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저녁 식사는 매우 즐거웠다. 범인이 있는 곳을 짐작한 홈즈도 마음이 들뜬 것 같았다.

            "와트슨, 자네 서랍에 권총 있나?"

            "있어. 옛날 군대에서 쓰던 것을 넣어 두었지."

            "그럼 그걸 가지고 가세. 권총이 있으면 만약의 경우에도 마음이 든든하니 말일세. 자, 문 밖에 마차가 온 모양이야. 6시 반에 오라고 했으니 어서 떠나세."

            우리는 웨스트민스터를 향해 마차를 몰았다. 선창가에 도착한 것은 7시가 좀 지났을 무렵이었다. 경찰선은 존스 경감이 지시한 대로 선창에 대기하고 있었다. 홈즈는 배를 둘러보며 말했다.

            "경감님, 이 증기선에 경찰 표시가 있습니까?"

            "배 왼편에 켜진 푸른 불이 경찰선이란 표시입니다."

            "그럼 그걸 떼어 주십시오."

            푸른 불은 곧 떼어졌다. 우리가 올라타자 증기선은 곧 강변을 떠났다. 우리 세 사람은 증기선 뒤쪽에 앉아 있었고, 선실에는 운전사 한 사람과 기관사, 그리고 증기선 앞에는 아주 건장하게 생긴, 든든해 보이는 두 사나이가 떡 버티고 앉았다. 모두 7명이었다.

            "어느 쪽으로 갈까요?"

            존스 경감이 홈즈에게 물었다.

            "제이콥슨 조선소 쪽으로 가도록 지시해 주십시오."

            증기선은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어찌나 빠른지 짐을 잔뜩 실은 똑딱선들이 제자리에 그대로 멈추어 선 것처럼 보였다. 홈즈는 만족스러운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런 속도라면 아무리 빠른 배라도 쫓아갈 수 있겠군요. 고맙습니다, 존스 경감님."

            "네, 이 배는 우리 경찰도 자랑으로 여기고 있죠. 아마 이 강에서는 당해낼 배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쫓아가는 오로라 호도 빠르기로 소문난 배입니다. 얕잡아 보아서는 곤란해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홈즈가 어떻게 오로라호의 행방을 알아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기회를 보아 물어 보았다.

            "와트슨! 나도 겨우 그걸 알아 냈다네. 내 부탁을 받은 소년들이 강변을 샅샅이 뒤져도 허탕만 쳤지. 그래서 오로라 호는 절대 강가에 배를 대거나, 집에 돌아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짐작했지. 범인 스몰은 폰지셀 별장을 감시하기 위해 런던에 계속 머물렀을 정도니, 보물을 손에 넣었다고 해서 금방 런던을 빠져 나가지는 않았을 것 같아. 천천히 준비를 갖춘 다음에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네."

            "스몰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런던을 빠져 나갈 준비를 해 두지는 않았을까?"

            "아니야. 보물이 감추어진 곳을 갑자기 알았기 때문에 미리 도망칠 준비까지 해 두긴 어려워. 게다가 스몰은 아주 안전한 장소에 숨어 있기 때문에, 부랴부랴 떠날 필요는 없을 거야."

            "그건 그래. 남의 눈에 띄기 쉬운 난장이 토인을 데리고 있으면, 보통 안전한 곳이 아니면 안 되겠지."

            "맞았어. 그 난장이 때문에도 스몰은 금방 도망치지는 못할 거야. 큰 사건을 저질러 떠들썩한 판에 이상하게 생긴 놈을 데리고 움직인다는 건 위험하니까. 스몰이 난장이를 데리고 다니는 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밤 시간이야. 그런데 스미스를 찾아간 시간은 새벽 3시. 3시라면 날이 새기 시작하고 사람들도 일어날 때니까, 두 사람은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스몰은 스미스 부자에게 돈을 많이 주어 입을 막았을 걸세. 증기선은 마지막으로 달아날 때 쓰려고 깊이 감추어 두고, 자기는 어느 집에 숨어서 가만히 일을 살펴보고 있겠지. 경찰이 다른 사람에게 혐의를 두고 있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 그들은 오늘 밤쯤 런던을 빠져 나가려고 할 거야."

            "그럼 오로라 호는 지금 어디에 있나? 설마 그 놈들이 있는 집안에 숨겨 놓지는 않았겠지?"

            "그야 물론이지. 하지만 숨어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을 거야. 내가 스몰의 입장이라면 증기선을 조선소에 넣어 모양을 조금 바꾸어 달라고 부탁했을 거야. 강변에 매어 두면 곧 발견될 테니까. 조선소가 제일 안전한 곳이야."

