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천주는 누구입니까? 한 집안 가운데는 그 집 주인이 있고, 한 나라에는 임금이 있듯이, 이 천지 위에는 천주님이 계십니다. 천주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삼위일체(성부·성자·성신으로 그 뜻이 깊고 커서 솔직히 나는 아직 깨닫지 못했음)의 지위와 품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천주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알며, 죄악에 물들지 않고 오로지 착하기만 하며, 지극히 공정하고, 더없이 의로운 분으로 천지만물과 해와 달과 별을 만들어 운행하게 하고, 착하고 악한 것을 상주고 벌주시는, 둘도 없는 오직 하나뿐인 큰 주재자이십니다.

 

만일 어떤 집안에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 집을 짓고 가업을 일궈 그 자식에게 물려줘 아들이 재산을 지니고 잘 살게 됐다고 합시다. 그런데 아들은 제가 잘나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어버이를 섬길 줄 모른 채 불효막심하다면 그 죄가 무겁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어떤 나라의 군주가 올바른 정치를 해 백성들의 생업을 보호하고 모든 국민이 태평을 누릴 수 있게 됐다고 합시다. 그런데 백성이 군주의 명령에 복종할 줄 모르고, 전혀 충성하고 애국하는 성향이 없다면 그 죄 또한 매우 심각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큰 아버지요, 큰 군주이신 천주님께서는 하늘을 만들어 우리를 덮어 주시고, 땅을 만들어 우리를 떠받쳐 주시며, 해와 달과 별을 만들어 우리를 비춰 주시고, 만물을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쓰게 하시니, 실로 그 크신 은혜가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사람들이 이를 잊어버리고 제가 잘난 줄 알고 충성과 효도를 다하지 않고, 은혜에 보답하는 기본 의리를 망각한다면 그 죄는 비길 데 없이 큰 것입니다. 이 어찌 두렵고, 삼가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공자님도 일찍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데도 없다”라고 말입니다.

 

천주님은 지극히 공정해 착한 일에 대해 반드시 보답해주고, 악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벌을 내립니다. 공적과 죄과의 심판은 몸이 죽는 날 행해지는 것입니다. 착한 이는 영혼이 천당에 올라가 영원무궁한 즐거움을 받을 것이요, 악한 자는 영혼이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히 끝없는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군주도 상을 주고 벌을 주는 권세를 가졌거늘 하물며 천지를 다스리는 거룩한 큰 군주이신 천주님께서 어찌 그러한 권세가 없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왜 천주님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착한 것은 상을 주고 악한 것은 벌을 주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주는 상과 벌은 유한한 것이지만 선악은 무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죽여서 시비를 가릴 때, 죄가 없으면 그만이고, 죄가 있다면 그 한 사람만 다스리는 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수천만 명을 죽인 죄를 지었다면, 어찌 그 한 몸뚱이만 가지고 그 죄를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만일 어떤 사람이 수천만 명을 살린 공로가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로서 그 상을 다 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사람의 마음이란 때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지금은 착하다가도 다음에는 악한 일을 하기도 하고, 혹은 오늘은 악하다가도 내일은 착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때마다 선악에 상벌을 주기로 한다면 이 세상에서 인류가 보전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이 세상의 벌은 다만 악인의 몸을 다스릴 뿐이고, 그의 마음을 다스리지는 못하지만 천주님의 상벌은 그렇지 않습니다.

 

천주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알며, 죄악에 물들지 않고 오로지 착하기만 하며, 지극히 공정하고, 더없이 의로운 분이기 때문에 사람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너그러이 기다려 주십니다. 그러다가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날, 선악의 경중을 심판해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영혼으로 하여금 영원무궁한 상벌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상은 천당의 영원한 행복이요, 벌은 지옥의 영원한 고통으로서, 천당에 오르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한 번 정해지면 다시 변동이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