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이후 대비가 무리하게 사람을 추천할 때가 있으면 그 때에 대한 방비선인 동시에, 또한 재래의 관습을 깨뜨려 버리고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자기의 정견을 대비께 내어 비침이었다.

 

대비의 조카 성하를 상당한 자위에 등용하겠다는 것을 약속하여, 흥선은 대비의 마음을 얼마만큼 흡족하게 하였다.

 

김좌근, 병학, 병기, 병필 등 김족의 지금의 거대한 재산은 모두 학정에서 얻은 것이니, 속죄하는 뜻으로 매명에 몇십만 냥씩 거두어 상납하게 할 터이니, 용동궁에 붙여서 대비의 사용에 쓰라고 하여, 대비의 마음을 물질적으로도 흡족하게 하였다.

 

대비께 하직을 하고 창덕궁에서 나올 때에, 흥선은 지금 바야흐로 커 가는 자기의 위력을 새삼스러이 통절히 느꼈다.

 

그 사이의 빈곤 때문에 영양 불량으로 장작개비같이 빼빼 마른 자기의 손을 관복 소매 밖으로 내밀어 물끄러미 굽어 볼 때에, 흥선은 이제 이 장작개비 같은 손아귀의 안으로 들어올 거대한 그 무엇을 생각하고 빙긋이 웃었다.

 

대궐에서 돌아오는 길에 흥선은 영초 김병학의 집을 찾았다.

 

흥선에게 대하여 그다지 혹독한 일은 한 일이 없으나, 역시 김족의 한 사람으로 전전긍긍히 처분만 기다리고 있던 영초는 망지소조하여 버선발로 뛰어나와서 맞았다.

 

“대감! 이전 대감의 은혜를 갚을 날이 오늘에야 왔소이다.”

 

흥선이 영초에게 허리를 굽히며 이렇게 말할 때에 영초는 땅에 머리를 조았다.

 

이전과 같은 '상갓집개'가 아니요, 지금 웃사람의 지위로서 이 집을 찾을 때에 흥선은 감개 무량하였다.

 

“대감! 이젠 어느 설 때 보내 주신 세찬―그 날의 은혜는 흥선 죽을지라도 잊을 수가 없소이다.”

 

내일 모레면 섣달 그믐이라 대목께, 팽경장의 집에서 참지 못할 수모를 받고 쫓겨 나와서, 갈 데가 없어서 바람 찬 종로의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지나가던 영초에게 발견이 되어 영초의 집으로 끌려 가서 적지 않은 대접도 받았거니와, 더구나 많은 전곡을 보내 주어서 무사히 과세를 하게 한 그 날의 고마움은 흥선의 마음에 아로새겨져서 잊지 못할 일이었다.

 

“원한은 기억할 필요가 없으나, 은혜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외다. 그 날의 은혜 이제 갚을 날이 있으리라.”

 

흥선은 감연히 이렇게 말할 때에, 영초는 황공하여 감히 머리도 들지 못하였다.

 

여기서 흥선은 영초에게, 김문에 대한 조 대비의 처분을 말하여 주었다.

 

하나, 조 대비는 김문에게 대한노염이 매우 커서 모두 극형을 엄명하였지만, 겨우 주선을 하여서―

 

하나, 김좌근은 영의정을 사퇴하고 단지 상신에 머물러 있을 것.

 

하나, 병기는 당분간 근신하는 뜻으로 시골이라도 내려가 있으면 장차 다시 부를 기회가 있을 것.

 

하나, 병필은 실직을 사퇴할 일.

 

등등으로 낙착이 된 것을 말하고, 병학, 병국의 형제는 이전의 은혜도 있으니, 조정에 머물러서 흥선 자기를 협찬해 줄 것을 아울러 부탁하였다.

 

전대 미문의 은전(恩典)이었다. 이런 관대한 처분을 뜻도 하지 않고 있던 병학은, 혼연히 이 은전을 자기네의 일족에게 알게 하여, 대감의 주선이 덕을 보답하기로 약속하고, 아울러 우둔하지만 대감의 앞에서는 견마의 노를 아끼지 않기를 맹세하였다.

 

길까지 따라 나오면서 전송하는 영초와 작별을 하고 흥선은 다시 교군에게 명하여 조두순의 집으로 갔다.

 

“이번 주상 전하 영립에 대하여 많이 노력하심을 감사하러 왔습니다.”

 

이렇게 흥선이 인사할 때에, 근엄한 조두순은 자리를 물러 앉아 절하며 국태공 흥선군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대비의 어의로 영의정 김좌근은 퇴직을 하고 그 뒤를 조두순이 올라서서 영상의 직을 받기로 내정되었으니, 그만큼 알아 두고 그 준비를 하여 두라고 부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