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게라심이 물러가고 하인 표도르가 들어와서 촛불을 끄고 커튼을 걷으면서 방 안을 치우기 시작했으므로 그저 아침이 됐다는 것을 짐작할 따름이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혹은 금요일이든 일요일이든 모두가 변함없이 마찬가지일 뿐이었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절망적으로 끊임없이 멀어지면서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생명에 대한 의식, 그리고 끈덕지게 엄습해 오는 저 가증스러운 죽음 그것만이 유일한 현실이다. 그리고 항상 변함없는 그 허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날짜가 바뀌고 시간이 변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차를 드릴까요?"
'이 놈은 매일 아침 제 주인이 차를 마신다는 습관이 있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없어...'
"그만둬."
"긴 의자로 바꿔드릴까요?"
'방을 치워야 하는데, 내가 가로 걸리는 모양이군. 이들에게 나는 곧 불결이며 무질서일 따름이지.'
"아니, 내버려 둬."
그래도 하인은 곁에서 뭔가 부스럭거리고 하고 있다. 이반 일리이치가 팔을 벌리자 하인은 공손히 다가온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시계."
하인은 옆에 있는 시계를 집어 든다.
"여덟 시 반이군. 저쪽 방에선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나?"
"네, 아직 주무시는데요. 도련님은 학교에 가셨구요... 마님께선 나리가 부르시거든 깨워달라고 그러셨어요. 가서 일어나시라고 할까요?"
"그만 둬라."
'차라도 마셔볼까...' 그는 생각한다.
"그래, 차를 좀 가져와라."
하인은 문으로 걸어간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갑자기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워진다.
"표도르, 거기 약부터 좀 집어 주렴."
'글쎄, 어쩌면 운이 좋아 약이 효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약 효험이 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그는 숟가락으로 약을 마신다. '이까짓 게 들을 리 없지, 순 엉터리인 걸.' 그는 입에 익숙한, 들척지근한 그 맛을 느끼자 절망적으로 이렇게 단정한다. '그런데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이 고통, 이건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제발 일 분 간만이라도 이 고통이 멎어 줬으면...'
그는 끙끙 앓기 시작한다. 하인이 다시 들어온다.
"나가 봐. 가서 차를 가지고 오렴."
하인이 물러가자 이반 일리이치는 또다시 앓는 소리를 냈다. 고통도 심했으나, 그보다도 그는 외롭고 쓸쓸했다.
'모든 것이 언제나 그렇다.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는 낮과 밤들. 제발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그러면 그 다음엔 무엇이 오나? 죽음, 암흑, 정말 끔찍하다... 그 무엇이 오더라도 죽음보다는 낫지!'
하인이 쟁반에 차를 받쳐 들고 들어오자 그는 오래도록 멍하게 하인을 쳐다보았다. 마치 그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여기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표도르가 그런 시선에 당황하여 어물거리자 이반 일리이치는 비로소 제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잘했다. 거기에 그냥 놓아라. 그리고 내가 세수하고 셔츠 갈아 입는 것을 좀 도와주렴."
이반 일리이치는 세수를 시작했다. 쉬엄쉬엄 손과 얼굴을 씻고, 이를 닦은 다음 머리에 빗질을 하면서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다. 푸른 기가 도는 이마에 머리카락이 착 달라붙어 있었다.
셔츠를 갈아 입을 때 자신의 몸을 보면 더욱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몸을 보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가운을 걸치고 담요로 몸을 감싸고 차 쟁반을 앞에 놓았다. 이렇게 팔걸이 의자에 기대 앉는 짧은 순간 그는 상쾌한 기분을 맛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찻잔을 입에 대자 또다시 그 메스꺼움과 고통이 시작되었다. 그는 억지로 차 한 잔을 마신 다음 두 다리를 뻗고 모로 드러누웠다. 그리고 하인을 내보냈다.
그저 모든 것이 똑같다. 때로는 희망이 한 방울 반짝이는 듯 하다가 다음 순간 절망의 거친 바다가 파도를 일으킨다. 언제나 그 고통, 똑같은 그 고통, 그리고 외로움과 우울함, 모든 것이 항상 같을 뿐이다.
혼자 있노라면 무섭고 침울해진다. 그래서 누구든지 옆에 불러 같이 있고 싶었으나 또 누가 곁에 있으면 더욱 침울해진다.
