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 판사의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고장으로 이사 온 이반 일리이치는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고 새로운 지위를 이룩했다. 생활 태도도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그는 지방 관청 당국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 고장의 부유한 귀족과 법관들 가운데서 엘리트들만 골라 서클을 조직했다. 그리고 정부에 대해 적당히 불만을 나타내는 자유주의, 문화주의적인 태도를 연출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우아한 몸가짐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다만 턱수염만은 깎지 않고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이반 일리이치의 생활은 새로운 고장에서도 아주 원만했다. 주 지사에게 불만을 품은 친구들도 마음이 맞는 다정한 사람들이었으며, 봉급도 많아졌다. 특히 당시 새롭게 시작한 빈트 놀이는 그의 생활에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트럼프 놀이에 있어서도 그는 원래 머리를 잘 굴리고 명랑하고 재치 있게 노는 재주를 유감없이 발휘, 대체로 따는 편이었다.
이곳에서 2년간 근무했을 때 이반 일리이치는 장차 아내가 될 아가씨를 만났다.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 미헤리는 그가 드나드는 써클에서 가장 매력 있고, 머리가 좋고, 화려한 아가씨였다.
일상적인 판사 업무를 마친 다음 필요한 오락과 휴식을 위해 그는 그녀와 농담 비슷한 가벼운 관계를 맺었다.
그는 촉탁 관리 시절에는 대체로 춤을 많이 추는 편이었으나 예심 판사가 되고부터는 가끔씩 예외적인 경우에만 춤을 추었다. 자신이 직분상으로는 오등관이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남에게 뒤지지 않는 춤 솜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 그는 춤을 추곤 했다.
그는 야회가 끝날 무렵에 이따금씩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와 춤을 추었으며 주로 그 춤을 추는 시간을 이용해 그녀를 정복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특별히 그녀와 결혼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인쪽에서 그를 그리워하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이 문제를 자신의 일신상에 관련된 진지한 문제로서 검토했다.
'하기는 결혼하지 말아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지.' 그는 자기 자신을 타일렀다.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는 제법 지체가 있는 집안의 딸이었다. 외모도 단정하지만 그녀가 물려받을 재산도 적지 않았다. 물론 이반 일리이치는 그보다 조건이 좋은 처녀를 찾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조건도 괜찮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자신이 받는 봉급 정도의 수입은 그녀도 갖고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사실 그녀는 학벌도 좋고 귀엽고 예쁘며 나무랄 데 없는 그런 처녀였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의 결혼은, 그 때 주위 사람들이 둘이가 무척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서로 합의해서 결혼했다. 그는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런 방식대로 실행했다. 그러한 결혼, 그러한 아내를 맞이함으로써 자신을 위해서 보다 유쾌하고 동시에 훌륭한 결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혼 과정 그 자체와 부부간의 애정 표현, 새로운 가구, 새 식기, 새 내의 등으로 치장되는 결혼 생활 초기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아내가 임신할 때까지도 그랬다. 그래서 이반 일리이치는 일찌감치 결혼이란 것은 사회에서도 인정 받는 것이고, 경쾌하고 즐겁고 흐믓한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예절 바른 생활 분위기를 파괴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강화시켜주는 것으로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내가 임신 2,3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이 결혼 생활에는 무언지 새로운, 생각하지도 못했던 불유쾌한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침울하고, 무척 볼성 사나운 모양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것들을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방법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아내는 아무 이유도 없이, 심심풀이 삼아 그의 생활의 즐거움과 예의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의 생각으로는 그랬다. 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 그녀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그를 질투하고 자신의 비위를 맞춰달라고 요구하고 공연히 대들곤 한다 - 그에게는 그런 것들이 불쾌하고 난폭한 행동처럼 느껴졌다.
처음 얼마 동안 이반 일리이치는 경쾌하고 점잖은 생활 태도를 취함으로써 이런 불쾌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태도는 전에도 그를 곤경으로부터 구출해 주었다. 이런 기대 때문에 그는 아내의 감정에 별로 개의치 않고 종전처럼 경쾌하고 유쾌한 생활을 계속했다.
