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이제 명년(갑자년) 정월 주상 전하의 즉위식이 지난 다음에야 구체적으로 결정이 될 서이지만, 지금 내정된 것으로 그만큼 되었으니 그렇게 알아 두라는 것이었다.

 

조두순의 집에 서나와서는 정원용의 집에도 잠시 들렀다. 그리고 거기서도 주상 전하 영립의 공로를 감사하고 정원용의 아들 기세(基世)는 대비의 분부로 병조판서로 내정이 되었으니 그만큼 알아 두라고 당부하였다.

 

흥선이 원용의 집에서 운현궁으로 돌아온 때는, 겨울의 짧은 해가 다 가고 꽤 어두운 때였다.

 

불안(不安)의 계해년 섣달이었다.

 

상감이 갑자기 승하였다. 그 후사가 없었다.

 

누구? 누가 될까?

 

모두들 이러한 마음으로 하회를 기다릴 동안, 의외 천만으로 흥선의 아드님이 이십 육대의 조선 군주로 옹립이 되었다.

 

이 의외의 일에 딱 벌렸던 입이 닫히기도 전에 뒤따라 더욱 놀랄 만한 일이 생겼다.

 

흥선이 섭정이었다.

 

그 족보로 따지자면 당당한 종실의 공자지만, 영락되고 영락되어, 기생집 아랫목이나 지키고 투전판이나 찾아다니던 흥선이었다. 그 흥선이 한 번 뛰어서 국태공이 되고 두 번 뛰어서는 왕의 왕이 되었다.

 

그 너무도 급속한 변화에 누구 한 사람 크게 반대하여 볼 겨를이 없었다. 너무도 의외의 변화에 반대성을 올리려고 할 때에는, 벌써 한 걸음 더 뛰어 올라가서, 반대성이 이르지도 못할 높은 자리에서 위연히 굽어 보는 흥선이었다.

 

한 번 뛰고 두 번 뛰어서, 이런 높은 지위에 올라갔거니, 그 첫 행정으로서 원한 많은 김씨 일문을 잔멸시키려니, 누구든 이렇게 믿었다.

 

그러나 흥선의 김씨 일문에게 대하여 한 손가락도 대지 않았다.

 

이것은 무슨 까닭?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장래의 일격을 준비하는 예비 행동인가?

 

혹은 섭정공의 세력으로도 김문의 힘은 능히 꺾지 못함인가?

 

무거운 기분에 잠긴 계해년 섣달이었다.

 

아직 국왕의 즉위식도 들지 못하였다. 따라서 흥선도 정식으로 섭정의 자리에 서지 못하였다.

 

흥선은 일체로 침묵을 지켰다.

 

그런지라, 다만 불안에 싸일 뿐, 누구라 장래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흥선으로서 만약 이제도 보통인의 생활을 했으면, 그 생활로 미루어서 장래를 추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 너무도 변화 많은 생활을 보낸 사람이라, 그 마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하늘밖에는 알 이가 없었다.

 

김문뿐 아니라 정부의 백관은 모두 전전긍긍하였다. 이제 이 해가 지나고 새 해, 흥선이 섭정의 위에 정식으로 앉게만 되면, 어떻게 세상이 뒤집힐지 알 수가 없으므로 마음을 놓을 사람이 없었다.

 

위로는 의정부 삼공에서부터 아래로는 자사차역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인사 변동이 없었다.

 

전례로 따져 보자면, 한 개의 세력이 꺾이고 다른 세력이 들어설 때에는, 한 번 뒤집어 놓은 듯이 모두 변하였는지라, 지금 한 사람의 이동도 없는 것이 더욱 무시무시하였다.

 

단지 승후관 조성하가 정삼품 통정대부 우승지(正三品通政大夫右承旨)로 승차하고, 상감의 백형 재면이 새로이 승후관으로 임명된 뿐, 영의정 김좌근 이하 한사람도 아직 이동이 없었다.

 

이 무시무시한 '안정' 때문에 모두 모이면 수군수군하였다.

 

돌아가는 말로서는, 이제 상감이 등극하고 대원군이 정식으로 취임하게만 되면 당일로 김씨 일문의 수령 삼십여 명을 한꺼번에 참하라는 밀령을 대비에게서 받고, 흥선은 극비밀리에 그 준비를 하고 있다 하여, 가이나 불안한 공기를 더욱 불안하게 하였다.

 

어제까지는 한 개의 거리의 부랑자에 지나지 못하던 흥선의 지금 일동 일정 일거수 일투족은 온 조야의 주의의 표적이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흥선은 흥선으로서 아무 의견도 입 밖에 내지 않고 다만 정관하고 있었다. 섭정 태공의 자리를 정식으로 잡는 날을 고요히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