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쾌활한 소년으로, 다음엔 학생으로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엔 트럼프 친구로서 그렇게 친하게 사귀던 사람이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다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자 자기 자신과 이 여인의 위선에 대한 불쾌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치를 떨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죽은 이의 그 이마와 입술을 덮듯이 뾰죽하게 튀어나온 코를 생각했다. 뭔가 무서운 것이 자기 자신에게도 덮쳐 오는 것 같았다.

'그 무서운 사흘 낮과 밤, 그 다음에 오는 죽음... 이런 고통은 지금 당장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한순간 소름이 끼치는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이내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평소의 생각 - 이건 이반 일리이치에게 일어난 일이지 나에게 생긴 일은 아니야. 나는 그런 일을 겪을 리도 없고 그런 무서운 일은 나에게 생겨날 까닭이 없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내가 지금 여기 어두운 분위기에 짓눌렸기 때문이야. 슈발츠처럼 이런 기분에 짓눌려지지 않도록 해야지... 이렇게 생각을 고쳐 먹었다.

마치 구원의 손길처럼 이렇게 스스로 기분을 다스리자,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침착한 기분으로 일종의 흥미마저 느끼며 이반 일리이치가 운명하던 순간을 자세히 캐물었다. 죽음은 이반 일리이치에게만 있는 특유한 사건으로 자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란 것처럼.

이반 일리이치가 겪은 그 무서운 육체적 고통을 상세히 설명한 후 미망인은 진짜 용건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아, 표도르 이바노비치씨, 이토록 무서운 일이 생기다니요... 이렇게도 괴로운 일이 있을 수 있나요...?" 그녀는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슬픈 듯이 연방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가 코를 풀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울음을 그치고 코를 풀고 나자 그는 말했다.

"저를 믿고 말씀하세요."

그러자 그녀는 다시 넋두리를 늘어놓더니 이윽고 그에게 의논하고 싶었던 진짜 용건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하면 나라에서 돈을 조금이라도 더 타낼 수 있느냐는 것이 골자였다. 그녀는 아마 연금에 관해서 그의 의견을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실상 그가 알지 못하는 것, 즉 이 죽음을 꼬투리로 국고에서 타낼 수 있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아주 상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자기가 아는 것 말고도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돈을 타낼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보려고 하다가 이내 귀찮아졌다. 그는 그저 정부가 인색하다며 몇 마디 욕을 한 후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서는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 이 손님으로부터 풀려날 것을 궁리하는 눈치였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도 그녀의 생각을 눈치채고 담뱃불을 끄고 일어섰다. 그는 미망인의 손을 한 번 더 잡아 주고는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식당에는 이반 일리이치가 언젠가 골동품 가게에서 샀노라면서 무척 기뻐하던 시계가 걸려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거기서 목사 한 사람과 역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와 있는 아는 사람들을 몇 만났다. 그 가운데서 그는 이반 일리이치의 딸을 발견했다. 그도 본 적이 있는 그 아리따운 아가씨는 온 몸을 검은 옷으로 감고 있었다. 날씬한 허리가 상복 때문에 더욱 가늘어 보였다.

그녀는 어둡고 의연한, 그러면서도 어딘지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으로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인사했다. 마치 그가 무슨 죄라도 저지른 것 같은 태도다. 그녀의 등 뒤에는 한 청년이 똑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녀의 약혼자라고 알려진, 재산이 많은 예심판사였다. 그 사나이는 침울하게 표정으로 그에게 머리를 수그리고는 시체가 누워있는 방으로 가 버렸다.

그러자 계단 위에서 이반 일리이치와 아주 닮은 중학생 아들이 나타났다. 그는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법률학교 시절에 봤던 이반 일리이치의 모습과 흡사했다. 소년은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보자 신경질적으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그를 향해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 보이고는 시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장례 미사가 시작되었다. 촛불, 신음소리, 향 연기, 눈물, 훌쩍거리는 울음소리.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얼굴을 찌푸린 채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발을 내려다 보면서 서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죽은 사람을 들여다 보지 않았다.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그 분위기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영향을 받지 않고 앞장 서서 나오는 사람들 틈에 섞여 그곳을 나왔다. 응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당 하인 농부인 게라심이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외투를 찾아왔다.

"요즘은 어떤가, 게라심? 이반은 참 안됐어..."

"모두 하나님의 뜻이죠. 누구나 결국엔 이렇게 가버리는 걸요..."

게라심은 농부답게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는 항상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답게 바람이 불 정도로 잽싸게 문을 열고 마부를 불러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태워주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마치 급히 해야 할 일을 생각해내기라도 한 것처럼.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향과 시체와 석탄산 등 퀴퀴한 냄새가 뒤섞인 불쾌한 공기를 벗어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여간 유쾌하지 않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마부가 물었다.

"아직 그렇게 늦지는 않았겠지... 그럼 후요돌 와시리에비치네 집에 들러야겠군."

이렇게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의 짐작대로 로벨(트럼프 놀이)의 첫 판이 끝날 무렵에 그곳에 끼어들 수 있었다. 그는 마침 잘됐다 싶어서 다섯 번째 파트너로서 그 속에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