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억지로라도 자신의 병이 나아지고 있다고 믿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특별히 흥분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스스로를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내와의 사이에 불쾌한 일이 생기거나 근무상 실수를 하거나 빈트 놀이 패가 좋지 않거나 하면 느닷없이 그 고통을 온 몸으로 느꼈다. 전에는 설혹 실수를 하더라도 굽히지 않고 성공을 되찾을 때까지 버티고 이겨낸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온갖 상스럽지 못한 일들, 사소한 불쾌감이 모두 그의 기력을 꺾어 버렸다. 그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상태였다.
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 겨우 좀 나아져서 약 효과가 생길 만하면 꼭 빌어먹을 놈의 재수없는 일들이 일어난단 말야 - 그는 자신에게 그런 재수없는 일을 가져다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재수없는 일 자체에 대해 화를 내고 증오했다. 그런 심정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리라는 것을 그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그는 그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주위 사람과 환경에 대한 그의 이런 분노는 분명 그의 병을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역시 불유쾌한 일에 대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신경을 쓰지 말고 무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반대로 자신에게는 안정이 절대로 필요하며, 그 안정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하며, 결국 그래서 조금이라도 안정이 방해되면 신경질이 날 수밖에 없다고 핑계를 대고 있었다.
그는 이것저것 의학 서적을 읽고 의사를 이 사람 저 사람 찾아 다녔다. 그러나 이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병세가 꾸준히, 전체적으로 악화되고 있어서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다고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의사를 찾아보고 이야기를 해보면 병세가 악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속도도 무척 빠르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래도 그는 부지런히 의사를 찾아 다니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달에 그는 또 다른 명의를 찾아갔다. 이 의사도 앞서 찾아간 다른 의사들과 거의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는 진찰하는 각도가 달랐을 뿐이다. 이 의사와의 상담도 그에게는 오로지 의혹과 공포를 더해줄 뿐이었다.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친구 가운데 아주 명성 높은 의사가 있어서 그는 또 찾아가 보았다. 그랬더니 그 진단이 또한 여태까지 들은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 의사는 반드시 고칠 수 있다고 장담했으나, 여러 가지 질문과 그 나름의 추측으로 미루어 본 생각으로 그는 더욱 혼란에 빠졌을 뿐이었다.
의사들은 진단은 각각 다르게 내리면서도 치료 방법은 비슷했다. 또 주는 약은 의사마다 달랐다. 이반 일리이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일주일 동안 새 약을 복용해 보았다. 그러나 전혀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는 아무도 신뢰할 수 없었다. 도리어 우울한 마음만 하루하루 더해갔다.
하루는 친하게 지내는 여인이 찾아와 기도로 병을 고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정신적으로 약해졌단 말인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제부턴 괜히 쓸데없는 의심을 품지 말고, 믿을 수 있는 의사 한 사람만 골라 철저하게 그의 치료법을 따르도록 하자. 당연히 그래야지... 이제부턴 딴 생각 말고 여름까지 한 가지 치료법에만 전념해야지.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이젠 이따위로 갈팡질팡하는 것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 먹기는 쉬웠으나 실행은 불가능했다. 옆구리의 통증은 늘 마음에 걸렸고, 점점 더 심해졌다. 입 속의 메스꺼운 기운도 점점 더 심해졌다. 입에서 항상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느껴 식욕도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일 수 없었다. 뭔가 새로운 것, 아주 두렵고 여태까지 그의 일생에서 만난 적이 없었던 중대한 사태가 그의 몸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오직 그 혼자만 알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이를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겐 매사가 예전처럼 아무 탈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반 일리이치가 무엇보다도 괴로운 것은 바로 주위 사람들의 그런 무관심이었다. 집안 식구, 특히 아내와 딸은 나돌아 다니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서 무엇 하나 그의 고통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이렇게 늘 우울하고 화를 잘 내게 된 것이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인 것처럼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물론 그들도 될 수 있으면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자기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내는 그의 병에 대해서 판에 박힌 듯한 태도를 꾸며내 그가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이 그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그 태도란 이런 것이었다.
"글세, 어쩌면 좋아요..." 그녀는 친지들에게 말한다. "우리집 주인은 딴 사람들처럼 의사가 지시한 치료 방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요. 오늘은 제대로 약을 먹고 음식도 가려 먹고 시간 맞춰서 잠자리에 드는가 싶더니, 다음 날엔 말짱 도루묵이란 말이에요. 약 먹기를 잊어버리고 몸에 좋지 않은 상어 고기를 먹고, 빈트 놀이를 하느라 밤 한 시까지도 자지 않고 버티는 걸요."
