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이치가 병석에 드러누운 지 3개월째가 됐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워낙 눈에 띄지 않게 일이 진행된 탓으로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새 아내도 딸도 아들도 그리고 하인들이나 친지들, 의사, 심지어 이반 일리이치 자신까지도 이제 남은 것은 다만 그가 저 지위를 내놓을 날이 언제인가 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문제는 살아남을 자들이 그의 존재로 인해 생기는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날 날은 언제이며 또한 그 자신 스스로의 고통으로부터 풀려날 날은 언제인가 하는 것들로 모아진 것이다. 그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거리는 모두 그것일 뿐이었다.
그는 갈수록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모르핀 주사를 맞고, 아편을 먹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그를 괴로움에서 구해주지는 못했다. 반 마취상태에서 몽롱한 슬픔을 느끼면서 처음 얼마 동안은 비교적 견디기가 쉬웠으나, 나중에는 그것이 분명한 고통처럼 아니 그보다 더 큰 괴로움으로 변했다.
의사가 특별한 음식을 처방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날이 갈수록 그런 음식들조차 맛이 없고, 먹기가 싫어졌다. 배설을 하려면 특별한 장치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변을 볼 때마다 그는 더 큰 고통을 느껴야 했다. 불결함, 어색함, 지독한 냄새 등을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치르어야 하다니... 그는 그 배설에 필요한 절차가 끔찍했다.
견딜 수 없이 불쾌한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반 일리이치에게 한 가지 위안을 주는 것이 생겨났다. 그것은 변을 본 뒤엔 으레 식당 하인 게라심이 치우려고 온다는 사실이었다. 게라심은 도회지의 음식을 잘 먹고 살이 찐 미끈하고 건강한 젊은 농부출신 사나이였다. 그는 항상 명랑했다. 처음엔 언제나 말쑥한 러시아식 제복을 입고 이런 궂은 일을 하는 사나이의 모습이 적지 않게 이반 일리이치를 당황케 했다.
하루는 변기에서 일어섰다가 바지를 끌어올릴 기력이 없어 그는 푹신한 팔걸이 의자 위에 쓰러진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는 힘줄만이 앙상하게 드러나 힘없이 벗겨진 넓적다리를 비참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두꺼운 장화를 신고, 베 앞치마를 걸치고 말쑥한 무명 셔어츠 팔소매를 걷어붙인 게라심이 가볍고 힘찬 걸음걸이로 방에 들어왔다. 그는 병자가 모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의 모습을 외면하면서 변기 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 빛나는, 삶에 대한 즐거운 태도를 그는 숨기고 있었다.
"게라심." 이반 일리이치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게라심은 자기가 무슨 실수를 저지른 것이나 아닌가 놀라서 몸을 떨었다. 그 젊은이는 재빠른 동작으로 턱수염이 겨우 날까말까 한, 생기가 넘쳐 흐르는 선량하고 단순한 얼굴을 그에게 돌렸다.
"무엇을 해 드릴까요?"
"항상 생각하는 것인데, 너도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겠지... 미안하다... 그러나 용서해라.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까..."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게라심은 눈을 빛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말했다.
"원, 이런 일이 뭐 그리 대단합니까? 나리께선 지금 병환 중이신데요."
그는 억센 두 손으로 익숙하게 일을 재빨리 해 치우고 가벼운 걸음으로 물러 나갔다. 그리고 한 5분쯤 지나 똑같이 가벼운 걸음으로 되돌아 왔다. 그때까지 이반 일리이치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게라심, 이리 와서 나를 좀 도와주렴."
게라심이 그에게 가까이 왔다.
"나를 일으켜다오. 아무래도 혼자선 옷을 입기 힘들구나. 마침 드미트리가 심부름을 가는 바람에..."
게라심은 든든한 두 팔로 이반 일리이치를 안아 조심스럽게 가만히 일으켰다. 마치 그의 발걸음처럼 경쾌한 동작이었다. 그런 다음 한 손으로 바지를 끌어올려 입혀주고 다시 자리에 앉혀 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자신을 긴 의자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게라심은 별로 힘도 안 들이고 그를 너무 세게 누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겨드랑을 받쳐 안아 긴 의자에 앉혀 주었다.
"고맙다. 너는 정말 뭐든지 다 잘하는구나."
게라심은 싱긋 웃더니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아주 흐뭇했다. 그래서 그를 내보내지 않았다.
"거기 그 의자를 이리 좀 갖고 오너라. 아니, 바로 이렇게 응, 그래 다리 밑에 말야. 그렇지... 이렇게 다리를 고여 놓으면 좀 편해지거든."
게라심은 의자를 들고 와서 소리도 내지 않고 아주 익숙하게 마루 바닥에 내려 놓았다.그리고 그 위에 이반 일리이치의 다리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게라심이 다리를 높이 들어 주자 아주 편안해진 것을 느꼈다.
"다리를 더 높이 고여 놓으니까 훨씬 편하군. 저기 저기 있는 의자 세 개도 가져다가 좀 받쳐 다오."