            "정말 그렇군. 어째서 나는 자네처럼 조선소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는 늙은 선원으로 변장하고 템즈 강 유역의 조선소를 모두 뒤졌어. 열 다섯 번이나 허탕을 치고, 열 여섯 번째야 겨우 오로라 호가 제이콥슨 조선소에 스크루 고장을 고치려고 들어와 있는 것을 알아 냈네. 마침 선주 스미스가 거나하게 취해서 조선소 직공들에게 말하더군. '오늘 밤 8시 정각에 떠나니, 그 때까진 모두 수리해 줘야 해'라고 말이야. 조선소 직공들은 '염려 마세요. 고장 난 게 아니니까.'하고 대답하더군."

            "나는 스미스를 뒤따라 갔어. 그는 어느 술집으로 들어가더군. 그래서 다시 조선소로 돌아와 베이커 거리 특공대 한 명을 감시원으로 남겨 놓고 돌아왔네. 증기선이 떠나면 소년이 강변에서 손수건을 흔들어 신호하기로 돼 있어. 그러니 우리는 그 때까지 조선소 둘레를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이제 보물을 찾고 범인을 체포하는 건 시간 문제야."

            이 때 홈즈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존스 경감이 말했다. "정말 치밀한 계획입니다. 그렇지만 나 같으면 곧장 조선소로 들어가 증기선 안에 숨어 있다가 범인이 올라오면 모조리 잡아버릴 겁니다."

            "그건 안 됩니다. 스몰이란 녀석은 워낙 빈틈이 없어, 배에 오르기 전에 반드시 누굴 시켜서 자세히 살펴 모게 할 겁니다.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절대 배를 타지 않겠지요."

            "선주인 스미스를 달래서 스몰이 숨은 곳을 알아보는 게 어떨까요?"

            "스미스도 아마 스몰이 숨은 곳은 모를 겁니다. 스미스는 술을 실컷 얻어 먹고 돈이나 두둑히 받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범인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을 테니까요. 그들은 일이 있을 때만 스미스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그래서 지금 하는 방법이 제일 좋을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증기선은 런던 중심지를 빠져 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세인트폴 사원 지붕 꼭대기의 십자가가 저녁놀을 받아 반짝거렸다.

            "자, 드디어 제이콥슨 조선소가 보이는군."

            홈즈는 망원경을 꺼내 잠시 조선소 쪽 강변을 바라보았다. "감시원 소년이 보이긴 하는데, 손수건은 아직 흔들지 않는군."

            "그럼 강 아래로 내려가 배를 매어 두고 기다립시다."

            존스 경감의 말에 홈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글쎄요. 오로라호가 강물을 타고 내려갈 가능성이 높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단언하기는 곤란합니다. 여기서는 조선소 입구가 잘 보이지만 저쪽에선 이쪽이 보일 리 없으니 그대로 여기에 있기로 하죠. 보세요. 직공들이 가스등을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아, 저걸 봐! 손수건을 흔들고 있어!"

            "드디어 손수건을 흔드는군!" 나도 따라서 외쳤다. 홈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드디어 오로라 호가 나온다! 무척 조심스럽게 나오는군. 기관사, 전속력으로 저 배를 쫓아가세!"

            강으로 나선 오로라 호는 쏜살같이 달려 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말 뜻밖의 속력이었다. 존스 경감은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오로라 호를 바라보았다. "대단한 속력이야. 우리 증기선이 쫓아갈 수 있을까?"

            "무슨 일이 있어도 붙잡아야 합니다. 자, 석탄을 집어 넣어요! 증기선이 타 버릴 만큼 집어 넣어!" 홈즈는 이를 악물고 외쳤다. 경찰 증기선은 너무 느린 것 같았다. 석탄 아궁이가 무쇠 심장처럼 울부짖기 시작하고 엔진은 소나기 같은 소리를 냈다. 강물이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물결이 옆으로 높게 퍼져 나갔다. 이윽고 우리 증기선의 노란 불빛이 오로라 호를 비추기 시작했다. 증기선이 무섭게 달리자, 옆을 지나가던 작은 배들은 위험하다고 아우성이었다.

            "석탄을 더 집어 넣어, 석탄!" 홈즈는 기관실을 들여다보며 재촉했다. 홈즈의 얼굴에 석탄 불이 비쳐 붉게 타는 것 같았다.

            "조금 가까워진 것 같은데..." 존스 경감이 앞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조금만 더 속력을 냅시다!"

