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찮은 말이라는 뜻이었다.
하옥은 말머리를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대감 홀로의 의향은 어떠시오니까?”
두순은 머리를 숙였다. 한참을 생각한 뒤에 한 마디씩 한 마디씩 끊어서 똑똑히 대답하였다.
“방금도 대비전마마께오서 승후관 조성하를 보냅셔서 물으시기에 이렇게 붕답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주상전하의 생친이시매, 허수로이 대접은 못할 것이로되, 또한 나라에는 두 임금을 둘 수가 없으니, 좋도록 처분이 겝시사고…”
“그 밖에는?”
“그 밖에는…”
말을 끊고 두순은 다시 생각하였다. 한참 생각한 뒤에 두순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옥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대감은 흥선대원군을 어떻게 보십니까?”
“?”
“무서운 지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내 혼자의 생각으로는 내일 어전 회의에서 대비전마마께 흥선 개원군의 섭정을 간원하려고 합니다.”
하옥은 입을 딱 벌렸다. 흥선의 손은 벌써 이 근엄 착실한 조두순까지 긁어 잡은 것이었다. 어느 틈에? 그것은 알 수 없으나, 하옥은 여기서 맹연히 일어서는 거인의 그림자를 분명히 직각하였다. 눈을 감은 때는 천하가 요동을 할지라도 아는 체도 안 하지만, 한 번 눈을 뜰 때는 좌충우돌 천하를 위복시키는 무서운 위력을 보았다.
조두순에게서 달가운 대답을 듣지 못하고 하옥이 다시 평교자를 달려서 원상 정원용의 집으로 가매, 하옥보다 먼저 정원용을 찾고 지금 방금 돌아가려는 조성하가 하인을 앞세우고 원용의 집에서 나오는 즈음이었다.
좌근은 원용을 찾지 않고 교자를 돌이켰다. 성하가 먼저 다녀간 뒤에 이제 원용을 찾는대야 쓸데없는 것은 아까 좌상에게 미루어 경험한 바였다. 만월을 우러러보며 자기 집으로 평교자를 달리는 동안, 이 노상의 입에서는 연하게 장탄식이 나왔다.
이튿날 흥선대원군의 위계에 대한 중대한 회의를 앞하여, 흥선은 직접 대궐에 들어가서 한참을 조 대비와 밀의한 바가 있었다.
낮쯤하여 희정당에서 회의가 열렸다.
“대원군의 의주에 대해서 대신들의 의견이 있으면 어디 말씀해 보시오.”
발 뒤에서 대비가 대신들을 내다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글쎄올시다. 아직껏 우리 나라에 생존한 대원군이 없었사오매 전거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정원용의 대답이었다. 원용의 말을 이어서 좌근이 아뢰었다.
“신의 의향을 계상하겠습니다. 나라에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으매, 아무리 전하의 생친이시라 하지만, 역시 신하의 반열에 들 밖에는 없을까 하옵니다. 그러나 또한 부자의 의라 하는 것은 인륜의 본의오매, 어버이되는 사람으로서 아드님께 북면해서 절하라 하는 것도 인륜에 어그러진 일이 아니올까 하옵니다.
그러니깐 대원군은 임금은 아니요, 신하도 아니므로서, 운현궁 안에 모시옵고 홍마목을 세워서 이를 대접하옵고, 임금의 사친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내수사(內需司)에서 조도품을 운현궁에 조달하옵고, 주상 전하께서는 매달 한 번씩 운현궁에 납셔서, 사친께 대한 효성을 표하옵고, 그 계제는 대군(大君)과 같이 하옵고, 주상 전하의 사친으로 하여금 일체 정치 문제에 간섭하지 않게 하오면, 첫째로는 인자로서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사올 것이오며, 둘째로는 나라에 두 임금을 두지 않게 될 것으로서, 신의 의향으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제일이 아닐까 하옵니다.”
“좌상의 의향은?”
“영상의 의향도 그럴 듯하옵니다마는 요컨대 대원군은 임금이냐 신하냐 하는 한 가지의 문제밖에는 없을 줄로 아옵니다. 주상 전하께오서 이미 익종 대왕께 출사를 오신 이상에는, 아무리 사친이라 하여도 벌써 그 인연은 끊어졌사오매, 역시 신하의 예로 대우하지 않으면 안 될까 하옵니다. 인자의 도리로서 생친께 추배를 받을 수 없사오니, 단지 추배하지 않고 칭명하지 않고, 위계는 삼공의 위에 두어서 명분을 밝히는 것이 지당하지 않을까 하옵니다.”
조두순의 의견은 좌근의 의견을 반대하는 것인지 찬성하는 것인지, 아주 막연하여 잘 알 수가 없었다.
“다른 대신들께 다른 의향은 없소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