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즈는 새디어스의 발소리가 사라지자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와트슨, 경찰이 여기 오려면 30분은 걸릴 거야. 그때까지 내가 짐작한 것이 맞나 조사해 보세. 이 사건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복잡하군."

            "간단하다고?"

            "응. 우선 범인이 어디로 들어와 어디로 나갔는지 살펴볼까? 문은 어젯밤 새디어스가 돌아갈 때 잠갔다니 창문을 살펴보세."

            홈즈는 램프를 들고 창가로 나갔다.

            "창은 안으로 닫혀 있군. 창틀이나 문 장식은 상한 곳이 없고 지붕도 높아 손이 닿지 않았을 테고... 아, 창턱에 올라선 자국이 있군! 어젯밤에 이슬비가 내렸으니 창턱에 발자국이 생길 수밖에... 음, 방 안에도 같은 자국이 있어, 와트슨."

            나는 홈즈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뭐야, 이건 발자국이 아닌데...?"

            "뭔지 모르겠나? 바로 의족의 자국이야."

            "아, 범인은 바로 의족을 한 사나이란 말인가?"

            "하지만 범인은 한 사람이 아닐세. 공범이 한 사람 있어. 자네, 이 벽을 올라올 수 있겠나?"

            나는 창 밖을 보았다. 창은 땅 위에서 20미터 높이어서 도저히 기어오를 수 없을 것 같았다.

            "도저히 올라올 수 없지."

            "그냥은 불가능하지. 하지만 공범이 위에서 저기 있는 밧줄을 내려준다면 올라오거나 내려갈 수 있지. 그 공범은 범인이 일을 끝내고 내려간 다음, 밧줄을 감아 올려 방에다 버리곤 사라진 거야."

            "그렇다면 공범은 어디로 들어온 거지? 닫혀 있는 창문으로 들어왔을 리도 없고, 굴뚝으로 기어 들어왔단 말인가?"

            "저 천장 구멍으로 들어왔을 거야. 몸이 아주 재빠른 녀석이지. 범인 한 사람은 다리가 불구여서 공범의 도움을 받아 밧줄을 이용했어. 그 공범의 손은 아주 부드러운 것 같아. 밧줄에 피가 묻어 있거든? 손바닥 껍질이 벗겨지며 피가 난 거야. 자, 이젠 공범자가 드나든 천장 구멍을 조사해 보자구."

            홈즈는 발판 위로 뛰어올라 '휙' 몸을 날려 천장으로 올라갔다. 그는 램프를 받아 들고는 나도 올라오도록 했다. 천장 위 비밀의 방은 2-3미터 가량 넓이였다. 바닥은 얇은 판자여서, 용마루를 딛지 않으면 추락할 위험이 있었다. 머리 위 지붕이 세모꼴을 이루고 있었다. 홈즈는 손으로 지붕을 더듬었다.

            "맞아, 여기 밖으로 나가는 창이 있군. 그 공범은 여기를 이용한 거야."

            홈즈는 램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닥에는 어른 발 절반도 안 되는 작은 맨발 자국이 많이 나 있었다.

            "홈즈, 공범은 혹시 아이 아닐까?"

            "글쎄, 놀랍군! 하지만 자세히 보게. 이건 절대 어린애 발자국이 아니야."

            "그렇지만 이렇게 작은 발자국이 어른이라면, 그 놈은 난장이란 말인가?"

            홈즈는 별 대꾸 없이, 조심스럽게 바닥을 살피다가 기쁜 듯 소리쳤다. "됐어! 범인은 크레오소트(백무나무를 증류해 만든 말간 유액. 방부제나 진통제로 사용) 속에 발을 헛디뎠어. 이것 보라구! 발자국에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지 않나? 여기 그릇이 깨져 약이 흘렀군."

            크레오소트는 독한 자극성 냄새를 풍기는 약이다. "크레오소트에 발을 헛디뎌서 어떻단 말인가?"

            "나는 이 냄새를 지구 끝까지 따라갈 수 있는 개를 알고 있지. 아, 경찰이 온 모양이야!" 떠들썩한 소리와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 왔다.

            "시체가 죽은 지 얼마나 되는지 좀 봐 주게."

            "사람이 죽으면 몸이 곧 굳어지지만, 이건 참 어려운 경우야. 얼굴이 마치 웃는 것 같은데, 실은 얼굴 근육이 굳어져 웃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분명히 독이 몸에 퍼졌기 때문이야."

            "맞아. 화살에 독을 발랐겠지. 그런데 무슨 독약일까?"

            나는 시체에서 뽑아낸 화살을 램프로 가져왔다. "이 화살은 영국에서 만든 게 아니야."

            "그래. 공범이 누군지 짐작이 가는군."

