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스터셔 주의 상당히 이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소.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거친 편이라 18살 때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지. 그래서 마침 인도로 갈 예정인 제 3 연대에 지원해 들어갔소. 그러나 난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닥쳐 와 곧 군인 생활을 단념해야 했소...
인도에 가서 제법 총 쏘기에 익숙해질 무렵에 나는 수영을 하러 갠지즈 강으로 나갔어. 갠지즈 강은 악어가 많기로 유명하지. 강 복판으로 나갔을 때 나는 그만 오른쪽 무릎을 악어에게 물리고 말았소. 함께 갔던 홀더가 수영 선수여서 나를 재빨리 강변으로 끌어 내 간신히 목숨만은 구했지. 하지만 다섯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의족을 딛고 병원을 나왔을 때, 나는 이미 군인이 아니었어. 20살도 되기 전에 나는 이렇게 병신이 되고 말았어.
그런데 농장을 경영하던 화이트라는 영국 사람이 나를 불쌍히 여겨 농장 감독으로 써 주었소. 농장 감독은 말을 타고 넓은 밭을 둘러보고, 밭에서 일하는 인도 사람을 감독하는 일이었소. 다리가 불구여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지. 나는 기꺼이 일생을 그 일로 보낼 작정이었소. 주인 화이트 씨도 마음이 좋은 분이어서 나를 잘 돌봐 주었지. 그렇지만 좋은 일만 계속되지는 않는 모양이야. 가까운 지방에서 인도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켰으니 말이오. 백인에게 고용됐던 인도 사람들의 불만이 폭발해 인도인 병정들과 싸움이 벌어졌지.
당시 내가 있던 곳은 마루투였소. 토인들은 밤마다 백인들 집에 불을 질렀지. 불길이 하늘을 찌르고, 백인들은 가족을 거느리고 영국 군대가 주둔해있는 아그라로 피난 가기 위해 우리 밭 근처를 지나갔소. 화이트 씨는 폭동이 곧 멈출 것이라며, 도망칠 준비조차 하지 않았소. 그래서 나는 물론, 화이트 씨 집안 일을 거들던 도슨 씨 부부도 아그라로 도망치지 않고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는데, 시냇물에 칼을 맞은 백인 여자의 시체가 떠있었소. 자세히 보니 도슨의 아내더군. 깜짝 놀라 조금 더 갔더니, 거기에는 도오손이 손에 권총을 쥔 채 쓰러져 죽어 있었소. 그 근처엔 인도인 병사 네 명이 쓰러져 있었소. 깜짝 놀라 집 쪽을 바라보니, 화이트 씨 집은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소.
주위에는 시커먼 인도인 병사들이 수백 명 모여 미친 듯 날뛰며 춤을 추고 있더군. 말을 타고 있는 나를 보더니, 와아 함성을 지르며 나를 향해 몰려오지 않겠소?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지. 그날 밤 늦게야 겨우 아그라 마을에 도착했어. 하지만 아그라 마을도 그리 안전하지 않더군. 폭동은 인도 전체로 퍼졌고, 가는 곳마다 벌집을 쑤셔 놓은 듯 폭도들이 날뛰는 바람에 영국 사람들은 그저 떨고만 있었소. 인도인 병정들의 총이나 나팔, 옷까지 모두 영국에서 받은 것인데, 그들은 그걸로 영국 사람들을 공격하는 거야. 아그라로 피난해 온 사람들이 모여 의용군을 만들자 나도 부자유스러운 몸이었지만 거기에 한몫 끼었소.
아그라에는 낡은 성 하나가 있었지. 일부을 요새처럼 고쳐 수비대가 사용했지만, 나머지 부분은 드나드는 사람도 없이 그냥 텅 비어 있었소. 그 성은 캄캄하고 구불구불한 복도와 길이 여러 갈래로 뻗어 있어서, 한번 길을 잃어버리면 영영 나올 수 없게 되는 거요. 성 바로 앞에 갠지즈 강이 흐르고 있어서 방어선이 되었지만,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뒤에는 입구가 몇 개 있어서 그 곳을 지켜야 했지. 나는 시크 인 병사 두 사람과 함께 서남쪽에 따로 떨어져 있는 성문의 수비를 맡게 됐어.
