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몇 번 십자를 그으면서 관과 사제, 한구석에 안치된 성모상의 중간쯤 되는 곳을 향해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문득 너무 많이 십자를 그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는 동작을 멈추고 잠자코 죽은 이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

시체는 으레 그렇지만 죽은 이는 굳어버린 사지를 관 바닥에 펴고, 영원히 굽어버린 목을 베개에 걸친 채 무겁게 누워 있었다. 움푹 패인 관자놀이와 벗겨진 이마가 마치 밀랍으로 빚은 것 같았다. 윗입술에 덮일 듯이 뾰죽한 코가 유난히 두드러져 보였다.

시체는 그가 이반이 살아있을 때 마지막 보았던 것보다 더 여위어 있었다. 그 모습은 생전과 아주 달랐다. 그러나 시체의 얼굴은 어딘지 살아있을 때보다 더 아름답고 의젓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해야 할 일은 다 했다는, 아주 훌륭하게 의무를 다했다는 표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표정에는 살아있는 자들에 대한 힐책이나 경고 같은 것이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것은 아무 상관 없다. 그러나 어쩐지 그는 기분이 불쾌해져 다시 한 번 부지런히 십자를 긋고는 좀 경망하리만큼 허둥지둥 몸을 돌려 바쁘게 문쪽으로 걸어갔다.

슈발츠는 통로로 이어진 방에서 두 발을 꼿꼿이 버티고 서서 손으로 뒷짐을 지고 실크햇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명랑하고 말쑥한 슈발츠의 모습을 보자 금방 기분이 신선해졌다. '슈발츠란 이 친구는 이런 구질구질한 일 따위에는 개의치 않고 사는군. 남이야 언짢은 기분이건 말건 상관없다는 것이겠지...'

이반 일리이치의 장례식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해오던 일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그 어떤 것도 오늘 저녁 트럼프 놀이를 훼방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인은 이미 새 촛불을 네 개 가져다 세워 놓았고, 일행은 새 트럼프 한 벌을 열어놓은 상태였다. 이 장례식이 오늘 저녁 일행이 모여 즐기는 것을 잡칠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슈발츠는 그냥 가려는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귀에 대고 오늘 후요돌 와시리에비치 집에서 열리는 노름에 끼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저녁 트럼프 놀이를 할 운이 아닌 모양이다. 머리에 크레프를 쓴 여인이 아까 관 앞에 서 있던 여인처럼 유난히 눈꼬리를 치켜 뜨고 다른 여인들과 함께 방에서 나와 여인들을 빈소로 들여보내면서 말했기 때문이다.

"이제 장례 미사가 시작됩니다. 함께 들어가시죠."

이반 일리이치의 미망인인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라는 키가 작고 뚱뚱했다. 본인은 그렇게 보이기를 원치 않겠지만, 어깨로부터 밑으로 갈수록 점점 더 벌어져 보이는 전신을 검은 상복으로 감싸고 있었다.

슈발츠는 이 말을 받아들이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목례를 하면서 발을 멈췄다.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는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보자 한숨을 휴 내쉬면서 그에게 바싹 몸을 가져다 붙이고 손을 잡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는 선생님을 잘 알고 있어요. 선생님과 이반은 정말 친한 친구셨잖아요..." 여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말에 뭔가 그럴싸한 답변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아까 빈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여인의 손을 꼭 쥐고 한숨을 내쉬면서 "그렇구 말구요!" 하고 말해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했다. 그러자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났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제풀에 감동했고 그녀도 따라서 감동한 것이다.

