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은 모두 건강했다. 이따금씩 이반 일리이치가 입 속에서 야릇한 냄새가 난다거나, 왼쪽 배가 좀 거북하다고 말하는 일이 있었으나 아무도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다.

그러나 이상한 기분은 점점 더 심해졌다. 별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옆구리에 뭔가 끊임없이 묵직하고 답답한 기분이 느껴져 기분이 침울해지곤 했다. 이 침울한 기분은 나날이 더 심해져서 급기야 그가 고로빈 가문에 어렵사리 이룩해 놓았던 품위 있고 가볍고, 명랑한 생활 분위기를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내는 날이 갈수록 싸움이 잦아졌다. 머지 않아 가볍고 유쾌한 기분은 사라지고 체면 유지를 위한 법칙만이 유지되게 되었다. 아내가 전부터 가끔 남편에겐 음울한 성격이 있다고 말한 것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녀는 무엇이든지 좀 보태서 지껄이는 성품이었으므로 당신은 언제나 이렇게 무서운 성격이었어요, 내가 사람이 좋아서 20년 동안이나 그걸 참고 살아왔노라고 떠들어댔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는 그가 먼저 그녀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 통례였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 그는 식탁에 앉아서 스프를 먹을 때쯤 거의 언제나 잔소리를 시작하곤 했다. 그것도 그릇이 이가 빠졌다거나, 요리가 글러먹었다거나, 또는 아들이 상 위에 팔을 올려 놓았다거나, 딸의 머리 모양이 어떻다는 둥 트집을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것을 아내의 잘못 탓으로 돌렸다.

아내는 참다 못해 처음에는 말대답도 하고 불쾌하게 쫑알대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밥 먹기 전에 두 차례나 아주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한 후로는 그녀도 그가 병적인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화를 가라앉히고 잠자코 부지런히 식사를 끝마치기로 했다. 그녀는 자기가 그처럼 성격이 유순하다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삼았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아주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기의 생활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내심 단정하고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겼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더 남편을 증오하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기를 바랐으나 그렇다고 그것을 실제로 그것을 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봉급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그녀는 더욱 마음이 상했다. 남편의 죽음조차도 자신을 불행으로부터 구해주지 못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자신의 처지가 더욱 무섭게 불행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늘 조바심을 쳤으나 그런 태도를 될수록 남편에게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 감추어진 조바심은 더욱 남편의 울화를 긁어 놓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반 일리이치의 신경질이 유난히 심했던 어느날이었다. 감정이 가라앉은 후 그는 요즈음 자기가 짜증을 잘 내는 것은 모두 병 때문이라고 변명처럼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내는 말했다. 의사에게 보일 필요가 있다, 이름있는 의사의 진찰을 받도록 하라고 성화를 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의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했던대로였다. 그는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마치 그 자신이 법정에서 취하는 태도를 흉내내기라도 한 것처럼 의사는 정중하게 꾸민 태도와 판에 박은 듯한 형식이라는, 직업의 가면을 쓰고 그를 대했다. 그에게는 이것이 아주 낯익다는 느낌조차 들었다.

"그저 모든 것을 내게 맡기시면 됩니다. 해롭지 않게 해 드릴 테니... 우리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나 똑같은 방법으로 다 해결해 왔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듯한 의사의 그 꾸며진 표정, 이것은 그가 한결같이 법정에서 지켜왔던 태도와 흡사했다. 법정에서 그가 피고인들에게 지어 보이는 표정과 그 저명한 의사가 그에게 보여준 표정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었다.

의사는, 이러저러한 징후는 당신의 몸에 이러저러한 병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모저모 다양한 연구 결과에 의해 확인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병은 아마 또 다른 이러저러한 것이라고 단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어쩌구저쩌구

이반 일리이치에게는 단 한 가지 문제만이 중요했다. 그의 병이 심각한 것이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는 이러한 질문을 무시해 버렸다. 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따위 질문은 이롭지 못한데다, 문제로 삼을 것도 못 되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만 만성 탈장이냐 아니면 맹장염이냐 둘 가운데서 확률을 놓고 따지는 것일 뿐이다.

