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날이 한 달 두 달 흘러갔다. 새해를 앞두고 처남이 찾아와서 그들 집에서 묵게 되었다. 그날 이반 일리이치는 법원에 나갔고, 아내는 장을 보러 외출했다. 집에 돌아와 서재로 들어서면서 그는 가방을 풀고 있는 처남을 발견했다. 처남은 원기 왕성하고 다혈질이었다. 처남은 이반 일리이치의 발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처남의 눈초리가 이반 일리이치에게는 모든 것을 분명히 깨우쳐 주는 것 같았다.

처남은 '악!' 비명 소리를 지르려다 간신히 참은 것이다. 감추려고 해도 그의 놀란 모습은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다.

"어때, 내가 많이 달라졌지?"

"네에, 좀..."

이반 일리이치가 아무리 처남에게 자신의 변한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애를 쓰며 말해도 처남은 끝내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방문을 닫고 열쇠를 잠근 다음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앞으로 또는 옆으로. 그 다음에는 전에 아내와 둘이서 찍은 사진을 꺼내 놓고 거울 속 모습과 견주어 보았다. 그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 변해 있었다.

그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자기 팔뚝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의자에 주저앉아 밤보다 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안 되겠어, 이러다간 안 되겠어...' 그는 자신을 이렇게 타이르고는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가서 서류를 펼쳐 읽으려 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그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응접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는 발소리를 죽이고 문으로 다가가 방 안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아냐, 그것은 동생이 너무 심하게 생각한 거야." 아내가 말했다.

"심하게 생각하다니요? 누님은 그래, 모르시겠어요? 자형은 지금 송장이나 마찬가지에요. 그 눈을 좀 보세요. 생기가 하나도 없지 않아요. 무슨 병이래요. 글쎄?"

"그걸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의사가 뭐라고 일러 주기는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또 어떤 의사는 정반대 얘기를 하니 말이야..."

이반 일리이치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자리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의사들이 한 말들, 신장이 갈라져서 흔들흔들 움직이고 있다던 말을 생생하게 눈 앞에 그려 보았다. 그는 상상력을 긴장시켜 이 신장을 붙잡아 고정시켜 보려고 애썼다. 그렇게만 해도 좀 나은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부탁해 봐야겠군.' 그는 그 유명한 의사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였다.

이반 일리이치는 갑자기 초인종을 울려 마차를 준비하라고 이르고 외출 준비를 했다.

"아니, 지금 어딜 가세요. 여보?" 아내는 슬픈 표정으로 전에 없이 상냥하게 물었다. 그는 침울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좀 만나봐야 할 일이 있어."

그는 의사를 친구로 둔 그 친구 집으로 마차를 달려갔다. 그리고 그 친구와 함께 의사에게 갔다. 의사와 오래 동안 이야기 한 끝에,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자세히 검토했다. 그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맹장 속에 아주 조그마한 것이 있다. 그것이 원인이다. 그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기관의 에너지를 보강하고 다른 기관의 활동을 약화시키면 흡수작용이 생겨서 금방이라도 나을 수 있다.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그는 저녁식사에 좀 늦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는 가족들과 명랑하게 웃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는 늦게야 서재로 돌아왔다. 그는 서류를 읽으면서도 자기에게는 꼭 해야 될, 중요한 일이 따로 있어서 지금 하는 일을 마치면 곧바로 그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잠시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일을 끝마쳤을 때 그는 그 중요한 일이란 바로 맹장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금방 그 일을 시작하지 않고 응접실로 차를 마시러 나갔다. 응접실에는 손님이 와 있었다. 그들은 집안 사람들 여럿이 함께 이야기도 하고 피아노에 맞춰서 노래도 불렀다.

그의 아내의 말에 의하면, 이반 일리이치는 그날 밤 누구보다도 명랑하게 지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는 맹장에 관한 중요한 일을 뒷전에 돌려놓고 있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11시에 그는 자리를 떠나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병이 든 이래 그는 서재에 딸린 작은 방에서 혼자 자고 있었다. 그는 옷을 벗고 졸라의 소설을 펼쳤으나 별로 읽히지 않았다. 지금 그의 상상 속에서는 그처럼 간절하게 바라던 맹장의 회복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흡수 작용이 일어나고, 배설 작용도 순조롭다. 이제 맹장이 올바른 기능을 회복한 것이다.

'그렇지 바로 이런 식으로 해야지.' 그는 스스로 다짐했다. '오직 자연의 힘에 협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약 먹을 시간임을 깨닫고 일어나 약을 마시고 이번에는 반듯이 누워 약이 제대로 자리를 찾고 아픔을 없애주는 현상을 숨을 죽이고 살폈다.

'그래, 맞아. 그저 규칙적으로 약을 먹고 좋지 않은 것들을 멀리 하는 것이 최고야. 벌써 상당히 차도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아니, 분명히 상당히 나아졌어...'