'모르핀을 놓아 달라고 할까... 이 고통을 잊을 수만 있다면... 이번에 의사한테 부탁해서 좀 다른 방법을 써 달라고 부탁해야겠어. 제기랄, 이건 정말 미치겠군. 정말 못 견디겠어...'
한 시간 두 시간 이런 상태로 흘러간다. 문득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난다.
'의사가 온 것이겠지.'
과연 뚱뚱한 의사가 팔팔하고 생기에 가득찬 표정으로, 쾌활한 태도로 들어선다. 마치 '이런, 또 시름에 잠겨 계시는군. 이제 곧 다 낫게 해 드리죠' 하는 듯한 표정이다. 의사 역시 자신의 쾌활한 표정이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런 표정이 얼굴에 굳어져 버려 바꿀 수가 없다. 마치 아침부터 연미복 차림으로 여러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의사는 힘차게 위로라도 해주는 것처럼 두 손을 비빈다.
"몸이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추위가 대단하군요. 잠깐만 불을 좀 쪼이겠습니다."
마치 '불을 쪼이는 동안만 잠깐 참으면 곧 금방 낫게 해 드리죠'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픈 건 좀 어떠세요?"
'요즈음 경기는 좀 어떠세요?' 의사는 이렇게 묻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지난밤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이렇게 묻는 것이라고 느낀다. 적어도 이반 일리이치의 느낌은 그렇다.
'자네는 늘 거짓말만 늘어놓으면서도 그게 부끄럽지 않은가?' 이반 일리이치는 이렇게 묻는 표정으로 의사를 본다. 그러나 의사는 이런 질문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 이반 일리이치는 말했다.
"항상 마찬가집니다. 통증이 도무지 줄어들거나 덜하지도 않아요. 좀 어떻게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환자들은 으레 그렇게 말하는 법이죠. 이제 겨우 몸이 좀 녹았습니다... 까다로운 프라스코바아 후요드로브나께서도 이제 제 손이 차다는 소리는 못하겠죠... 어디, 좀 볼까요?"
의사는 손을 내밀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표정을 싹 바꾸어 근엄한 얼굴로 진맥을 하고 열을 재어 본 후 손으로 환자의 몸을 두드리고 청진기를 대보기 시작한다.
이반 일리이치는 이런 것들이 모두 쓸데없는, 공허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의사가 무릎을 굽히고 자신의 몸 아래 위로 청진기를 대어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진찰에 열중하는 것을 보노라면 어느결에 그의 태도에 빨려 들어가곤 했다. 마치 법정에서 변호사의 변론을 듣고 있노라면 그들이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그 거짓말을 하는 이유까지 훤히 보이면서도 어느덧 거기에 빨려 들어가듯이.
의사가 긴 의자 옆에 무릎을 굽히고 이반 일리이치의 몸을 똑똑 두드리고 있는데, 문에서 아내의 옷 스치는 소리가 났다. 의사가 왔다는 것을 알리지 않은 하인을 나무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방에 들어오면서 남편에게 입을 맞추기가 무섭게 자기는 벌써부터 일어나 있었다는 것, 의사가 집에 온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 방에 오지 않았다는 등 변명을 해댔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의 온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이다. 그녀의 하얀 살결과 알맞은 몸집, 고운 팔목, 윤기 있는 머리카락, 생명력에 가득찬 눈 등이 모두 그에게는 트집 잡을 구실일 뿐이다. 그는 모든 정신을 기울여 그녀를 증오한다. 그녀와의 접촉은 그런 증오를 그에게 가득차게 했다. 그것은 그를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
그와 그의 병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과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한 번 정해 놓으면 결코 고치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가 그를 대하는 태도도 그랬다. 즉 그가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서 저 지경이 되었다는 것, 모두 그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 그러나 자기는 애정을 갖고서 이를 나무라고 있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 태도를 완성해놓고 결코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이 양반은 남의 말을 통 듣질 않아요. 약도 때 맞춰 드시지 않구요.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그래도 다리를 치켜 들고 주무신다니까요. 그러니 열이 위로 오를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글세...?"
그녀는 남편이 게라심을 시켜 다리를 쳐들고 눕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의사는 비웃는 듯, 불쌍하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띄운다. 마치 '뭐 별 수 없죠. 환자란 이따금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곤 하니까요. 그래도 그 정도야 봐 주어야죠.' 라고 말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