말을 오래 탈 수가 없네. 자네와 몇 시간마다 번갈아 타고 걸으면 길도 빠르고 지루하지도 않을 걸세. 그러니 사양 말고 어서 타게나.”
서로 길동무가 되어 가다 보니 며칠 뒤에는 연안읍에 이르렀다. 그 지방에서는 그해 날이 가물고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들었다. 그때 나는 말을 타고 이성룡은 뒤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마침 말을 끌고 가면서 우리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마부가 전신주를 가리키며 욕하면서 말했다.
“지금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전보를 설치해 공중에 있는 전기를 몽땅 거둬다가 전보통 속에 가둬 두었소. 그러니 우리나라의 공중에는 전기가 없게 되니 비가 만들어지지 않아 이렇게 가뭄이 드는 것이라오.”
나는 웃으며 타이르듯 말했다.
“어찌 그럴 리가 있겠소. 당신은 경성에서 오래 살았다면서 어찌 그렇게 무식하오.”
그러자, 그는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말채찍으로 내 머리를 두세 번이나 마구 때리며 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네가 어떤 놈이기에 나를 보고 무식한 놈이라고 하는 거야.”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마부가 왜 그러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더구나 그곳은 사람이 지나지 않는 곳이었고, 또 그놈의 행동이 하도 흉악했기 때문에 나는 말 위에 앉아서 내려오지도 않고 또 대꾸도 않은 채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웃기만 했다.
이성룡이 마부를 붙잡고 만류해 다행히 큰 화를 모면하기는 했으나, 내 의관은 이미 온통 엉망진창이 됐다.
이윽고 연안 도심에 이르자, 그곳 친구들이 내 꼴을 보고 놀라 묻기에, 까닭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랬더니 모두 분노해 마부를 법관에게 데려가 징벌하자고 했다. 그러나 내가 친구들을 말리며 말했다.
“이 자는 정신 나간 미친 놈이니, 손댈 것 없이 돌려보내자.”
그러자 친구들도 동의해 마부를 그냥 돌려보내 주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집에 이르러 보니, 아버지 병환은 차츰 차도가 있어 몇 달 뒤에는 완전히 회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