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원교! 내 말을 들어보아라. 무릇 군인이란 국가의 막중한 임무를 맡는 사람이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정의의 마음을 배양해 외적을 토벌하고, 조국 강토를 지키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당당한 군인의 직분이다. 그런데 너는 하물며 장교가 돼 선량한 백성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고, 재산을 토색질하며 자기 세력만 믿고 도무지 꺼리는 것이 없구나.
만일 경성에 너 같은 도둑놈만 산다면, 경성놈들만 자식 낳고, 손자 낳고, 집을 보전하고, 생업을 가질 것 아니냐? 그렇다면 저 시골의 약한 백성은 아내와 재산을 모두 경성놈들한테 빼앗겨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냐? 세상에 어찌 백성 없는 나라가 있단 말이냐? 너 같은 경성놈은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
그런데 미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찰관이 책상을 치면서 큰 소리로 나를 꾸짖으며 말했다.
“이놈! (이 자는 이렇게 내게 욕했음) 경성놈들, 경성놈들 하는데, 경성이 어떤 분이 사는 곳(이 자는 황제 등 고관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먼저 화부터 냈음)인지나 알고 그런 말을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댁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시오? 내가 말한 것은 한원교를 두고, 너 같은 도둑놈이 경성에 많이 있다면, 오직 경성놈들만 생명을 보전할 것이요, 시골 백성은 모두 죽을 것이라고 한 말이오. 그러니 만일 한원교 같은 놈이라면 당연히 그 욕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와 같지 않은 사람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소? 댁이 내 말을 잘못 듣고 오해한 것이라오.”
그러자 정명섭이 다시 말했다.
“지금 자네가 하는 말은 잘못한 말을 정당화하려고 그럴듯한 말로 꾸며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대꾸했다.
“그렇지 않소이다. 물론 그럴듯한 말로 잘못한 말을 꾸며댈 수도 있지만 물을 가리켜 불이라 한들 누가 그것을 믿겠소?”
내 말을 들은 검찰관은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하인을 시켜 이경주를 감옥에 가두게 한 뒤에, 나를 보고 같이 가두겠다고 소리쳤다. 나는 너무도 화가 나서 외쳤다.
“어째서 나를 가둔다는 말이오? 오늘 내가 여기 온 것은 다만 증인으로 불려온 것이지 피고로 붙들려온 것이 아니라오. 더구나 1천만 가지 조항의 법률이 있다 해도 죄 없는 사람을 잡아 가두라는 법은 없을 것이오. 또 비록 감옥이 수백 수천 칸이 된다고 해도 죄 없는 사람을 가둬 두는 감옥은 없을 것이오. 오늘과 같은 문명시대에 댁이 어찌 감히 사사로이 야만스러운 법률을 적용하려 하시오?”
이렇게 말을 마치고, 나는 당당하게 앞을 향해서 문밖으로 나와 여관으로 돌아왔다. 검찰관도 더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