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양내복―
다사다난한 계해년이 지나고, 갑자년 춘정월―유난히도 명랑한 날씨―한 조각의 바람도 없고 겨울날이라 해도 따스한 볕이 골고루 내려 비치고 있었다. 두어 조각 분홍빛 구름이 백악(白岳) 위에 걸쳐서 이 명랑한 날씨를 더욱 곱게 장식하고 있었다. 갑자기 따스로와진 일기 때문에 집집마다 처녀에서는 눈 녹은 물이 땅을 적시고 있었다.
이 날 조선 팔도 방방곡곡에는 모두 축하의 기분이 넘쳐 있었다.
제 이십 육대 조선 국왕―새해에 열 세 살 되는 소년 왕이 등극하는 날이었다.
종로를 장식하던 공랑이며 육주비전 이하 온 상점은 모두 철전을 하였다. 그리고 시민들은 이 날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모두 새 옷을 바꾸어 입고 거리로 몰려 나왔다.
이 날 아침부터 거리에는 정일품으로부터 종구품에 이르기까지 높고 낮은 관원들이 모두 자기의 품에 적당한 조복(朝服)으로 몸을 장건하고 뒤를 이어서 금호문 안으로 사라졌다. 이 뒤를 연하여 대궐로 들어가는 높고 낮은 관원들의 행차 때문에, 중인 이하 상놈들은 길복판 한가운데는 나설 기회도 없었다.
“에익, 이 놈들, 물리거라, 비켜라!”
행차의 앞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위세 좋게 울리는 경필의 소리에, 혹은 초헌, 혹은 사인남여에 몸을 실을 높은 재상이며, 아래로는 나귀 한 마리에 마부와 하인 겨우 한두 명을 단 아랫관원들의 행차에 이르기까지, 불안과 희망을 아울러 품고서 금호문 안으로 금호문 안으로 그 그림자를 감추는 것이었다.
대궐 담 밖에는 이 날의 경사를 음향으로나마 엿보려고 모여든 무리들 때문에, 벌써 송곳 세울 여지도 없게 되었다. 이윽고 국태공 흥선대원군의 행차가 돈화문 앞에 이르렀다.
기린 흉배에 옥대를 띠고, 단연히 앉아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주위의 시민들을 둘러보는 이 귀인―누가 이를 어젯날 한길에서 갈지자 걸음으로 난행을 하던 하응으로 볼 것이냐? 시종이 받든 조산(??) 그늘에서, 피곤한 듯한 눈을 굴려서 흥선은 좌우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 전후 좌우를 시위하는 가마와 도보의 병사들은 늠름히 날뛰고 있었다.
오늘의 주인의 생친(生親)을 맞기 위하여 돈화문이 넓게 열렸다. 삼공이라도 걸어서가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는 대궐 안(재상은 견여(肩輿)로써 입궐하던 것을 신유년 삼월에 금함)을 흥선의 남녀는 위세 좋게 들어갔다.
흥선의 남여가 문 안으로 그림자를 감춘 다음에는 돈화문은 다시 고요히 닫혔다.
그 뒤로도 관원들의 행차는 연하여 금호문으로 하여 대궐로 들어갔다.
기쁨에 넘친 날이었다. 하늘조차 이 날을 축하하는 듯이 근래에 보기 드문 명랑한 날이었다.
“저 분이 대원군이시지?”
“그럼!”
“본시 흥선군이라지?”
“그래!”
단아한 공자, 위엄성 있는 귀인, 그러면서도 친애할 수 있는 동무―시민들은 여기서 자기네들을 지배할 무서운 권력자를 보기보다, 오히려 친애하고 서로 무릎을 겯고 의논할 수 있는 온화하고도 믿음성 있는 웃사람을 발견하였다.
문득 대궐 안에서는 부드러운 아악 소리가 울리어 나왔다. 제 이십 육대의 임금의 즉위 예식은 바야흐로 시작이 되는 것이었다.
대궐 밖의 시민들은 모두 일제히 허리를 굽혀서 이 경사에 축하와 경의를 표하였다.
인정전에서의 즉위의 예식과 아울러 국태공 섭정의 취임식은 무사히 성대히 끝이 났다.
신왕은 대왕대비 조씨의 인도와 섭정 국태공의 배행으로서 종료에 거동하여, 열성(列聖)의 영전에 이 사직 받듦을 봉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