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 댁―아니 지금은 운현궁―에는 차차 사람의 출입이 빈번하여 갔다.
이전의 술 친구, 기생집 동무, 투전 친구들도 모두 새 옷을 구해서 떨쳐 입고 운현궁을 찾아와서 하의(賀意)를 올렸다.
원로 대신들도 남녀도 연하여 운현궁 문에 드나들었다. 이전에는 한낱 부랑자로 인정하고 자기 집으로 찾아올 지라도 들이지 않던(지벌과 가품을 자랑하는) 명문 거족들도, 모두 서로 앞을 다투어 운현궁으로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 처하여 그들을 응대하는 흥선의 태도―그것은 과연 보는 사람의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폐의 파립―얼굴에는 늘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먹을 것을 만나면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달려들던 흥선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 그들의 눈 앞에 나타난 흥선은 어떤 사람인가?
“하하하하! 내가 무얼 하오?”
호기롭게 그가 소리쳐 웃을 때는, 그 웃음 소리는 능히 만인의 머리를 숙어지게 하였다.
야위고 창백한 얼굴이지만, 한 번 그 눈을 크게 뜰 때는 등골로는 소름이 쭉 끼쳤다.
천연히 구비된 위풍―일조 일석에 배우거나 스스로 짓지 못할, 그것은 왕자의 위엄이었다.
눈을 고요히 감고, 고요한 말로 하는 한 마디의 명령이라도, 앞에 있는 사람은 마음이 송구하여져서 저절로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 위풍―그것은 결코 배우거나 연습하여서 될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본시 그런 천품을 타고 나서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위엄이었다.
대사가 결정된 이후에는 한 번 흥선을 찾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진심으로 흥선에게 복종하기를 맹세하였다.
이 패기, 이 위력, 이 압력, 이 지배력, 이 통찰력 이래 반항을 하거나 대항을 할 만한 용기를 가져 본 사람이 없었다.
흥선의 이 위력과 압력을 봄에 따라서, 현하의 정계의 암류(暗流)는 더욱 불안하고 무시무시하였다. 한 번 손을 들 때에는 어떤 일이든 결행할 만한 흥선의 위력과 담력을 차차 이해함에 따라서, 장래에 생겨날 참극을 생각하고 모두 전전긍긍하였다.
조성하는 만날 운현궁을 떠나지 않고 흥선을 모셨다.
흥선의 도령이 보위에 오르기만 하면, 좀더 높은 자리를 예상하고 있던 성하가, 겨우 정삼품에 머문 것은 약간 불만하기는 하였지만, 흥선의 인물을 이미 안 성하는 표면에까지 그 불평을 나타내지 않았다. 장래 자기의 수완만 있으면 얼마라도 올라갈 길이 남아 있으며, 더구나 흥선이 자기의 맏아들도 겨우 승후관의 지위에 갖다놓고, 서자 재선(庶子 載先)은 그냥 야(野)에 머물러 두게 함에 비추어서 자기의 정삼품이라 하는 지위에 불평을 말할 수가 없었다.
성하도 고요히 기다렸다. 어서 이 며칠 남지 않은 계해년이 다 가고, 새 해가 이르러서 눈을 뜬 사자의 포함성을 들어 보고자―
어떤 포함성이 나오나, 그 사이 십 수 년 간을 은인하고 은인하여 가면서, 닦고 라고 궁리하고 세운 이 사자의 계획은 어떤 것인가고―그 때의 빛나는 우렁찬 날을 생각할 때에, 젊은 성하는 가슴이 들먹거리는 것을 금하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자기도 또한 그 우렁찬 날에 한 개의 역할을 맡아서 할 사람임을 생각할 때에, 희열과 만족감과 긍지를 금할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계해년은 고요히 고요히 저물어 흘러갔다.
그 며칠 사이에 소위 '속죄(贖罪)하기 위한 상납'이라는 명목으로서 김씨 일문에서 내어 놓아서, 흥선의 손을 통하여 용동궁에 갖다가 붙인 금액이 합계 구십여 만 냥이었다.
그 어떤 날 흥선은 갑자기 하옥 김좌근을 찾았다.
“대원군 전하께서 행차하셨습니다.”
하인이 이렇게 아뢸 때는, 하옥은 양씨의 집 내실에서 양씨와 마주 앉아서 시골로 내려갈 의논을 하고 있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