우리는 매일 밤 몇 시간씩 그곳을 지켜야 했지. 비상시에는 총소리로 본부에 알려 주력 부대가 지원해주기로 했지만, 방금 말한 것처럼 성 안이 무척 넓고 길이 구불구불해서 겁이 나더군. 내 부하는 두 사람 다 키가 큰 인도인 병사로, 한 사람은 이름이 마호멧 신, 또 한 사람은 압둘라 칸이라고 했소. 처음 이틀은 무사했지.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밤이었소. 새벽 2시쯤 본부에서 순시를 다녀간 다음 내가 담배를 피우려고 총을 놓는 순간, 부하 두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양쪽에서 내게 달려드는 거야. 한 사람은 총으로 나를 겨누고, 또 한 사람은 칼을 내 목에 갖다 대더군.
"이게 무슨 짓이야, 자네들 나를 배신할 셈인가?"
내가 고함을 치자, 그 놈들은 뜻밖에도 한 발짝 물러나며 조용히 말했소.
"떠들지 마시오. 우린 배신자가 아니오. 우리 요구만 들어 주면 되는 거요."
"뭐? 총과 칼을 들이대고 무조건 요구를 들어달라? 이건 너무하지 않나?"
그러자 압둘라 칸이 이렇게 말했소.
"우리의 동지가 되든지, 아니면 목숨을 버리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오!"
"너희의 동지? 만약 이 성을 적에게 넘기는 얘기라면, 나는 대영제국 사람으로서 죽어도 너희 동지가 될 수 없다. 자, 그 칼로 어서 나를 찔러라!" 나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대답했소.
"아니오. 성을 적에게 내주는 따위 일이 아니오. 당신도 어차피 돈을 벌기 위해 인도에 온 것 아니오? 우리와 함께 돈을 벌자는 것이오. 우리 요구를 들어주면, 보물의 4분의 1을 당신에게 주겠소."
"뭐, 보물? 나라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게 싫을 리는 없지."
"그럼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밤 일을 입 밖에 내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소?"
"약속하지. 아까 말한 것처럼 이 성을 적에게 내주는 일이 아니라면."
"좋소. 그럼 이제 보물을 꺼내어 당신에게 4분의 1을 나눠주겠소."
"그런데 여긴 세 사람 뿐이지 않나?"
"도스트 아크발이라는 사람이 또 있소."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나?"
"곧 여기에 또 한 사람을 데리고 옵니다."
"또 한 사람이라구? 그럼 다섯 사람이 되는데..."
"자세한 얘기를 해 주겠소. 북쪽 지방에 아주 돈 많은 왕이 있소. 이번에 폭동이 일어나자 그 왕은 영국과 인도인 반군 양쪽의 비위를 맞추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소. 어느 쪽이 이기든 자기 재산 절반은 남의 손에 넘기지 않고 자기 것으로 남기려는 속셈이었지. 그래서 보물의 반은 왕궁 지하실에 넣고, 나머지 절반은 무쇠 궤짝에 넣어 장사꾼으로 변장한 부하를 시켜 이 아그라 성 깊숙이 감추었단 말이오. 인도 반군이 이기면 왕궁 지하실의 보물이 남고, 영국이 이기면 이 아그라 성의 보물이 남는다는 계산이지."
"그럴듯한 생각이군."
"재산 정리를 마친 왕은 정세를 살피다가 인도 반군이 우세하자, 그 쪽에 붙어 버렸소. 그러니 이 성에 감춘 보물은 포기해 버린 셈이지. 그런데 왕의 명령을 받아 이곳으로 보물을 감췄던 아크메는 내 친구 도스트 아크발에게 이 비밀을 말하고 둘이 함께 이 곳으로 보물을 찾으러 오기로 했소. 아크메만 죽여 버리면 보물은 나머지 네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이오."
"하지만, 아크메를 죽이지 않고 보물을 다섯으로 나누는 것이 어떨까?"
"그건 절대 안되지. 그 놈은 보물을 독차지할 속셈이거든. 도저히 우리들과 의견이 맞지 않소. 그러니 자, 우리들 편에 끼지 않겠소?"
"좋아, 나도 한몫 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