의사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반 일리이치의 생명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맹장염에 대한 논쟁의 문제였다. 의사는 이반 일리이치를 앞에 앉혀놓고 아주 재치 있는 솜씨로 논쟁을 진행, 맹장염의 승리로 결론을 지었다. 의사는 이와 같은 진단에 덧붙여서 혹시라도 소변 검사 결과에서 새로운 증거가 잡힐지도 모르니까 그때는 다시 진찰해야 한다는, 발뺌을 위한 장치를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이반 일리이치 자신도 피고인들을 다룰 때 빈틈없는 솜씨로 천 번도 넘게 해오지 않았던가. 그가 늘 그랬듯이 의사는 즐거운 듯 득의만면해서 이제 피고의 입장에 선 그를 안경 너머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아... 의사나 다른 사람에겐 이런 일이야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내겐 그렇지 않지...' 이반 일리이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된 것에 놀라고 두려워졌다. 그는 자기 자신이 너무 가엾다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중대한 문제를 이렇게 무성의하게 처리하는 의사가 괘씸해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잠자코 일어섰다. 그리고 탁자 위에 돈을 놓으면서 한숨을 쉬고, 이렇게 물었다.

"환자들은 원래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만... 제가 혹시 아주 위험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요?"

의사는 안경 너머로 그를 차갑게 쏘아 보았다. 마치 '피고인 그대가 허용되지 않은 질문을 끄집어낸다면 부득이 퇴정을 명령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 말씀드릴 필요가 있는 것은 모두 말씀 드렸는데요." 의사는 대답했다. "그 이상의 것은 조사 결과가 나온 다음에 말씀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그리고 의사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느릿느릿 그곳을 나와 기운 없이 썰매를 타고 집으로 달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의사가 한 말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의사가 말한 그 모호한 낱말들은 과연 무슨 뜻을 담고 있는 것일까?

'과연, 내 병은 심상치 않은 것일까? 무척 위험한 것인가, 아니면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까?' 그는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의사가 한 말 속에서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로서는 생각할수록 의사의 말이 아주 위험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길거리의 풍경도 그에게는 서글프게만 보였다. 합승마차도, 늘어선 집들도, 사람들도, 구멍가게도 모두 처량해 보였다. 게다가 잠시도 멈추지 않는 이 둔탁한, 곪는 듯한 아픔... 의사는 모호하게 말하지만, 이 고통은 훨씬 심각한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는 침울하게 아픔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그는 진찰 결과를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아내는 듣고만 있었다. 이야기 도중에 딸이 모자를 쓰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나가려던 참이었다. 사실 아내는 이 답답한 대화를 억지로 참으면서 자리에 앉아 들어주고 있었으나 그런 그녀의 노력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아, 그래요? 그럼 이제 안심이군요." 아내는 말했다. "당신도 이제부턴 정신 똑바로 차리고 꼬박꼬박 약을 드시도록 하세요. 그럼 게라심에게 처방전을 주어서 약국에 가서 약을 사오도록 하겠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옷을 갈아 입으려고 다른 방으로 갔다.

아내가 방에 있는 동안 그는 숨도 쉬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나가자 그는 한숨을 무겁게 내쉬었다.

"이런 젠장! 어쩌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도 모르지..." 그는 중얼거렸다.

이반 일리이치는 약을 마시고 의사의 지시를 착실히 지켜 생활했다. 그러나 의사의 처방은 얼마 못 가서 소변 검사 결과에 의해 바뀌었다.

그건 별로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의사의 검사와 그 결과에 따른 치료 방법에 일종의 혼란이 생긴 것이다. 이것을 의사의 실책이라고만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의사가 한 말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종전대로 의사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 속에서 일종의 위안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약을 먹고 기타 요양에 관한 의사의 지시를 제대로 지키는 것은 이반 일리이치의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그는 또 몸의 고통과 내장의 기능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의 병이나 건강에 대해서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앓고 있는 어떤 환자의 이야기, 특히 자신의 증상과 비슷한 병을 앓는 환자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그는 억지로 마음의 동요를 감추면서 열심히 귀를 기울이거나 여러 가지 질문을 해서 자신의 증상과 견주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