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이치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죽음은 아무래도 생소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끊임없는 절망의 나날로 빠져 들어갔다.
그는 다른 생각을 계속 끌어대 그 속에서 마음을 의지할 지주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어디, 다시 한 번 근무에 정력을 쏟아보자. 사실 난 그것으로 살아온 셈 아닌가...'
그는 자신의 머리에서 모든 의혹의 상념을 쫓아 버리면서 부지런히 법원에 가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랜 습관대로 의자에 걸터앉아 무슨 의미가 있는 듯한 눈초리로 사람들을 둘러 보았다. 야윈 두 팔을 회전 의자의 팔걸이에 올려놓고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동료를 향해 한 두 마디 작은 목소리로 말은 주고 받으며 몸을 숙여 서류를 밀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를 꼿꼿이 한 다음 늘 써 먹는 말로 심문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옆구리의 통증이 그의 존재를 빨아 들이는 것 같은 작업을 개시했다. 사건 진행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식이다. 그는 귀에 신경을 집중시켜 이 통증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통증은 태연하게 작업을 계속했다. 드디어 그놈(죽음에 대한 생각)은 그의 눈 앞을 가로막고 선다. 그리고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몸이 움츠러들고 눈에선 빛이 사라진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 본다.
'정말 저 놈만이 진실이란 말인가...?'
동료들과 부하 직원들은 이반 일리이치 같이 뛰어나고 능숙한 법관이 갑자기 말을 더듬고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다. 슬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몸을 떨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면서 억지로 공판이 끝날 때까지 견디었다.
그는 이제는 법원 일도 전처럼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하며 그놈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서글픈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그놈이 자기를 꼼짝 못하게 해놓고, 그놈만을 바라보도록 만든 것이다.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결코 외면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 무엇을 방패막이로 세워 놓아도 그놈은 기어이 그걸 뚫고 들어오고야 만다. 아무리 해도 막을 길이 없다.
그는 어느날 그 응접실 - 바로 그가 몸소 장식한,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사다리로부터 떨어져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병을 얻게 된 - 그 응접실에 들어 갔다. 그는 그곳에 놓여 있는 탁자에 칼 자국 같은, 긁힌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 원인을 생각해 보다가 드디어 그것이 끝이 구부러진 앨범의 청동 장식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자신이 애정을 쏟아서 만들어 놓은 그 귀중한 앨범을 들춰 보았다. 그리고 딸과 그 친구들이 칠칠치 못하고 뒤끝이 깨끗치 못한 것에 화가 나고 못마땅해졌다. 앨범은 군데군데 찢어졌고, 사진들도 아무렇게나 뒤죽박죽 붙여져 있었다.
그는 힘을 들여서 그것을 깨끗이 정리하고 구부러진 장식도 고쳐 놓았다. 그러다 문득 앨범이 놓여 있는 탁자를 꽃이 놓인 다른 구석으로 옮기고 싶어졌다. 그는 하인을 불렀다. 그러나 아내와 딸이 와서 그의 계획을 반대하며 말다툼을 벌렸다. 그러나 그는 보통 때 같으면 부아가 났을 이 일에도 별로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그놈(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또 어디에도 그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몸소 탁자를 옮기려고 하자 아내가 말리면서 말했다.
"그만 두세요. 딴 사람을 시켜요. 그러다가 또 몸이 상할 거에요."
그러자 갑자기 그놈(죽음)이 또 칸막이 너머에서 어른거렸다. 그는 그놈을 보고 만 것이다. 그놈이 잠깐 어른거렸기 때문에 금방 꺼져버릴 줄 알았다. 그러나 그놈은 어느 틈에 생각치도 못하게 그는 옆구리에 늘어붙어 있었다. 거기에는 역시 같은 것이 도사리고 앉아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역시 전처럼 욱신거린다. 이제는 그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놈은 꽃 뒤에서 뚜렷이 그를 지켜 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그렇다. 나는 바로 여기 이 창문에서 마치 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목숨을 떨어뜨린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이란 말인가? 그런 무서운, 그런 어리석은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럴 수 없지. 그럴 수는 없어...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일이 바로... 여기 있단 말이야.'
그는 또다시 그놈과 단 둘이 있게 되었다. 그놈과 눈을 마주 치면서도 그놈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저 그놈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몸이 얼어붙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