친구들을 초대해 집에서 노름판을 벌리기도 하고 혼자서 클럽이나 친구에게 놀러 가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는 때때로 굉장히 억척스럽게 막된 말투로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가 그녀의 요구를 무시하면 그때마다 더욱 집요하게 비난을 퍼부어서, 그가 마침내 굴복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역시 그녀처럼 항상 집안에 틀어 박혀서 침울하게 시간을 보내게 될 때까지 결코 그런 행패를 그치지 않은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제야 부부 생활이라는 것이, 적어도 아내와의 생활이 언제나 생활의 즐거움과 품위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즐거움과 품위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그는 스스로 이런 파괴 행위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대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근무는 아내를 위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였다. 그는 그것을 방패 삼아 자기의 독립된 세계를 지키면서 아내와 대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출생과 양육 및 거기 따르는 여러 가지 실망, 장모의 병(이반 일리이치는 이 문제에 자기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등 거듭되는 사건들은 그를 더욱 가정 밖으로 내몰았다. 가정 밖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전보다 더 근무에 열중하게 됐고, 거기에 대해 명예심을 갖게 되었다.
결혼 후 1년도 못 되어 그는 부부 생활이라는 것이 생활에 어느 정도 편의를 줄 수 있으나 실제로는 아주 복잡하고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부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즉, 사회에서 인정 받는 예의 바른 생활을 꾸리기 위해서는 근무에 임할 때와 같은 일정한 태도를 꾸며서 대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부부 생활에서 이러한 태도를 스스로 꾸며냈다. 그는 가정에서는 그저 집에서의 식사, 주부의 역할, 잠자리 등 아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편의와 외면상의 형식적인 품위만을 요구했다. 집에서 그는 명랑과 유쾌와 고상한 것만을 기대했으며 간혹 그런 것이 발견되면 무척 기뻐했다. 그러다가 저항이나 불평에 부딪치면 벽으로 둘러싸인 근무라는 별세계로 피난을 가서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직무 수행에서 훌륭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 받았고, 3년 후에는 검사보로 승진했다. 새로운 직무와 그 중요성, 모든 사람들을 투옥하고 기소할 수 있는 가능성, 논고의 공개성과 여기에 대한 자신의 성공, 이런 것들 때문에 그는 한층 더 근무에 몰입했다.
아이들은 계속 태어났다. 아내는 점점 더 말이 많고 화를 잘 내는 여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잔소리도 이반 일리이치의 가정 생활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는 못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 고장에서 7년 동안 근무한 뒤, 다른 주의 검사로 영전되어 갔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부임했다. 그러나 돈이 딸리고 새로운 고장은 아내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봉급은 전보다 많아졌으나 생활비는 더욱 많이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를 둘이나 잃게 되어 그의 가정 생활은 더욱 즐겁지 못한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새로 옮겨온 지방에서 무엇이고 좋지 않은 일만 생기면 남편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 부부가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면 아이들 양육 문제 때문에 말다툼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싸움이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부부 사이에 드물게나마 서로 사랑하는 기분이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런 것은 결코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문제 때문에 슬퍼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런 상태가 특별히 불편하지도 않았고, 이제 그런 상태를 아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심지어 이것이 가정에 있어서 자기가 해야 할 역할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는 그 역할과 목표를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을 점차 줄임으로써 이루어 나갔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어야 할 경우에는 제 3자와 자리를 함께 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구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생활의 흥미를 모두 이 직업의 세계에서 찾았다. 자기의 권력의식, 미운 사람은 누구든지 혼내 줄 있는 가능성, 법정에 들어갈 때나 동료들과 만났을 때 갖추는 위엄, 상관이나 부하 등 동료들과의 원만한 관계, 특히 자신도 느끼고 있는 사무 관리상의 수완 등 이것들은 언제나 그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 밖에 동료들과의 대화나 식사, 트럼프 놀이 등도 그의 생활의 윤활유였다. 이처럼 이반 일리이치의 생활은 전반적으로, 그가 마땅히 그래야 할 것으로 여기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흡족하고 품위 있게...
그는 그 지방에서 7년 동안 더 살았다. 맏딸은 벌써 열 여섯이 되었다. 아이를 하나 더 잃어버리고 남은 사내 아이 하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 애가 항상 가정 불화의 원인이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사내 아이를 법률학교에 보내려고 했으나 아내는 그에 대한 반발 때문인지 억지를 부려 중학교에 입학시켜 버렸다. 딸 아이는 집에서 공부를 하고 훌륭하게 성장했으며 어쨌든 아들도 착실한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