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웃으며 그에게 물어 보았다.
“댁은 누구시오?”
“내 이름은 정명섭일세.”(현재 그는 한성부 재판소 검찰관으로 재직 중이다.)
나는 다시 말했다.
“댁은 옛 글을 읽지 못했소? 예로부터 지금까지 어진 임금과 훌륭한 재상은 백성을 하늘처럼 알았고, 어리석은 임금과 탐관오리들은 백성을 밥처럼 알았소. 그랬기 때문에 백성이 부유하면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약하면 나라가 약해지는 것이라오. 이처럼 어지러운 시대에 댁들은 국가를 보필하는 신하로서 임금의 거룩한 뜻을 받들지 않고, 이같이 백성을 학대하니 어찌 국가의 앞날이 통탄치 아니하겠소? 하물며 지금 이 방은 재판소가 아니오. 댁이 만일 5천 냥을 갖고 그것으로 빚을 갚고자 한다면, 나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내 말을 들은 정명섭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고, 다시 김중환이 나섰다.
“두 사람이 서로 다툴 것 없네. 내가 며칠 뒤에 5천 냥을 갚아줄 테니 그대는 그리 알고 너그러이 용서하게나.”
이렇게 말하며 김중환이 너덧 번이나 애걸하므로 어쩔 수 없이 갚을 날짜를 정하고 물러 나왔다.
한편 그 사이에 이경주가 한원교의 주소를 알아내어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 상의했다.
“한원교는 세력가이므로 법관이 불러도 무슨 핑계를 대고 도망가기 때문에 잡아다가 재판을 받게 할 수 없을 것이오. 그러니 우리가 먼저 가서 한원교와 여자를 함께 잡아 법정으로 끌고 가서 재판을 받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경주가 앞장서서 동지 몇 사람과 한원교가 사는 집으로 가서 뒤져보았으나, 두 사람은 미리 눈치를 채고 피해 버렸기 때문에 잡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데 이제 한원교가 도리어 이경주를 한성부에 고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유인즉, 이경주가 자기 집 안마당까지 들어와 늙은 어머니를 구타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성부에서는 이경주를 잡아다가 현장 조사를 하는 자리에서 증인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 이름을 대어 나도 역시 붙들려 가게 됐다.
한성부에 도착해 보니 검찰관이 바로 정명섭이었다. 정명섭은 나를 보자 얼굴에 성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오늘은 틀림없이 그로부터 며칠 전에 김중환의 집에서 다툰 일로 보복을 받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죄 없는 나를 감히 누가 해칠 것이냐 하고 생각하며 앉아있는데, 검찰관이 내게 물었다.
“그대가 이경주와 한원교, 두 사람의 일을 증언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왜 한원교의 어머니를 때렸는가?”
“그런 일은 없었소. 그런 일은 애초부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소? 어찌 남의 늙은 어머니를 때릴 수 있다는 말이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남의 집 안마당까지 침입해 들어갔는가?”
“나는 남의 집 안마당에 들어간 일이 없소. 다만 이경주의 집 안마당에는 들어간 일은 있소이다.”
“어째서 그것을 이경주의 집 안마당이라고 하는가?”
“그 집은 이경주의 돈으로 산 집이요, 방 안에 있는 살림살이도 모두 이경주가 예전에 쓰던 것들이요. 노비들도 역시 이경주가 부리던 노비요, 그 아내도 바로 이경주가 사랑하던 아내라오. 그러니 그 집이 이경주의 집이 아니고 누구 집이라는 말이오?”
검찰관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그때 문득 보니 한원교가 내 앞에 서 있기에 급히 그를 불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