"아니 내가 도대체 언제 그랬단 말이야?" 이반 일리이치는 화를 버럭 내며 말한다. "그 일은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놀러 갔을 때 딱 한 번 그랬던 것 뿐이야!"
"어젯밤에도 슈베크씨 하고..."
"글쎄, 늦게 잠드는 건 나도 어쩔 수 없어. 옆구리가 쑤셔서 아무래도 잠을 잘 수가 없는 걸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글쎄 이유가 어떻든 그러다간 당신은 도저히 병을 고칠 수 없을 게 뻔해요. 괜히 우리들만 괴롭히구 말이에요."
아내는 남편의 병에 대해서 남들에게나 또는 그에게, 그 병은 이반 일리이치 스스로의 잘못에서 생긴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병이라는 것도 실상은 자신에 대한 남편의 새로운 학대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도 아내가 순전히 악의로만 그런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고통이, 분노가 조금도 가시지는 않았다.
법원에서도 이반 일리이치는 남들이 자신을 아내와 똑같은, 기묘한 태도로 대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느낀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때는 모두들 자신을 머지 않아 자리를 물러날 사람 대하듯 힐끔힐끔 살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친구들이 갑자기 다정한 말투로 병에 대한 그의 지나친 걱정을 놀려대곤 했다. 그의 몸 속에 번식해서 쉬지 않고 그의 피를 빨아 먹으며 그를 사정없이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이 무섭고 두려운 병이 그들에게는 다시 없이 재미난 농담거리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특히 슈발츠는 더욱 그의 비위를 긁어 놓았다. 슈발츠의 태도는 10년 전의 이반 일리이치 자신을 연상시키는, 명랑하고 생기발랄하고 의젓한 것이었다.
친구들은 이따금 트럼프를 하러 찾아왔다. 새 트럼프를 뜯어서 섞고 패를 돌린다. 다이아몬드에 또 다이아몬드... 일곱 점이 됐다. 딜러가 말했다. 지금 가진 패만으로 까보기로 하자고. 이건 바로 베팅하는 거다 - 유쾌하고 신나는 판이다. 바로 그 때다. 이반 일리이치는 예의 그 자지러질 것 같은 아픔과 입 속에 피어나는 역겨운 메스꺼움을 맛보았다. 그러자 자기가 지금 노름에서 이긴다는 것이 무슨 기괴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는 딜러인 미하일 미하이로비치를 건너 보았다. 미하일 미하이로비치는 혈색이 좋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치면서 세련되고 너그러운 태도로 도중에 포기한 다른 카드들을 쓸어 모았다. 그리고 이반 일리이치가 팔을 벌리지 않아도 쉽게 카드를 모을 수 있도록 그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뭐야, 이 친구는 내가 아주 다 죽게 돼서 팔도 벌릴 수 없는 줄 아는 모양이군...'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완전히 심사가 틀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만 남에게 돌릴 카드를 자기 앞으로 돌려 버렸다. 그는 결국 세 점이 부족해 완전한 승리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가 괴로운 표정을 짓자 친구들은 "몸이 편치 않으면 오늘은 그만 두지. 자 일찍 쉬는 게 좋을 것 같네..." 이렇게 말했다.
쉬다니? 그는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가 게임을 계속하자고 우겨대자 친구들은 그 판 노름을 마지막까지 놀기로 했다. 그러나 모두 말이 없어졌고, 자리에는 우울한 기분이 감돌았다. 그는 분위기를 깬 것이 자기이며 이제 이 우울한 기분을 회복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친구들은 밤참을 먹고 헤어졌다. 그들이 돌아가자 이반 일리이치는 자기의 병은 자신만을 해롭게 하는 게 아니라 남들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런 피해는 줄어들기는커녕 끊임없이 자기의 전 존재 위에 퍼져 가고 있다... 이런 괴로운 자의식과 함께 그는 혼자 남았다.
그는 이런 생각과 육체적인 고통, 거기 따르는 두려움을 안고 잠자리에 들어가 뜬 눈으로 밤을 밝히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런 다음날 아침에도 그는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법원에 출근해서 남들과 이야기도 하고 서류를 뒤적였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똑같은 스물 네 시간으로 채워진 하루를 순간순간 고문으로 가득찬 집 안에서 보내야 했다.
이렇게 그는 누구 하나 이해해 주거나 동정해주는 이도 없이 외로이 견디며 살아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