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스턴 양을 존스 경감의 마차로 포레스터 부인 댁까지 바래다 주었다. 거의 2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포레스터 부인은 잠을 자지 않고 걱정스럽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씨가 퍽 고운 부인임에 틀림없다. 가정 교사인 모스턴 양이 무사히 돌아오도록 기도하고 있었음을 그 태도로 알 수 있었다.

    부인은 나에게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다시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핀친 골목을 향해 달렸다. 밤은 아주 깊어, 셔먼의 가게 문은 아무리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다시 문을 힘껏 두드리자 2층 창문이 열리며 어떤 사나이가 아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어떤 놈이야! 썩 꺼지지 못해? 그러지 않으면 개를 40마리 한꺼번에 풀어놓겠어!"

    "개는 한 마리면 충분합니다."

    "뭐야? 그렇다면 뱀도 함께 보내주마!"

    "전 셜록 홈즈의 부탁으로 왔습니다." 그러자, 창문이 닫히고 누군가 층계를 퉁탕거리며 내려오더니 문이 열렸다. 셔먼은 마르고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었다.

    "홈즈의 친구라면 언제나 환영이지. 이맘때쯤 짓궂은 동네 녀석들이 시끄럽게 굴어서 또 그 놈들인 줄 알았어. 이봐! 곰 곁에 가면 안돼. 물어뜯는다네. 그래, 홈즈는 뭐가 필요한 건가?"

    "더비를 빌리자고 하더군요."

    "더비는 그 왼쪽 7호 우리에 있네."

    노인은 동물 우리를 지나 개집의 문을 열었다. 뛰어나온 개는 털이 길고 귀가 축 늘어진, 험상궂은 잡종이었다. 노인이 주는 각설탕을 더비에게 주었더니, 더비는 잠시 망설이다 그것을 받아 먹었다. 나는 곧 더비와 친해질 수 있었다.

    마차를 타고 더비와 함께 폰지셀 별장에 돌아오자, 새디어스 솔트는 물론 고용인들도 모두 바솔뮤 살해 공범으로 묶여 있었다. 홈즈는 파이프를 물고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더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더비, 잘 왔다. 이제 네가 한바탕 활약할 차례야."

    더비를 책상 다리에 매어 놓고, 홈즈는 나와 함께 시체가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경찰 한 명이 방을 지키고 있었다. 홈즈는 경관에게서 램프를 받아 들고 내게 말했다. "와트슨, 그 종이를 내 목에 걸어 주게. 그리고 내 구두와 양말은 아래에 갖다 두고, 손수건을 크레오소트에 적셔주게. 자, 그럼 다시 천장으로 올라가 볼까."

    우리는 천장으로 올라갔다. 홈즈는 천장 바닥에 난 발자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는 이 발자국을 어린애 발자국이라고 했지. 보통 어린애의 것과 좀 다른 게 없나?"

    "발가락 사이가 벌어져 있네."

    "바로 그게 중요한 점이라네. 이제 저 지붕의 창에 가서 냄새를 맡아 보게."

    나는 그 말대로 코를 창문 가까이 대 보았다. 타르 냄새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타르 냄새가 난다고 말하자, 홈즈는 빙그레 웃었다. "그럼 아래로 내려가 더비와 함께 마당에서 내 재주를 구경해보게나."

    나는 더비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왔다. 홈즈는 지붕 위를 이리저리 걸어다니다, 창이 있는 곳에서 아래로 소리쳤다.

    "와트슨, 어디 있나?"

    "여길세."

    "발자국을 따라 여기 왔는데, 거기 검은 것은 도대체 뭔가?"

    "물통이야."

    "거기 뚜껑이 있나?"

    "응, 있어."

    "사다리 같은 건 혹시 없나?"

    "응, 그런 건 보이지 않는데..."

    "이상하다... 아냐, 됐어! 홈통이 있었어! 이 홈통으로 내려가겠네."

    홈즈는 램프를 들고 홈통을 따라 내려왔다. 그리고 양말과 구두를 신더니, 나한테 자랑스럽게 무언가 내밀었다. 그것은 풀로 짠 조그만 상자로, 그 안에 죽은 바솔뮤의 귀에 꽂힌 독화살과 똑같은 화살이 대여섯 개 들어 있었다.

    "범인이 서둘러 도망치다 지붕에 떨어뜨린 것 같아. 우리가 이걸 주은 것은 무척 다행이야. 그 녀석의 무기가 줄어들었으니까. 그런데 와트슨, 자네 이제부터 10킬로미터 정도 걸을 수 있겠나?"

    "암, 걸을 수 있지."

    "그럼 됐어. 자, 더비, 부탁한다. 이 손수건 냄새를 맡아 둬라."

    홈즈는 크레오소트를 적신 손수건을 더비의 코에 댔다. 더비는 앞다리로 땅을 딛고, 표정을 찡그리며 코를 실룩거렸다. 홈즈는 손수건을 버리고 더비를 물통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더비는 코를 땅에 대고 꼬리를 꼿꼿이 세우며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냄새 나는 발자국을 찾은 모양이다. 동쪽 하늘이 천천히 밝아오고 있다. 더비는 마구 파헤친 마당을 가로질러 담 밑으로 가더니, 참나무 밑에서 멈추었다. 담은 벽돌을 엇갈려 쌓아 쉽게 넘을 수 있었다. 홈즈가 먼저 넘어가 더비를 받았다. 집 밖으로 나오자 더비는 다시 코를 땅에 대고 열심히 길을 찾았다.

