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같은 건의를 어윤중은 끝내 들어주지 않다가 뜻밖에 민란을 만나 난민들의 돌에 맞아 참혹하게 죽으니, 그의 모략도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독사가 물러나자 맹수가 나온다는 격으로 이번에는 민영준이 새로 일을 꾸미어 해치려 들었다.

 

민씨는 세력가이었기 때문에 사태는 더욱 위급해졌다. 아버지는 계획을 더 이상 세우지 못하고, 기력도 다해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버지는 프랑스 사람의 천주교 성당으로 몸을 피해 들어갔다. 그곳에 자취를 감추고 몇 달 동안 숨어 있으며, 프랑스 사람의 보호를 받고 있는 동안 민씨의 일도 끝이 나서 아버지는 무사하게 됐다.

 

아버지는 성당에 오래 머물며 강론도 많이 듣고, 성서도 많이 읽어 진리를 깨닫고 교인이 됐다. 그 후부터 아버지는 복음을 전파하고자 교회 안에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보록 씨와 함께 많은 천주교 관련 서적들을 싣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십칠팔 세쯤의 젊은 나이였으며 힘이 세고 기골이 빼어남에 있어 남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나는 평생 타고난 특성으로 즐겨하던 일이 네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친구들과 의리를 맺는 것이오.

 

둘째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오.

 

셋째는 총으로 사냥하는 것이오.

 

넷째는 날쌘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협심 있고 사나이다운 사람이 어디서 산다는 말만 들으면, 멀고 가까운 것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총을 지니고 말을 달려 찾아갔다. 그래서 과연 그가 동지가 될 만한 인물이면 분통 터지는 일을 정의로운 기운을 발산하며 토론하고, 유쾌하게 실컷 술을 마시고, 취한 후에 노래하고 춤도 추고 혹은 기방에서 놀기도 했다.

 

기방에서는 기생에게 다음과 같이 야단을 치기도 했다.

 

“너희는 뛰어난 자태와 얼굴을 가졌으니 호걸 남자와 짝을 지어 같이 늙는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이겠느냐?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돈 소리만 들으면 침 흘리며 실성한 사람처럼 염치불구하고 오늘은 장씨, 내일은 이씨에게 붙어 금수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냐.”

 

계집들이 내 말을 수긍하지 않고 나를 몹시 미워하거나 공손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면, 나는 욕을 퍼붓기도 하고 매질도 했다. 이 때문에 친구들은 나에게 전구(電口ㆍ번개입)라는 별도의 호칭을 붙여 주었다.

 

하루는 동지 육칠 명과 산에 가서 노루사냥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탄환이 구식 6연발총의 구멍에 걸려서 빼낼 수도 없고 들이밀 수도 없게 됐다. 그래서 나는 쇠꼬챙이로 총구멍을 뚫으려고 아무런 생각 없이 마구 쑤셔댔다. 그랬더니 갑자기 “쾅!” 하고 터지는 소리에 혼비백산해 머리가 붙어 있는지 없는지, 목숨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도 깨닫지 못하게 됐다.

 

이윽고 정신을 차려 자세히 살펴보니, 탄환이 폭발해 쇠꼬챙이와 탄환이 함께 오른손을 뚫고 공중으로 날아간 것이었다. 나는 곧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비록 꿈속에서도 그때 놀랐던 일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 뒤에 또 한 번은 남이 잘못 쏜 엽총의 산탄 두 개가 내 등 뒤를 뚫었으나 별로 중상은 아니었고, 곧 총알을 빼내 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