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 댁―운현궁에 병기의 방문, 이것은 과연 의외의 일이었다.
병기가 운현궁에 흥선을 찾은 때는 흥선은 의복을 정제하고 단연히 아랫목 보료 위에 앉아 있을 때였다.
“아, 대감이 이런 누추한 집에를 어떻게 행차하시오?”
벌써 말투도 이전과 달랐다.
“이번의 경사를 축하하러 왔습니다.”
“감사하외다. 우연히 굴러온 복―흥선에게는 너무 과하외다. 자, 날이 추운데 이리 내려와 앉으시오.”
흥선과 병기는 대좌하였다.
병기는 푹 머리를 수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흥선 역시 아무 말도 없었다. 천려 만사, 가슴에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렴인지 눈까지 굳게 감고 있었다.
드디어 흥선이 눈을 떴다. 얼굴에 미소가 나타났다. 몸을 틀어서 문갑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무엇을 꺼내었다.
“대감!”
“불러 계십니까?”
“이것을 대감께 선사하리까?”
명랑한 웃음 아래서 흥선은 문갑에서 꺼낸 물건을 병기에게 내밀었다.
“그게 무엇이오니까?”
“호박갓끈!―사 년―오 년 전인가, 대신 생신연에 내가 대감께 빌러 들어갔을 때에, 대감은 내게 안 빌려 주셨지만 오늘은 내가 하나 대감께 선사하리까?”
병기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러나 이런 막다른 곳에 임하여 병기는 자기의 호담한 성격을 회복하였다. 병기는 여기서 한 번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허허! 만약 대감께 오늘날이 있을 줄 그 때 알았더면, 천 백 개의 갓끈이라도 드렸을 것을, 병기 불민해서 선견의 명이 없기 때문에 오늘 대감께 이런 조롱을 받습니다.”
이 대답에 흥선은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도리어 병기의 이 대답을 장쾌하게 여기는 듯이 병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병기가 말을 이었다.
“대감! 오늘은 나 같은 몰락인은 대감의 처분만 기다립니다. 주시는 갓끈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흥선의 얼굴에서 차차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대신 엄숙한 기분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흥선이 입을 열었다.
“대감!”
“네?”
“사사 감정으로 일국의 정사를 좌우해서는 안 될 일―내가 대감께 대해서 품은 사혐이 적지 않을 줄은 대감도 짐작하시겠지요?”
“처분만 기다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