            이 때, 진한 회색 양복을 입은 몸집이 큰 사람이 거친 발걸음으로 방에 들어섰다. 뒤에는 경찰 한 사람과 새디어스 솔트가 따라오고 있었다. 몸집 큰 사나이는 방으로 들어서면서, "이거 지독하군... 아니, 거기 누구요?"하고 우리들을 노려보았다.

            "존스 경감님, 저를 모르십니까?" 홈즈가 나서며 부드럽게 물었다.

            "오, 이론가이신 홈즈 씨로군. 당신은 이미 이 사건을 조사했겠지. 그래, 이 사나이가 죽은 까닭이 무엇인 것 같소?" 존스 경감은 홈즈를 놀리듯 물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런 것 쯤이야 내가 조사하면 당장 알 수 있지. 문은 닫혀 있었고... 보물을 50만 파운드나 도둑맞았고. 참, 창문은 어때요?"

            "창은 안으로 잠겨 있었고, 바깥엔 흙 발자국이 있습니다."

            "잠겨진 창 밖의 발자국은 별 의미가 없소. 이 사나이는 급한 발작을 일으키고 죽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잠깐! 보석이 없어진 게 문제군. 이봐, 경관! 새디어스 씨를 데리고 좀 나가 주게."

            그는 커다랗게 경관에게 명령했다. 그러고 홈즈 곁으로 다가서 나직하게 말했다. "홈즈 씨, 저 새디어스 솔트가 어젯밤 이곳에서 형과 싸운 모양이오. 그러다 형이 죽자 보물 상자를 들고 도망친 게 확실해. 틀림없어."

            "형은 독 화살에 찔려 죽었습니다."

            "그래도 새디어스가 형을 죽인 것이 분명해요. 이 집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물건이 많은데, 화살도 그 중 하나일 거요. 그런데 새디어스는 죽인 뒤 어떻게 이 방을 빠져나갔을까? 아,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군! 틀림없이 저 곳으로 도망쳤어."

            몸집이 큰 존스 경감은 발판을 딛고 천장으로 올라가, 거기서 지붕에 뚫린 창을 발견했다.

            "경관, 새디어스 솔트를 데리고 오게."

            새디어스가 들어오자, 경감은 냉정하게 말했다. "솔트 씨, 미안하지만, 형을 죽인 살인범으로 당신을 체포해야겠소."

            새디어스는 금세 얼굴이 새파래졌다. "아, 걱정한 대로 내가 드디어 범인이 되고 마는군! 홈즈 씨, 저를 좀 구해 주십시오!"

            새디어스의 호소에 홈즈는 머리를 끄덕였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제가 씻어 드리지요."

            홈즈는 경감을 향해 말했다. "범인은 새디어스 솔트 씨가 아닙니다. 어젯밤 이 곳에 들어온 범인은 혼자가 아니라 두 사람입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이름과 인상까지 알고 있어요. 조나단 스몰이라는, 무식하고 몸이 작고, 동작이 날쌘 사람입니다. 오른발은 의족을 하고 있죠. 뭉툭하고 뒤꿈치에 굵은 대갈(말굽에 편자를 신기는 데 박는 징)을 박은 구두를 신고 있으며, 얼굴이 햇볕에 그을린 전과자입니다. 덧붙여 어제 저녁 사건으로 손바닥이 벗겨졌다는 것도 말씀 드리죠."

            홈즈가 너무 자세하게 범인의 인상을 말하자 존스 경감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혼자서 새디어스를 체포할 욕심 때문인지 홈즈의 설명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또 한 사람은 누구요?"

            "또 한 녀석은 전혀 다른 인간이지만, 그 놈도 금방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와트슨, 잠깐만!" 홈즈는 갑자기 말을 그치더니, 층계 가까이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말했다.

            "모스턴 양을 계속 이 집에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자네가 집에까지 데려다 주게. 난 여기서 자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응, 알았어. 그런데 존스 경감의 비위를 너무 상하게 하진 말게."

            "염려 마. 그 사람은 결국 나에게 한 수 배우러 올 테니. 그리고, 모스턴 양을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핀친 골목 3번지에 가서 오른쪽 세 번째 집의 셔먼이라는 박제 장사를 찾게나. 진열장에 토끼를 노리는 족제비 박제가 있으니 쉽게 찾을 거야. 그 셔먼 노인에게 내 이름을 대고, 급히 더비가 필요하다고 말하게."

            "더비는 개 이름인가?"

            "응, 잡종 개야. 냄새를 아주 잘 맡지. 오늘 밤 더비가 한몫 단단히 해주어야 겠어."

            "알았네. 지금이 1시니까 3시까지는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나는 계단을 뛰어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