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술 따르기냐?”
탁! 기생이 들어 바치는 술잔을 병기는 쳐 버렸다. 술은 좌우편으로 헤치며, 잔은 웃목으로 달아났다. 일족의 몰락, 눈 앞에 걸린 무서운 문제 때문에, 병기는 술을 먹어도 취하지를 않았다.
흥선 댁 도령의 승통―뒤이어 결정된 대운군의 의주―그 뒤를 따라서 대원군의 섭정 결정―전광석화와 같이, 그러나 또한 명쾌한 솜씨로 처리된 이번의 사건 뒤에 숨은 흥선군의 위력이라 하는 것을 병기는 비로소 알았다. 한 가지가 진행되고 두 가지가 진행될 동안 처음에는 단지 우연한 행복이 흥선에게로 떨어지거니 이만큼 보았지만, 지금에 있어서는 그 뒤에서 움직인 흥선의 거대한 손을 병기도 알았다.
김문 가운데서도 병기는 가장 노골적으로 흥선을 모욕하던 사람이었다. 자기의 모욕에 참다 참다 못해서 돌아서서 흔히 눈물을 짜 내던 과거의 흥선을 생각한 때에, 병기는 자기의 일족―적어도 자기뿐은 흥선이 권세를 잡기만 하는 날이면 당장에 그 보복을 받을 것을 예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감, 약주 안 드시고 무슨 생각을 하세요?”
기생이 다시 술을 부어서 권할 때에, 병기는 이번에는 나무람이 없이 받아 마셨다.
“자, 또 부어라!”
“네…”
또 한 잔―
“자, 또 부어라! 열 번만 연거푸 부어라!”
연하여 따르는 술을 연하여 열 번을 받아 마셨다.
“야 옥주야!”
“네?”
“흥선군이 대원군이 되었다.”
“네? 대언군? 대언군이 뭐오니까?”
“상감의 아버님―흥선군의 작은도령이 나라님이 되셨다.”
“네? 참말이세요? 그럼 계월이한테 한 턱 잘 받아야겠구만요?”
―한 턱 아니고 백 턱이라도 받아라. 이 거대한 변화를 너희들은 단지 한 턱 받을 사람쯤으로 아느냐? 이 가련한 동물아―
―그렇다! 내일 운현궁을 찾아 가 보자. 어차피 몰락할 신분이거니, 내일 운현궁을 찾아서 대원군의 심중을 한 번 진맥해 보자. 아직 상감의 즉위식도 들지 못하고, 따라서 정식으로 섭정의 지위에도 서기 전에 이 편에서 먼저 그를 찾아서, 그 의향을 진맥해 보고, 그가 손을 쓰기 전에 먼저 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자.
진퇴의 길, 여기 대하여 병기는 자진하여 흥선대원군을 찾아 보기로 결심했다.
어젯밤까지도 발 아래로도 보지 않던 흥선이로되, 오늘날은 이 나라의 생살 여탈권을 한 손에 잡은 권위의 정이었다. 저 편에서 무슨 행동을 취하기 전에 먼저 이 편에서 찾아서, 그 때의 경우를 보아서, 만약 머리를 수그릴 필요가 있으면 숙일 것이고, 숙인대야 쓸 데가 없으면 고요히 자기의 운명에 복종할 것이고―이렇게 마음먹고 병기는 이 위급한 마당에 흥선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옥주야!”
“네?”
“너도 이제부터는 흥선군께 수청을 들어야겠구나?”
어제까지 총애하던 기생들조차 내일부터는 자기를 버리고(전날 그렇게 눈 아래로 깔보던) 흥선에게로 달려갈 것을 생각할 때에는, 병기는 질투 비슷한 감정조차 일어나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영창에 달빛이 비치었다. 만월의 밝은 빛―그것은 마치 장차 빛나려는 흥선의 빛을 예언하듯이 교교한 빛을 영창 위에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