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가까이 되어 마차는 어퍼노이드에 도착했다. 런던 교외인 그곳은 안개가 짙었다. 반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폰지셀 별장은 거기서도 외진 집이었다. 집 주위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촘촘히 꽂은 높은 담이 둘려 있고, 대문은 무쇠로 장식해 놓았다. 앞장 선 새디어스가 무슨 신호처럼 문을 똑똑 두드렸다.
"누구야?" 안에서 거친 목소리가 울려 왔다.
"나야, 새디어스야. 맥머드, 문 열어!"
열쇠가 철커덕거리며 문이 열렸다. 키가 작고 가슴이 넓은 사나이가 램프를 들고 나왔다. "새디어스 님이신가요? 그런데 같이 온 분에 대해서는 주인님께 말씀 드리지 않았는데요."
"괜찮아! 어제 다른 손님을 데리고 온다고 말했으니까."
"주인님은 하루 종일 방 안에만 계시고,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듣지 못했고, 저로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새디어스 님만 들어오시고, 다른 분들은 안 됩니다."
"이것 큰일이군. 이렇게 깊은 밤에 여자 분을 바깥에 세워 둘 수는 없지 않나?"
"허락 없이 들어오시면 제가 쫓겨납니다. 아무리 친구 분이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때 홈즈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맥머드, 4년 전 어느날 밤, 너와 한 바탕 권투를 한 사람을 기억하겠지?"
"어? 홈즈 씨였군요, 이거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자, 들어오십시오."
맥머드의 얼굴은 금세 부드러워지며 막아 섰던 문에서 비켜섰다. 홈즈의 한 마디로 우리는 쉽게 폰지셀 별장의 대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갔다. 마당 쪽 창문은 모두 캄캄했다. 소름이 끼칠 만큼 음산한 분위기였다.
"이상하다? 형님 방에도 불빛이 보이질 않는군." 새디어스가 창문 하나를 가리켰다.
"하지만 새디어스 씨, 이쪽 작은 창에는 불빛이 비치는데요?"
"저것은 가정부 번스턴 부인의 방입니다. 그럼 부인에게 물어 봅시다. 응? 이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여자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려온 것이다.
"번스턴 부인입니다. 이 집에는 여자라곤 부인밖에 없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곧 다녀오겠습니다." 새디어스는 집으로 달려갔다. 문이 열리자, 키가 큰 늙은 여자가 나타났다. "새디어스 씨! 큰일났습니다!"
여자의 떨리는 말소리와 함께 새디어스는 집 안으로 사라졌다. 나와 모스턴 양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면서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가끔 구름 밖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반달의 희미한 빛에 비친 마당은 구석구석 파헤쳐져, 마치 광산에 온 것 같았다.
"6년 동안 보물을 찾아 뒤진 흔적이군!" 홈즈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이 때 건물 문에서 새디어스가 헤엄을 치는 듯 허우적거리며 나타났다.
"형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빨리 와 보세요!" 새디어스가 울 듯이 떨며 말했다. 홈즈는 그와 함께 집 안을 여기저기 살피며 가정부 방으로 들어갔다. 번스턴 부인은 모스턴 양의 침착한 얼굴을 홈즈의 어깨 너머로 보며 말했다. "당신네를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번스턴 부인은 반가운 듯 모스턴 양의 손을 잡은 채, 홈즈를 향해 말했다. "주인님은 오늘 하루 종일 문을 걸어 잠그고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끔 있었던 일이라서 별로 걱정도 하지 않았죠. 그러다 방 안이 너무 조용해 열쇠 구멍으로 들여 보았습니다. 주인님이 방 한가운데 앉아 계시더군요. 그 때 그 무서운 얼굴... 주인님을 모신 지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그렇게 무서운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자, 보세요."
새디어스는 그저 부들부들 떨고 있어, 홈즈가 램프를 들고 주인 방에 가기로 했다. 모스턴 양과 가정부는 그냥 남아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며 홈즈는 확대경을 꺼내 먼지에 남아 있는 발자국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계단을 지나 복도로 나오자 왼편에 3개의 문이 나란히 있었다. 그 중 세째 번 문이 이 저택의 주인 방이었다. 홈즈가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손잡이를 돌려봐도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허리를 굽혀 방 안을 들여다보던 홈즈가 갑자기 숨소리를 죽였다. 나는 그가 이렇게 놀라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와트슨, 자네도 좀 들여다보게!"
홈즈가 말하는 대로 나도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았다. 달빛이 흘러 드는 방 한가운데 의자에 이쪽을 향해 누군가 앉아 있었다. 훌렁 벗어진 대머리와 창백한 두 볼,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 듯한 얼굴, 그것은 놀랍게도 우리를 데리고 온 새디어스 솔트였다.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도 새디어스가 공포에 떨며 서 있었다. 웬일일까? 바로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새디어스의 쌍둥이 형 바솔뮤였다.
"큰일났군! 이미 죽은 게 분명해!" 나는 다급하게 홈즈에게 말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야겠군."
홈즈는 힘껏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나와 새디어스까지 합세해 부딪치자, 간신히 자물쇠가 벗겨졌다. 방 안은 마치 화학 실험실 같았다. 유리병, 분젠, 시험관 따위가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방 다른 구석에는 큰 병에 산 용액들이 담겨 있었다. 깨어진 병에서는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 고약한 냄새가 가득했다. 또 한쪽에는 발판이 놓여 있고, 그 위 천장에 사람이 드나들 만한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밑에는 긴 밧줄이 동그랗게 감긴 채 놓여 있었다.
집 주인은 무서운 미소를 띤 채 죽어 있었다. 죽은 지 몇 시간은 지난 것 같다. 시체는 얼굴 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굳어 있었다. 시체 옆 책상 위에는 이상한 도구가 보였다. 다갈색의 단단한 나무에 돌멩이를 묶어 망치처럼 만든 물건 - 그 곁에 종이가 한 장 떨어져 있다. 홈즈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음, 그 종이 쪽지와 같군!"
"네 사람의 서명 말인가? 이건 무슨 암호 같은데...?"
"살인 예고야. 역시 그래, 이것 좀 보라구."
홈즈는 시체의 귀 옆에 꽂힌 나무못 같은 것을 가리켰다.
"화살 아닌가?"
"응, 뽑아 보게. 독이 묻어 있을 테니 조심해."
나는 화살을 손가락으로 쑥 뽑았다. 그 자리에 피가 맺혀 있었다.
"뭐가 뭔지 통 모르겠군." 내가 답답해 하자, 홈즈는 싱긋 웃었다.
"난 반대로 모든 일이 척척 풀려 가는데...."
이 때, 문 앞에 멍하니 서 있던 새디어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앗, 보물이 없어졌다! 보물을 도둑맞았어요! 형이 천장에서 보물 상자를 내릴 때 내가 도와줬는데... 그러고 나서 형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을 텐데?"
"그게 몇 시였습니까?"
"오전 10시쯤이었어요. 내가 형을 만난 거라면, 경찰은 나를 살인범으로 보겠군요. 홈즈 씨,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새디어스 씨, 걱정 마십시오. 지금 곧 경찰에게 가서 신고하세요.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홈즈의 부드럽게 달래는 말에 새디어스는 비틀거리며 방을 나갔다.
네 개의 서명 (코난 도일) - 5. 폰지셀 별장의 살인 사건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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