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소. 이렇게 약속하고 나서 내가 망을 보는데,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초롱불이 보이기 시작했소.
"저기 오고 있다!"
내가 압둘라 칸에게 속삭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소. "당신은 저 놈들을 불러 세우시오. 그리고 당신이 망을 보는 사이에 우리들이 감쪽같이 처치해 버리는 거요."
초롱불은 점점 가까워졌소. 두 사람이 올라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누구냐!" 하고 내가 고함을 쳤소. 그러자 상대방이 대답했소. "우리들일세."
나는 들고 있던 초롱불로 상대방을 비추었소. 앞에 선 사람은 검은 수염을 가슴까지 기른 뚱뚱한 시크 사람인데, 마치 씨름 선수처럼 늠름했소. 이 사람이 바로 아크메였소. 손에 짐을 들고 있더군. 그는 두려운 듯 손을 부들부들 떨고, 쥐새끼처럼 눈을 번들거리고 있었소. 이 사람이 이제 죽임을 당할 왕의 부하였던 거야. 순간 나는 불쌍한 마음이 들었소. 그는 내가 백인이라는 것을 알자 반가운 듯 나에게 다가왔소.
"살려 주십시오. 저는 불쌍한 장사꾼 아크메입니다. 난리를 피해 이 아그라로 온 것 뿐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인도인 병사들에게 죽고, 남은 것은 이 짐 뿐입니다."
"그 짐은 무엇인가?"
"무쇠 궤짝입니다. 남들에게는 하찮을지 몰라도 제게는 소중하기 짝이 없는 물건입니다. 살려 주신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이 사나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점점 불쌍한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이야기를 끊어 버리고 "이 사나이를 본부로 데리고 가라!" 하고 부하들에게 명령했소. 부하 두 사람은 그 사람 양쪽에 바짝 붙고, 사나이와 같이 온 사람은 그 뒤를 따라 성문으로 들어갔소. 발 소리가 멀어지더니, 이내 소란스러워지면서 서로 싸우는 소리가 났소. 그러더니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겠소?
초롱불을 비춰 보니 맨 앞에서 피투성이가 된 아크메가 달려오는데, 내 부하들이 칼을 휘두르며 그 뒤를 쫓고 있었소. 나는 그 뚱뚱보가 그렇게 빨리 뛸 줄은 몰랐소. 그는 내 부하들을 점점 멀리 떨어뜨리며, 내 옆을 바람처럼 지나가더군. 순간 나는 재빨리 총을 들어 그 사나이의 뒤통수를 갈겼지. 그 사나이는 쓰러지더니 금방 다시 일어서려고 하더군. 그러나 뒤따라오던 내 부하가 칼로 그의 옆구리를 찔렀소. 사나이는 찍 소리도 못하고 숨을 거두었소. 이렇게 해서 보물 상자는 네 사람의 차지가 되었던 거요.
여기까지 이야기한 스몰은 옆에 있던 위스키 잔을 들어 마른 목을 축였다. 그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진 채였다. 나는 사람 죽인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가 미워 견딜 수 없었다. 홈즈나 존스 경감도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스몰은 그런 생각을 알아챈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말했다.
"여러분은 우리를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하겠지요? 물론 우린 나쁜 놈들이오. 하지만 우리들은 그때 전쟁중이었소. 정말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판이었지. 수상한 녀석을 성 안에 들여보내도 우리 목숨은 없어지고 또 그 녀석이 성에서 도망쳐도 우리는 상관에게 붙잡혀 총살을 당하는 판이었어."
"어서 이야기를 계속하게." 홈즈가 재촉했다.
"그러지요." 스몰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마호멧 신을 성문지기로 남겨두고, 압둘라 칸과 도스트 아크발과 함께 아크메의 시체를 성 안으로 운반했소. 복도를 지나 크고 넓은 방에 이르면, 마룻바닥이 무너져 마치 지하 무덤처럼 되어 있었소. 아크메를 그곳에 넣은 뒤 자갈로 덮어 버렸소. 그런 다음 보물 상자가 있던 곳으로 와서 상자를 열어 보았소. 상자 안에는 눈부신 보석이 가득 들어 있더군.
