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황이 좀 불러 오시오.”
흥선이 부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부인은 종에게 분부하였다. 잠시 뒤에 한길에서 연을 날리고 있던 재황 소년은, 얼굴과 손등이 새빨갛게 되어 가지고 연과 얼레를 든 채 들어왔다.
“부르셨세요?”
“오냐, 거기 앉아라.”
소년은 아버지가 지시하는 자리에 앉았다. 자기가 지시한 자리에 앉은 소년을 흥선은 한참 동안을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님, 왜 부르셨세요?”
그러나 흥선은 역시 말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이 소년의 위에 바야흐로 떨어지려는 커다란 운명을 생각할 때에, 흥선은 기쁘다기보다도 놀랍다기보다도 오히려 송구하였다.
“부인!”
“네?”
말하여 주고 싶었다. 말은 목젖에까지 와서 돌아왔다.
―얘는 내일 모레면 삼천리 강토의 지배자가 될 애외다.
목젖까지 나와 도는 이 말을 흥선은 꿀꺽 삼켰다.
“얘게 맞게 천담포, 복건, 모두 지어 두었겠지요?”
“네, 지어는 두었습니다.”
지어는 두었지만 언제 쓸 것이오니까 하는 뜻이었다.
흥선은 의아하여하는 부인을 버려두고 이번엔 소년에게 향하였다.
“야!”
“네?”
“한 마디 묻는다.”
“네.”
“내가 네게 무엇이 되느냐?”
“아버님이올씨다.”
흥선은 이번은 손을 들어서 부인을 가르켰다.
“저이는?”
“어머님.”
아아! 이 소년의 입에서 아버님 소리를 들을 날도 이제 며칠이나 남았나? 이 소년에게 향하여 오냐를 할 날도 이제 며칠이나 남았나?
가까운 장래에는 '하시오'로도 당하지 못할 귀한 몸이 될 소년이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흥선은 그 영화를 축복하면서도 또한 한편으로는 마음에 일어나는 적막감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야, 나는 너의 아버지, 저이는 너의 어머니지만, 아버지고도 아버지가 안 되고 어머니고도 어머니가 못 되는 수도 있다. 알아 두어라.”
소년은 무슨 뜻인지 알아 듣지 못하였다. 의아한 듯이 아버지를 우러러보았다. 그 소년의 눈을 피하면서 흥선은 담뱃대를 끌어당겨서 담배를 담았다. 영특한 소년은 무릎걸음으로 뛰어 나와서 화로에 성냥을 그어 대었다. 아들이 그어 대는 담배를 힘있게 빨면서, 연기 틈으로 아들의 고치와 같은 타원형의 예쁘장스런 얼굴을 볼 때에, 흥선의 마음에는 더욱 적적함이 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