            이때였다. 3척의 화물선이 우리가 탄 증기선 앞을 가로질렀다. 그대로 곧장 달리다가는 꼼짝 없이 부딪칠 상황이었다. 우리는 뱃머리를 왼편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앞을 가로막은 화물선을 돌아 겨우 방향을 잡자, 오로라 호는 벌써 200미터나 앞서가고 있었다. 그러나 배의 모습은 똑똑히 보였다. 석탄을 가득 넣은 그 배의 아궁이도 터질 듯 타고 있었다. 존스 경감이 탐조등을 비추자 오로라 호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배 뒤에는 무릎에 무언가 검은 것을 올려놓고 들여다보는 사나이가 있고, 바로 그 옆에 개처럼 웅크린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선주 스미스는 아들 짐에게 키를 잡게 하고, 자기는 시뻘겋게 단 아궁이에 연방 석탄을 퍼 넣고 있었다. 오로라 호도 처음에는 우리가 뒤따르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뒤에서 계속 탐조등을 자기들에게 비추는 것을 보고는 우리의 추격을 눈치챈 것 같았다. 오로라 호와 우리 배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이때까지 여러 곳에서 사냥을 했지만, 이날 템즈 강의 사람 사냥처럼 손에 땀을 쥔 적은 없었다. 정말 조마조마한 사냥이었다.

            경찰 증기선은 오로라 호와 거리를 조금씩 좁혀 갔다. 오로라 호의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배 뒤쪽에 웅크리고 있던 사나이는 두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가끔 얼굴을 들어 우리 배와의 거리를 눈으로 재고 있었다. 두 증기선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이윽고 존스 경감이 큰 소리로 외쳤다.

            "거기 서라!"

            두 증기선 사이 거리는 불과 4,5 미터, 존스 경감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오로라 호 뒤쪽에 앉았던 사나이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더니 이 쪽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큰 소리로 외쳤다. 힘은 세어 보였으나 한쪽 다리는 분명히 의족이었다. 그가 소리치자, 그의 발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검은 그림자가 벌떡 일어났다. 개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개가 아니라 키가 작달막한 사람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작은 사람도 있단 말인가! 키에 비해 무척 큰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더부룩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홈즈는 어느새 권총을 꺼내 들었다. 나도 권총을 꺼냈다. 담요를 뒤집어쓴 토인은 얼굴만 내밀고 있었으나 그 얼굴만 보고도 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머리카락이 쭈삣했다. 눈을 번뜩이며 두터운 입술 사이로 붉은 잇몸을 드러낸 꼴이 마치 금방 달려드는 맹수 같았다.

            "저 녀석이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망설이지 말고 즉각 방아쇠를 당기게."

            홈즈가 침착하게 나에게 속삭였다. 이 때 우리 증기선은 오로라 호와 불과 2,3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배 뒤에 있는 두 사나이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의족을 한 스몰은 두 다리를 버티고 연방 고함을 질렀고, 난장이는 괴상한 소리로 울부짖었다. 난장이의 모습이 똑똑히 보인 것은 우리에게 무척 다행이었다. 난장이가 담요 속에서 무언가 꺼내는 모습이 똑똑이 보였던 것이다. 다음 순간 우리의 권총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그러자 그 난장이 토인은 두 손을 축 늘어뜨리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물 속으로 빠졌다. 물 속으로 빠지는 순간 토인의 눈은 무섭게 빛났다.

            이 끔찍한 광경을 본 의족의 사나이는 갑자기 키에 달려들어 대담하게 배를 왼쪽으로 돌렸다. 오로라 호의 고물을 경찰 증기선과 충돌하게 하려는 시도였다. 경찰선이 아슬아슬하게 충돌을 피하자 오로라 호는 템즈 강 남쪽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찰선도 곧 방향을 돌렸으나, 오로라 호는 벌써 강변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 곳은 수렁이 있는 곳으로, 한번 빠지면 좀처럼 빠져 나올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오로라호가 '쿵'하고 무거운 소리를 내며 수렁 지대에 빠지고 말았다.

            의족 사나이는 배에서 뛰어 내렸다. 수렁에 뛰어 내리자, 나무 다리는 깊숙이 빠져들었다. 그는 빠져 나오려고 허우적댔지만, 그럴수록 다리는 더 깊이 빠지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이 증기선을 대어 놓고 그 곳에 다가가자 스몰은 수렁 속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큰 고기라도 낚아 올리듯, 밧줄을 던져 그를 건져 올렸다.

            스미스 부자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배 위에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순순히 경찰 증기선으로 올라왔다. 그 증기선에는 무쇠 상자가 실려 있었다. 이것이 솔트 씨 집에 있었던 보물 상자임에 틀림없다. 열쇠는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상자를 조심스럽게 경찰 증기선으로 옮겼다.

            배는 다시 강을 올라가면서 탐조등으로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토인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 이상한 난장이 토인은 템즈 강 수렁 밑에 영원히 묻혀 버린 것 같았다.

            "이걸 보게, 아주 아슬아슬했어!"

            홈즈가 가리키는 곳에는, 뜻밖에도 독 화살이 꽂혀 있었다. 우리가 서 있던 바로 옆이었다. 우리가 권총을 쏘았던 순간, 토인도 화살을 쏜 것이었다. 홈즈는 태연하게 웃었으나, 나는 목숨이 위험했던 그 순간을 생각하며 몸에 소름이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