우리는 그 자리에서 보석의 목록을 만들었소. 1등품 다이아몬드가 143개, 아름다운 에머랄드 97개, 루비 117개, 사파이어가 219개, 그 밖에 터어키 석도 있었고, 진주도 300개 가까이 되었으며, 그 중 12개는 황금 관에 장식되어 있었소. 이번에 궤짝을 되찾아 조사해 보니 이 12개의 진주가 없어졌더군. 보석 조사가 끝나자 성문을 지키고 있는 마호멧 신에게 가서 그것을 보여 주고, 우리 네 사람은 이 보석의 비밀을 굳게 지키기로 약속했소.
궤짝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성 안에 감추어 두기로 했소. 아크메의 시체를 파묻은 근처의 벽을 파서 궤짝을 집어 넣고, 나중에 잘 알 수 있도록 지도를 네 장 만들어 각자 한 장씩 나눠 가졌지. 궤짝은 네 사람의 것이니 누구도 독차지할 수 없도록 네 사람이 똑같이 서명했던 것이오. 한편, 처음에 우세했던 인도 폭도들은 영국군이 지원군을 얻어 다시 세력을 회복하는 바람에, 끝내 항복하고 말았지. 우리들은 보물을 꺼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기뻐했지만, 막상 그 때가 되자 아크메를 죽인 사실이 그만 폭로되어 네 사람은 붙잡히고 말았소.
아크메를 죽인 사실이 알려진 데는 이유가 있었지. 아크메에게 보물을 맡긴 왕은 그를 믿을 수 없어서 또 한 명의 부하에게 아크메를 감시하게 했던 것이오. 그런데 아크메가 아그라 성에 들어간 다음 다시 나오지 않자, 뒤따르던 감시원이 이 사실을 사령관에게 일러바친 것이오. 그래서 곧 성 안을 뒤져 아크메의 시체를 찾아 냈고, 그것이 우리의 소행이라는 것도 곧 알려졌소. 우리는 붙잡혀 감옥에 들어갔지만, 보물에 대해서만은 입을 다물었소. 그래서 궤짝은 성 안 벽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소.
그 후 우리 네 사람은 영영 감옥을 떠날 수 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소. 우리들 모두 앤더맨 섬으로 유형을 당했지만, 그 곳엔 백인 죄수가 드물었고 내가 아주 온순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감옥에서 풀려나와 자유롭게 살 수 있었소. 물론 자유롭다곤 하지만, 사방이 바다여서 도저히 도망칠 수는 없었소. 나는 군의관 서머튼 박사 밑에서 조수로 있으면서 약 만드는 법도 배웠소. 장교들은 일이 한가한 밤이 되면 자주 트럼프 놀이를 했소.
나는 직접 트럼프를 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남이 하는 것도 곧잘 구경하곤 했소. 트럼프 놀이를 하는 패에는 솔트 소령, 모스턴 대위, 브라운 중위, 그리고 방금 말한 서머튼 군의관, 그리고 간수들도 끼어 있었소. 그런데 장교들은 솜씨가 서툴러, 간수들에게 돈을 털리곤 했소. 특히 솔트 소령은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 내기에 지면 사람은 더욱 열중하기 마련이오. 솔트 소령은 계속 트럼프를 하다가, 어느 날 밤 드디어 돈을 몽땅 털리고 말았소. 그는 모스턴 대위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
"모스턴 대위, 나는 이제 군인도 그만이야. 이젠 완전히 파산이야!"
모스턴 대위가 열심히 소령을 위로하더군. 나는 이틀이 지난 뒤, 소령이 혼자 산책하는 바닷가로 다가갔다오.."
네 개의 서명 (코난 도일) - 14. 조너던 스몰의 이야기(3)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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