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섭정 대원군의 명의로서 정부 관리의 이동이 발표되었다. 이 발표를 보고 모두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양반은 양반이로되 아직껏 무세하던 소론, 남인, 북인이 많이 요로에 서게 된 것도 그들을 놀라게 하였다. 중인, 상놈까지 파격의 등용을 한 것도 그들을 놀라게 하였다.

 

흥선군 시대의 친구들이 비교적 적게 등용된 것도 그들의 의외였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보다도 더욱 의외로 느낀 것은 김씨 일문에게 대한 관대한 처분이었다.

 

김좌근은 실직은 떠났으나 그냥 상부(相府)에 머물게 되고, 그 양자 병기가 단 한 사람 삭관된 뿐, 병학도 선왕때보다 위가 올라서 공렬(公列)에 서게 되고, 병국도 훈련대장에서 호조판서로 오르게 되고―이것이 가장 눈을 크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벼우면 원배(遠配), 그렇지 않으면 사사(賜死)거나 참(斬)을 할 것이어니 하고 있었는지라, 이 처분은 과연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이러한 관대한 처분 때문에 국태공으로서의 흥선의 광채는 찬연히 그들의 머리 위에서 빛났다.

 

이제는 대비도 없었다. 상감의 그림자까지 태공 뒤에 감추어졌다. 그들의 앞에 커다랗게 나타나서 빛나는 것은 국태공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광채뿐이었다.

 

그 광채의 아래 만조 백관들은 공손하는 뜻으로 허리를 굽혔다. 잠들었던 사자는 드디어 기지개를 하였다. 그리고 첫 포함성을 질렀다.

 

산림이 울리어 나가는 그 포함성―그 아래에서 잠 깬 사자는 그의 운동을 시작하였다.

 

쇠퇴한 국운, 피폐한 국정, 실추된 국권―이 모든 무거운 짐을 한 몸에 뭉쳐 지고, 거인은 드디어 그 조리(調理)를 시작하였다.

 

오랫동안 시정에 배회하여 이 시민의 사정과 고통을 속속들이 다 아는 이 거인은, 시민들을 도의 쓰라림에서 건져 올리고자 그의 커다란 손을 내어 밀었다. 정확히 통찰하는 그의 눈과 든든한 그의 손은, 오랜 학정에 피폐해서 마지막 힘까지 다 사라져 가려는 시민의 위에, 새로운 청량제를 부어 주려고 준비하였다.

 

이 사자가 출현하기 전에 삼림 속에서 제 세상이로라고 횡행하던 시랑들은 사자의 포함성에 질겁을 하여 그림자를 감추어 버렸다. 이 사자의 구태여 그들을 쫓아가서 필요 없는 살육을 행할 필요가 없이, 시랑들은 스스로 숨어 버렸다.

 

아직껏 소인들의 장난에 시달리고 시달린 삼천리의 강토는 이 거인의 출현을 혼연히 맞았다.

 

운현궁은 정치의 중심지며 따라서 이 나라의 중심지로 되었다. 이전에는 비루먹은 개 한 마리 찾지 않던 흥선댁이나, 지금은 팔도 강산에서 매일 찾아 드는 수 없는 시민의 무리 때문에, 수십 명의 궁리도 그 응대를 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옛날 흥선이 관직을 내어 던진 이래, 오랫동안 쓸쓸하기 짝이 없던 그 집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봄은(오랫동안 쓸쓸하였더니만큼) 또한 유달리 화려한 봄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