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의 지아버님 익종의 대를 부활시키자는 데 대하여 대비에게 이의가 있을 까닭이 없었다. 흥선이 내어놓은 계통표를 묵묵히 보고 있지만 대비에게도 적이 희색이 나돌았다.

 

“마음을 굳게 잡수십시오. 무론 김문에서는 반대가 있을 것이옵니다. 반대로 적지 않는 반대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렇지만 대비마마의 하교는 지금에 있어서는 국명―뉘라서 끝까지 거역은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대비의 입이 비로소 열렸다.

 

“나도 무론 내 힘껏은 하겠지만, 대감도 든든히 준비하시고 장사(壯士)라도 몇 십명 마련했다가, 여차하는 날에는 틀림이 없도록 하시오.”

 

흥선은 반대하였다.

 

“아니옵니다. 장사의 힘을 빌어서야 될 일이면 신은 본시부터 마음도 내지 않겠습니다. 마마께옵서만 마음을 강하게 잡수시면 평온리에 넉넉히 될 일―왜 구태여 그런 준비까지 하겠습니까?”

 

“그래도 김가들이 그냥 반대를 하면?”

 

“아니옵니다. 다른 분을 추대한다면 혹은 김씨들은 굉장히 반대하올지도 모르지만, 신은 김씨들에게 수모는 받았을지언정 김씨들이 신을 무서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깐 종실의 다른 분을 추대하는 것보다는 신을 오히려 쉽게 볼 테니깐 극력 반대는 안 하오리다.”

 

이 날에 있어서 이 말 한 마디를 장담하기 위해서 그 사이 받은 비웃음과 수모―그 모든 것을 여기서 한 마디 펴 놓을 때는, 흥선은 마치 체기가 내려가는 것같이 가슴이 시원함을 느꼈다. 여인의 몸으로서 지금 이 나라의 온 권세를 한 손에 잡은 대비는, 흥선의 코치에 그저 머리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리하여 모든 일은 흥선의 의견대로 진행되었다. 그 사이 십여 년 간을 몽상과 같이 닦고 또 닦았던 흥선의 계획은 차차 실현되기 비롯하였다.

 

대궐에서 조 대비와 흥선의 밀의를 거듭할 때에, 김씨 문중에서도 또한 김씨로서 회의가 열렸다.

 

살아 있었으면 당연히 이 회의의 어른이 될 영은 부원군 김문근(金汶根)은 불행히 작년에 별세를 하여 그 자리에 못 오고, 영의정 김좌근, 그 아들 김병기, 조카 병학, 병국, 병필, 병덕, 일족 김흥근 등이 모인 이 좌석에는 김좌근이 좌장이 되어 회의라 열렸다.

 

일가붙이의 막다른 골목―지금 자기네들의 발 아래 뚫린 커다란 구렁텅이를 들여다보며 그들은 전전긍긍히 의논하였다.

 

이런 경우에 임하여 언제든 기묘한 꾀를 내어서 난국을 타개하는 재간을 가진 김병기도 이 날뿐은 아무 의견도 내지를 못하였다.

 

“자, 말들을 하게. 어떻게 했으면 좋은가?”

 

김좌근이 허연 머리를 들면서 이렇게 의견을 물었지만 거기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 그 사이에 자기네의 세도를 자제삼아, 종친이라도 종친에게는 모두 원한을 진 자기네의 일이었다. 대행왕에게 아드님이라도 있으면이어니와, 그렇지 못한 지금에 있어서 어느 종친 한 사람, 자기네 일족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이 있을 까닭이 없다.

 

혹은 생질이 되며, 혹은 외손자가 되는 정당한 왕자가 없고, 종친 가운데서 누구를 모셔 오지 않으면 안 될 지금에 있어서는, 그들은 자기네의 입으로 지정할 만한 적당한 사람을 가지지를 못하였다. 서로 묵묵히 다른 사람의 입만 쳐다볼 뿐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그들은 자기네 일족의 몰락을 분명히 직각하였다. 순조 대왕의 대로부터 지금까지 삼 대째 보름달과 같이 빛나는 영화에 취하여 있던 그들은, 지금 자기네의 앞에 이른 몰락의 구렁텅이를 보았다.

 

“아버님!”

 

드디어 병기가 입을 열었다.

 

“결과를 기다릴 밖에는 도리가 없겠습니다. 대왕대비전의 일존에 달린 것이매, 여기서 이렇다 저렇다 하면 무얼 하겠습니까? 결과를 보아서 어떡허든 선후책을 강구하여야지 그 밖에는 도리가 없겠습니다.”

 

“만약 대비마마께서 어느 분을 추천하느냐는 하문이 계시면?”

 

“그 때는 누구든 종실 중 왕자의 덕을 가진 분을 한 분 추천할 따름이올씨다.”

 

“그게 누구냐 말이다?”

 

“생각하고 연구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은 하였다. 그러나 이 좌석에서 가장 이번의 일에 마음 태우는 사람은 병기였다. 김문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리고 또한 어린 만큼 교하고 혈기 많은 병기는, 따라서 가장 종친들에게 미움 살 일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그 날의 회의는 아무 결론도 얻지 못하고 흐지부지 산회를 하게 되었다. 누구 그럴 듯한 종친을 한 사람씩 마음에 먹어 두었다가, 이제 열 사흗날 대비의 앞에서 회의가 열릴 때에 추천을 하기로 작정을 하고 제각기 헤어졌다.

 

나올 때에 병기가 병학을 붙들었다.

 

“형님!”

 

“?”

 

“더 생각할 여지도 없습니다. 몰락이올씨다. 요행 생명이 부지되면, 시골로 피해서 학이나 희롱하며 여생을 보냈지, 더 생각하고 연구할 나위가 없습니다.”

 

거기 대하여 병학도 탄식하였다.

 

“잘 생각했네. 그렇지만 생명이 부지될지 어떨지 그것부터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천명―인력으로는 무가내하올씨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한 병학을 버려 두고 자기의 행차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