    "와트슨." 홈즈가 말을 걸었다. "내가 더비만 믿고 있는 것은 아니야. 다른 방법을 써도 범인은 잡을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개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범인의 이름과 인상까지 미리 알아 냈지?"

    "뭐 간단하네. 인도 경비대에서 근무하던 두 장교가 보물이 감춰진 장소를 알아내고, 스몰이라는 영국 사람이 그 장소를 나타낸 지도를 만들었지. 스몰이라는 이름은 지도에 적혀 있어. 다른 세 사람 이름은 모두 백인이 아니야. 그 장교 한 사람이 보물을 꺼내서 영국으로 돌아왔어. 스몰과 다른 세 사람이 보물에 손대지 못한 건 갇혀 있는 죄수였기 때문이야."

    "감옥에 갇힌 죄수 네 사람은 나중에 나눠 갖기로 약속하고 보물 이야기를 털어 놓았는데, 그 장교가 몰래 빼돌려서 영국으로 도망쳤다는 말이지?"

    "맞았어. 도망친 그 장교가 바로 솔트 소령이야. 그런데 인도에서 편지가 왔어. 어떤 편지인지 이젠 상상할 수 있겠나?"

    "죄수들이 감옥에서 풀려 나왔다는 소식이겠지..."

    "맞아. 하지만 풀려난 게 아니고 탈옥했을 거야. 그들이 감옥에서 풀려나올 날짜를 솔트 소령이 몰랐을 리 없으니 말이야. 그 이후 소령은 의족을 한 사나이를 경계하게 된 거야. 의족을 한 사나이는 백인이 분명해. 소령이 의족을 한 장사꾼에게 총을 쏘았다는 걸로 미루어 알 수 있지. 이 사람이 바로 스몰이야. 어때, 내 추리에 뭔가 빈 틈이 있나?"

    "없어. 아주 정확해!"

    "이제 스몰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로 하세. 그는 자기의 보물을 찾을 겸 자기를 속인 소령에게 복수하려고 영국으로 돌아왔네. 영국에 돌아와 솔트 소령의 주소를 알아 내고 그 집안 사람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지. 폰지셀 별장의 집사가 아무래도 스몰에게 넘어간 것 같아. 가정부 번스턴 부인에게 물어 보니, 그 놈은 몹시 성질이 사납다더군. 하지만 스몰은 보물이 감춰진 곳을 알 수 없었지. 그런데 소령이 병으로 앓아 눕게 되었네. 소령이 죽으면 보물이 영영 사라질 것 같아, 스몰은 창 밖에서 병실을 들여다보기도 했지. 마침내 소령이 죽자, 스몰은 그날 밤 폰지셀 별장에 침입해 방 안을 다 뒤져 보았지만 보물은 나오지 않았어. 그래서 별 수 없이 자기가 왔었다는 쪽지만 남기고 사라진 거야."

    "종이 쪽지를 남겨 두면 자기 정체를 경찰에게 알리게 될 텐데?"

    "복수하려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자기 정체를 알리고 싶은 심리가 있어. 스몰은 보물을 찾는 데 실패한 뒤에도 계속 폰지셀 별장을 지키고 있었어. 그러다, 솔트 소령의 아들인 바솔뮤가 보물을 찾아낸 기미를 알아 차렸지. 다리 불구 때문에 자기 혼자선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공범의 도움을 얻어 보물을 빼앗아 간 거야."

    "그럼 바솔뮤를 죽인 자는 스몰이 아니군."

    "그래, 스몰은 보물만 훔치면 되니까. 그런데 성질이 거친 공범은 끝내 독 화살로 바솔뮤를 죽이고 만 것이라네."

    "그 공범은 어떤 녀석인가?"

    "곧 보여줄 테니 좀 기다리게. 아, 해가 떠오르는군. 벌써 아침이 됐어. 그런데, 자네 권총을 갖고 오지 않았나?"

    "응, 하지만 지팡이가 있네."

    "그럼 됐어. 내게 권총이 있으니까, 일이 터지면 내가 그 놈을 맡지." 홈즈는 권총에 실탄을 두 발 잰 다음 저고리 주머니에 넣었다.더비는 여전히 땅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앞장 서서 가고 있었다. 훤히 밝아 오는 아침 거리에 하나 둘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윽고 광장으로 나오자 냄새를 맡으며 우리를 인도하던 더비가 갑자기 머리를 쳐들고 근방을 빙빙 돌았다.

    "왜 이러지? 냄새를 잃어버린 모양이야. 범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도망치진 못했을 텐데 어떻게 된 거지?"

    홈즈는 더비를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다 더비는 다시 냄새를 맡았는지, 이전보다 더 자신 있게 걸어갔다.

    "됐어! 이번에는 코를 땅에 대지도 않는군. 냄새가 아주 짙은 모양이야. 범인이 가까이 있다는 증거야. 자, 와트슨. 한판 벌어질지 모르니 자네도 정신 바짝 차리게."

    더비는 우리를 재목이 산더미처럼 쌓인 곳으로 데려갔다. 그 재목 더미 한가운데 커다란 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더비는 그것을 향해 마구 짖어댔다. 통에는 진한 크레오소트가 가득 들어 있었다. 홈즈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서로 바라보며 웃고 말았다. 더비는 범인의 냄새와 이 크레오소트 통의 냄새를 헷갈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