게라심은 시키는 대로 했다.
"게라심, 너 지금 다른 바쁜 일은 없니?"
"제가 뭐 대단스러운 일을 하는 게 있습니까? 해야 할 일은 미리 다 해 놓았습니다. 내일 쓸 장작만 패 놓으면 다 끝납니다."
"그래, 그럼... 내 다리를 좀 들고 있어 주겠니?"
"네에... 그렇게 해 드려야죠."
게라심은 다리를 높이 받쳐 들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이렇게만 하고 있으면 괴로움을 완전히 잊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장작 패는 것은 어떻게 하지?"
"염려 마세요. 제 때에 쓸 수 있게 다 해 놓을 수 있으니까요."
이반 일리이치는 게라심에게 의자를 가져와 앉아 다리를 들고 있도록 일렀다. 그리고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는 게라심이 다리를 들어 주고 있는 동안은 몸이 아주 편한 것 같았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이반 일리이치는 자주 게라심을 불러 자신의 다리를 그의 어깨 위에 올려 놓고 그와 이야기하곤 했다. 게라심은 그런 일을 전혀 힘들어 하지 않았다. 그는 자진해서 단순한 태도로 그런 일을 했다. 그의 태도에는 이반 일리이치를 감동시키는 단순하고 순박한 것이 있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지닌 건강과 힘, 젊음은 모두 이반 일리이치에게 모욕감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게라심의 힘과 젊음은 그를 괴롭히거나 슬프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고 위안이 되어 주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이치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허위였다. 그것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거리였다. 남들은 이반 일리이치가 단순히 병을 앓고 있을 뿐이지, 결코 죽어가는 게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가 침착하게 치료를 받기만 하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식의 태도였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그런 허위를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가령 무슨 방법을 써본다 해도 이보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을 가져다 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결과는 죽음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허위, 허위, 그의 죽음의 전야에 그에게 행해지고 있는 이 허위... 그의 죽음이라는 이 엄숙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손님이 찾아오는 것이나 창문에 드리우는 커튼, 식탁에 오르는 연어 고기 따위 평범한 일상으로 끌어내리고 마는 것이다. 사람들은 도저히 그렇게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이러한 허위, 바로 이것이 이반 일리이치에게는 견딜 수 없이 무섭고 괴로웠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런 허위에 찬 태도를 보일 때마다 외치고 싶었다. 그 따위 입에 발린 수작은 그만 둬!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당신들이나 나나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야. 그러니 제발 그러지 말아줘! 그런 거짓말은 그만두란 말이야! 이런 말이 혀 끝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는 아무리 해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끄집어낼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라는 무섭고 우울한 사실을 그저 우연히 생긴 불유쾌한 일 정도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또는 그저 사소한, 예의 바르지 못한 사태 정도의 범상한 일로 격하시키고 말았다. 아무도 이반 일리이치를 가엾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누구도 그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한 사람, 게라심만이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를 진심으로 가엾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반 일리이치는 게라심과 단 둘이 있는 것이 좋았다.
게라심 한 사람만은 그를 거짓으로 대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그만이 진실로 이해하고 또 그것을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그만이 이 병들고 쇠약해진 주인을 지극한 정성으로 가엾게 여긴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한 번은 이반 일리이치가 그를 그만 돌려 보내려 하자 게라심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고 말아요. 무엇 때문에 제 몸을 아끼겠습니까?"
게라심은 자기가 이렇게 누군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정성껏 돌봐주면 언젠가 때가 와서 자기도 이런 처지가 되면 또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돌봐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가 이렇게 정성껏 주인을 돌봐주는 이유가 거기 있다는 것을 그는 나름대로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허위 이외에 또는 허위의 결과로 이반 일리이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누구 한 사람 그를,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동정해 주지 않는 것이었다. 모진 고통을 오래 겪고 나면 사람들은 한 가지를 가장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비록 그것이 아무리 창피스럽게 느껴질지라도...
병을 앓는 아이들처럼, 사람들은 때로 남들로부터 진정으로 동정을 받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 역시 사람들이 아이들을 어르고 위로해 주듯이 그를 애무해 주고 입 맞춰 주고 그를 위해 울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것이다.
그는 당당한 관리에다, 턱수염이 희끗희끗해진 나이가 지긋한 남자였다. 따라서 자기 자신 역시 스스로가 그런 것을 바란다는 게 무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 속으로 그것을 애타게 바라고 있었다. 게라심과의 관계 역시 어딘지 그런 그의 바람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게라심은 그에게 위안이 됐던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울고 싶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애무해 주고 자신을 위해 울어 주길 원했다. 그럴 때 동료 판사 슈베크가 문병을 온다. 이반 일리이치는 울고 떼를 쓰고 칭얼대는 대신 갑자기 엄격하고 사려 깊은 표정을 지으면서 대심원 판결의 의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늘어놓고 집요하게 그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타성에서 나온 행위였다. 그의 주위와 그 자신 속에 깃들인 이 허위가 무엇보다도 짙게 그의 삶의 마지막 나날을 해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