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준비하였던 새 옷을 바꾸어 입고 복건을 쓰고 천담포를 입은 이 소년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부모께 하직을 고하였다.

 

그 때는 벌써 흥선군의 둘째도령이 신왕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기 때문에, 흥선의 집 근처에는 백립 백의의 무리가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소년이 흥선에게 인도되어 안에서 나올 때는, 신왕을 모실 연(輦)은 벌써 안문 밖에 등대되어 있었다.

 

신왕의 보련―영의정 김좌근이 도보(徒步)로서 딱 곁에 붙어 서고, 도승지 민 치상이 그 뒤에 달리고, 시위 장사며 관원들에게 호위된 이 연은, 소년의 생장한 경운동 흥선 댁을 뒤로 하고 창덕궁으로 향하여 떠났다.

 

해지고 덜민 옷을 갈아 입지도 않은 흥선과 흥선 부인은, 자기네들의 아드님이요, 또한 지금은 이 나라의 지존이 된 소년의 연을 중문 밖까지 전송하였다.

 

“하늘이여, 신왕의 위에 복을 내려 주십사. 영원하도록 복을 내려 주십사.”

 

고요히 고요히 축수하는 이 중로(中老)의 부부의 눈가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흥선 댁에서 돈화문까지―그 길 가에는 벌써, 새 임금을 맞으려는 무리가 하얗게 늘어섰다.

 

어린 임금을 모신 보련 곁에는, 백발의 영의정 김좌근이 딱 붙어 서서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일찍이 '개똥이'라는 소년으로의 이 신왕과 만날 같이 연을 올리며 돈치기를 하던 동리의 소년들은, 펄펄 뛰면서 연하여,

 

“개똥아!”

 

“명복아!”

 

“재황아!”

 

부르면서 행차를 어지럽게 하였다. 많은 백의군들은 신왕의 용안을 절하고자 서로 앞을 다투어 헌화하였다.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러나 좌우편에 구름같이 모여든 무리들 때문에 빨리 갈 수가 없었다. 의장병사들은 뭉치와 막대를 휘두르면서 길을 방해하는 무리들을 헤치고 있었다.

 

문득 한 소년이 구경군들 중에서 뛰쳐 나왔다. 그리고 보련을 향하여 달려왔다. 보매 그것은 연 동무였다.

 

“웬 놈이냐? 비켜라!”

 

달려 오는 소년에게 향하여 의장병사의 뭉치가 한 번 날아갔다. 동시에 소년은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 그 자리에 거꾸러졌다.

 

“가만!”

 

늠연히 울린 신왕의 음성에 보련은 그 자리에 섰다. 곁에 붙어서 가던 좌근이 보련 쪽으로 돌아섰다.

 

“무슨 하교가 계시오니까?”

 

“저 애 이마에서 피가 흐릅니다.”

 

“네, 길을 어지럽게 하는 소년이길래…”

 

신왕은 용안을 들었다. 어리지만 영특함과 자애심이 사무친 용안이었다.

 

“나는 오늘부터 이 나라의 상감이라지요?”

 

“네…”

 

“왕은 그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고 옛날 성현이 가르쳤습니다. 저 애를 일으켜 주십시오. 그리고 또 병사들에게 일러 주시오. 다른 사람들도 몽치로 쫓지 않도록 일러 주십시오.”

 

이 너무도 숙성한 하교에 좌근은 뜻하지 않고 용안을 우러러보았다. 그런 뒤에 배행하는 도승지 민 치상을 불렀다.

 

“배관하는 서인들에게 난폭한 일을 하지 말라는 분부가 계시오니, 그대로 전하게.”

 

이 뜻을 민 치상이 큰 소리로 외칠 때에,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은 와 하니 함성을 지르며 신왕의 자비심을 찬동하였다. 이로부터 길은 더욱 더디게 되었다. 신왕을 맞으려는 군중은 이 신왕의 고마운 전교를 듣고, 모두 함성을 지르며 길 가운데로 어지러이 들어와서, 용안을 절하고자 우러렀다.

 

“우리 나라님!”

 

“우리 상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