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이슥해서야 아내는 돌아왔다. 살금살금 발 끝으로 걸어 들어왔으나 그는 그녀가 들어온 것을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는 눈을 떴다가 금방 다시 감아 버렸다. 그녀는 게라심을 돌려 보내고 자기가 그의 옆에 앉으려 했다. 그는 눈을 뜨고 말했다.

"그만 두고 저 방으로 그냥 가도록 해요."

"여보, 더 심해요?"

"마찬가지야."

"그럼, 아편을 좀 드세요."

그는 아내의 말에 따라 아편을 마셨다. 그녀는 옆 방으로 건너갔다.

새벽 세 시경까지 그는 야릇한 혼수 상태에 잠겨 있었다. 자신이 통증과 함께 어디론가 아주 좁은 굴 속 같은 곳을 깊고 시커먼 자루 속에 갇혀서 점점 깊게 빠져 들어가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곳을 빠져 나갈 수가 없다. 이 무서운 기분은 고통과 더불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두려워 하기도 하고 또 가는 데까지 가 보자고 마음 먹기도 하면서 싸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벼랑에서 떨어지듯이 그는 혼수 상태에서 깨어났다.

게라심은 침상의 발치에 앉은 채로 조용히 자고 있었다. 그는 긴 스타킹을 신은 야윈 다리를 그의 어깨 위에 올려 놓은 채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갓을 씌운 촛불과 멈출 줄 모르는 이 고통...

"이제 그만 가서 자거라, 게라심."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괜찮습니다."

"아니야, 이젠 그만 가 보거라."

그는 다리를 내려놓고 한 팔을 밑에 고이고 옆으로 드러누웠다. 자신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게라심이 옆방으로 갈 때까지 간신히 참았다가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자신의 쇠약함, 무서운 고독, 사람들의 잔혹함, 신의 잔혹함을 생각했다.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것을 생각하고 우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당신은 이런 짓을 하십니까? 왜 저를 이리로 보내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정말 무엇을 위해 이런 혹독한 괴로움을 주십니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오로지 아무 대답이 없다는 것, 결코 대답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울었다. 또다시 고통이 엄습해왔으나 그는 몸도 움직이지 않고 누구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자, 더 더 때려 주시오!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했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이윽고 그는 조용해졌다. 울음을 그쳤을 뿐 아니라 호흡도 중지하고 전신에 주의를 집중했다. 그것은 마치 목소리로 하는 말이 아니라 영혼의 소리, 그의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생각의 흐름을 듣는 듯한 자세였다.

'도대체 너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것이 그가 인식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무엇이 필요하냐? 무엇을 원하느냐 말이다.' 그는 자신에게 되풀이해서 물었다. '무엇이냐고? 그것은 고통을 없애는 것이다. 살아나는 것이다.' 그는 대답했다.

'살아난다? 어떻게 살아난단 말이냐?' 영혼의 소리가 물었다.

'예전에 내가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다. 오붓하고 유쾌하게...'

'오호, 그래? 예전에 네가 살아왔듯이 오붓하고 유쾌하게 말이지?' 그 소리는 묻는다.

거기서 그는 머리 속에서 자기의 유쾌한 생활 중에서 특히 좋았던 순간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들 모든 유쾌했던 생활들이 이제는 당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느껴졌다. 유년 시절 최초의 기억을 제외하고는... 그러자 이 유년 시절은 정말 좋았던 그 무엇인 것처럼 여겨져서 만약 그것이 되돌아올 수만 있다면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유년 시절의 이 유쾌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철이 들었을 때부터의 기억, 당시엔 무척 즐거웠던 것들은 이제 그의 눈 앞에서 흩어져 버리고 무언지 하잘 것 없는, 오히려 누추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변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것은 법률학교 시절부터 시작된다. 거기에 진실로 좋은 것이 무엇 하나라도 있었던가!

그곳에 즐거움은 있었다. 우정도 희망도 있었다. 그러나 상급생이 되어 가면서 이 좋았던 것들도 차차 희미해졌다. 다음으로 주지사 밑에서 처음으로 근무했던 시절의 좋았던 순간이 나타났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사랑의 기억이었다. 그러나 이것들도 이내 모두 뒤범벅이 되어 버렸다. 그 다음부터는 좋았던 것이 차차 드물어져서 시간이 흐를수록 거의 없어져 갔다.

예상하지 못했던 결혼... 그 환멸, 아내의 입 냄새, 육욕, 허위! 그리고 이 죽음과 다름없는 근무 생활, 돈에 쪼들렸던 생활, 이렇게 흘러간 일 년, 이 년, 십 년, 이십 년... 어디까지 간다 해도 결국 마찬가지다.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더욱 활기가 사라질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준비가 다 되었다. 죽음이 있을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뭐란 말이냐? 무엇 때문이란 말이냐? 이럴 리가 없다. 인생이 왜 이리도 무의미하고 추악해야 한다는 말이냐? 가령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왜 죽어야 하나, 왜 고통을 겪으면서 이렇게 죽어야 하는 것인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아니냐?

'어쩌면 나는 잘못 살아온 것 아닐까? 하지만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온 것 뿐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잘못되었단 말이냐?'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에 대한 단 하나의 결론을 마치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얘기인 것처럼 완전히 부인하고, 제풀에 멀리해 버렸다.

도대체 너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느냐. 삶이냐? 어떻게 사는 것이냐? 그는 자신에게 되풀이해 물었다. 그렇지, 이게 바로 법정이란 말이다. 하지만 나에겐 결코 죄가 없다! 그는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그는 울음을 그치고 이마를 벽에 돌려대고 단 한 가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무엇 때문이냐, 이 공포는 무엇 때문이냐?'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을 찾아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