그는 옆구리에 손을 대 보았다. 만지기만 해서는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이것 봐라.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이젠 정말 훨씬 나아졌어!' 그는 촛불을 끄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이제 맹장은 다 나았고 고통을 흡수하고 있다...'

바로 그때였다. 그는 또다시 전에 느끼던 그 둔탁한 아픔, 곪는 듯한 느낌, 끈덕지고 조용한, 아주 확실한 아픔을 다시 느꼈다. 입 속에서도 똑같은 그 메스꺼운 느낌과 함께... 머리가 흐려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이구, 맙소사!'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또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도대체 왜 또 이러는가,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될까? 이런 빌어먹을!'

그러자 그에겐 문제가 이제 다른 측면에서 다가왔다.

'아니다. 문제는 맹장도 신장도 아니다. 산다는 것 그리고... 죽음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 생명은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이제 사라지려 한다. 아니 이미 사라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붙잡지 못한다. 그렇다. 어떻게 내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단 말인가? 나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단지 오늘이냐 내일이냐 또는 내주냐 하는 시간 문제일 뿐이지 않은가. 어쩌면 지금 당장일지도 모른다. 전에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어두움 뿐이다. 전에는 내가 여기 있었으나 이제는 저기로 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는 어디일까?'

소름이 끼치며 호흡이 멎었다. 그는 단지 심장의 고동 소리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없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역시 죽는 것일까...? 아니다. 죽기는 싫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촛불을 끄려고 떨리는 손으로 더듬거리다가 촛대와 초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베개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결국은 다 마찬가지 아닌가? 죽음... 그렇지. 죽음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고, 가엾게 여기지도 않는다. 흥, 음악을 듣고 있군...'

그는 문을 통해 아득히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대는 목소리와 리또루니에리 반주곡을 들었다. '저들은 내가 어찌 된들 상관없지. 하지만 저들도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바보들 같으니! 내가 먼저 가고, 저희들은 나중에 간다는 차이일 뿐이다. 결국은 마찬가지야. 그런데도 저것들은 그저 즐길 뿐이야. 빌어먹을 것들!'

그는 마음에 원한이 차서 답답하고 견딜 수 없게 괴로워졌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누구나 다 이런 무서운 공포를 느껴야 하다니...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결국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그 무언가 이것과 다른 것이 있을 거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처음부터 차분히 다시 생각해 봐야지.'

그는 다시 생각에 골몰했다.

'그래, 이 병의 원인은 옆구리를 부딪친 거였어. 그땐 아무런 변화도 없었어. 어제나 오늘이나 나는 똑 같은 나일 뿐이었어. 처음엔 조금 욱신거리다가 차차 심해져서 의사를 찾게 됐고, 그때부터 기운이 쇠약해지고 우울해졌지. 그래서 또 의사에게 보이고... 이렇게 나는 점점 더 깊은 구렁텅이로 가까이 간 것이다. 몸은 자꾸 쇠약해지고 눈에 생기도 사라졌다. 바로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창자가 어떠니 이 따위 공연한 생각만 하고 있다. 창자의 병을 고치려고 하지만 사실은 이것이 곧 죽음인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죽음이란 말인가?'

또다시 그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몸을 구부려 성냥을 찾으려고 했다. 뭔가 나무 기둥 같은 것이 팔에 걸렸다. 나무 기둥이 그의 팔을 누르자 그는 홧김에 이를 밀어서 쓰러뜨렸다. 그리고는 분통이 터져 벌렁 나자빠져 지금 당장 죽음이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숨을 헐떡거렸다.

이때 손님들은 흩어지고 있었다. 아내는 손님들을 배웅하다가 뭔가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 여보 왜 그래요?"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뭘 좀 떨어뜨렸어."

그녀는 나가서 촛불을 들고 왔다. 그는 멀리서 달려온 사람처럼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눈을 휩뜨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

"아! 왜 그러세요, 여보."

"아... 아냐, 아무 것도... 그저 뭘 좀 떨어뜨려서..."

무슨 말을 하랴? 말해 보았자 알아듣지도 못하는 걸.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초를 주워서 불을 당기고는 급한 걸음으로 나가 버렸다. 또 다른 여자 손님을 배웅해야 했기 때문에.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는 그대로 천장을 쳐다보면서 벌렁 자빠져 있었다.

"아니, 왜 이러구 계세요? 갑자기 병이 더 심해요?"

"아아니..."

그녀는 알 수 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곁에 와서 앉았다.

"이봐요, 여보, 저어... 다른 의사를 불러보시는 게 어때요?"

이 말은 요컨대 용한 의사를 불러 오자는, 돈은 아까울 게 없다는 뜻이다. 그는 독을 품고 미소를 띠면서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잠깐 앉아 있다가 옆으로 다가와서 그의 이마에 입술을 댔다.

그는 그녀가 자기 이마에 입맞추고 있는 동안 자기 영혼의 힘을 다 기울여서 그녀를 증오했다. 그녀를 밀어버리지 않기 위해 모든 의지력을 동원해 스스로를 억제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이젠 괜찮죠? 푹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