"자, 시작하기 전에 들어가시죠. 사실은 선생님께 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미망인은 말했다. "팔을 좀 빌려주세요."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자기 팔을 내밀어 그녀가 잡게 한 후, 웃음을 참으며 눈짓을 하는 슈발츠의 앞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자넨 오늘 빈트 노름엔 못 끼겠군. 미안하지만 다른 친구를 끌어와야겠어. 요행히 빠져 나올 수 있다면 다섯이 함께 놀아도 상관없으니까...' 그의 짓궂은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더 한층 깊은 비탄의 한숨을 짓자 미망인은 감격해서 그의 손을 부여잡았다. 장미빛 크레튼 갱사로 갓을 씌운 흐릿한 램프불이 켜 있는 응접실에 들어와 두 사람은 탁자 옆에 앉았다. 그녀는 긴 의자에, 그는 스프링이 부러져 거북한 느낌을 주는 낮은 안락의자에 각각 앉았다.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는 그에게 다른 의자에 앉도록 권하려다가 그러는 것이 이 경우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 두었다. 낮은 안락의자에 앉으면서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이반 일리이치가 이 응접실을 설계할 때 그와 의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미망인은 긴 안락의자에 앉으려고 탁자 옆을 지나가다가(이 방에는 크기가 작은 살림살이와 가구들이 촘촘히 들어차 있었다.) 검은 만치리야 크레프가 탁자 위에 놓여있던 조각상에 걸렸다.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걸린 옷자락을 떼어주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엉덩이 밑에서 깔려있던 안락의자가 파도처럼 흔들리면서 그의 엉덩이를 툭툭 쳐댔다.

미망인이 자기 손으로 옷자락을 조각상에 벗겨내기 시작하자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흔들리는 안락의자를 간신히 누르고 다시 주저앉았다. 그러나 미망인이 옷자락을 완전히 벗겨내지 못하자 그는 또다시 엉덩이를 일으켰다. 그러자 안락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흔들리며 이번엔 아주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내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모두 멎고 조용해지자 그녀는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들고 울기 시작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이 소동으로 기분을 잡치고 시무룩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반 일리이치 네 식당 일꾼인 소호로프가 나타나 이 어정쩡한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가 말했던 그 묘지는 가격이 2백 루블이나 하더라는 얘기를 했다.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마치 불행의 상징이나 되는 것처럼 슬픈 눈매로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건너다 보면서 프랑스어로 말했다. "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요."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담배라도 피우세요."

그녀는 비탄에 잠긴 목소리로 너그럽게 말하고 소호로프와 묘지 가격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그녀가 묘지 가격을 자세히 묻고 결정을 내려주는 것을 듣고 있었다. 묘소를 고른 다음 그녀는 장례식에 부를 합창단에 대해서도 일일이 지시를 내렸다. 소호로프는 이야기를 마치고 물러갔다.

"일일이 다 제 손으로 해야 하는군요."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앨범을 한 쪽으로 밀어 놓으면서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말했다. 담배가 타들어가 재가 탁자 위로 떨어지게 된 것을 보자 그녀는 재빨리 표도르 이바노비치 앞으로 재떨이를 밀어주면서 말을 이었다.

"슬픔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그 반대에요... 죽은 그이를 위해 마음을 쓰고 뭔가 일을 하는 것이 저에게는 그나마 위안이 되고, 슬픔을 잊게 해주는 거랍니다."

그녀는 또다시 울 것처럼 손수건을 꺼냈다가 갑자기 스스로를 억지로 참아 누르듯이 몸을 한 번 떨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참, 선생님과 상의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또다시 흔들거리는 의자를 간신히 누르면서 꾸벅 절을 하고 앉은 자세를 고쳤다.

"그이는 마지막 이삼일 동안은 정말 고통이 심했답니다."

"고통이 그렇게 심했나요?"

"정말 끔찍했어요. 마지막에 가서는 몇 분 아니 몇 시간씩이나 쉬지 않고 비명을 질러댔어요. 사흘 밤낮은 숨도 안 쉬고 그저 끔찍한 소리만 질렀어요. 참말이지 제가 그 끔찍한 소리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모르겠어요. 글세 골목이 세 칸이나 떨어진 곳에서도 다 들렸어요. 그때 저의 심정이란 뭐라고 이루 말씀 드릴 수가 없어요."

"의식은 남아 있었나요?"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물었다.

"네."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요. 글쎄 그이는 죽기 15분 전에 우리를 모두 불러놓고 마지막 작별까지 하고 워로자를 데려가라는 말까지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