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궐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가마에 몸을 싣고 성하는 몸을 틀어 가면서, 소년들의 노는 양을 돌아보면서 속으로 축수하고 축수하였다.
다시 금호문 밖에서 가마를 버리고 대궐 안으로 들어서매, 대조전이며 그 익각에서는 남녀의 곡성이 은은히 들려왔다. 대조전 댓돌 위에는 변을 듣고 달려 온 재상들의 신발이 어지러이 놓여 있고, 내관들이 분주히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것을 곁눈으로 보면서 단숨에 대비전까지 들어가 보매, 대비는 성하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하여 벌써 대조전으로 나간 뒤였다. 성하는 대조전으로 돌아서 나왔다. 승후관인 자기로도 들어갈 기회가 없을까 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누르면서 대조전을 두고 빙빙 돌고 있었다.
수심과 슬픔으로 찬 대조전에 대비의 임어―재상들이 좌우편으로 갈라 앉은 가운뎃길로 대비는 여관 몇 명을 거느리고 고요히 걸어서 영해의 침두에 가서 앉았다. 준비하였던 발이 대비의 앞에 늘이어졌다.
대비의 임어와 동시에 한 바탕의 곡성이 다시 울렸다. 대비도 영해의 앞에 꿇어 앉았다. 그리고 여관과 함께 대행왕의 천추를 곡하였다. 이윽고 대신들을 향하여 앉은 때에는 대비의 얼굴에는 약간 흥분의 빛이 나돌았다.
전내는 다시 조용하여졌다. 뒤에서 이전에 총애를 받은 많은 비빈들의 느끼는 소리만 은연히 들렸다. 이러한 가운데서 대비의 말이 고요히 울렸다.
“망국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소이다. 그러나 망극하다고 그저 가만히 있지 못할 일이니, 일의 처리를 차비하여야겠소. 정 돈녕(정원용) 대감은 선왕 헌종께서 승하하옵신 때에도 원상(院相―임금 승하한 뒤에 임시로 대소 정사를 맡아 보는 벼슬)으로서 일을 처리한 경험이 있으니 이번도 일을 보아 주시오.”
발을 통하여 보이는 늙은 재상 정원용은 영을 복종한다는 뜻으로 머리를 땅에 대었다.
“그리고…”
거대한 씨름이었다. 지금부터 십 사 년 전 대비의 사랑하는 아드님 헌종이 승하한 때에 대비 당신이 경험한 쓰디쓴 일을 바야흐로 김씨 일문에게 내려 씌우려는 대비는, 당신의 마음을 누르고 또 눌렀지만, 마음에 일어나는 흥분을 더 감추기는 힘들었다.
“어보(御寶)는 내가 임시 맡아 둡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노파, 어보를 맡는달사 무엇에 쓰리마는, 어보는 하루도 버려 둘 수 없으니 내가 맡아 둡시다.”
대비는 여관을 돌아보았다.
“어보를 모셔라.”
여관이 가져다 바치는 어보를 손으로 더듬어 받으면서, 대비는 발을 통하여 김씨 일문의 동정을 내다보았다.
임금의 승하를 곡하고자 들어왔던 김씨 일문은, 대비에게서 어보의 한 마디가 나올 때에, 분명히 대비의 예기한 이상으로 놀라는 모양이었다. 공손히 머리를 수그리고 있던 그들이, 그 순간 겁먹은 듯한 눈으로 발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대비는 더듬어서 어보를 양 손으로 받들었다. 그런 뒤에 무릎 앞에 놓았다. 김문을 대표하는 영의정 김좌근이 드디어 한 마디 하여 보지 않고는 못 견디었다.
“대비전마마!”
“?”
“나라에는 하루도 상감 안 계실 수 없사오니, 거기 대한 하교 계오시기를 바라옵니다.”
“너무도 창황 중의 일이라, 나도 미리 생각한 바가 없고 대신들도 역시 그럴 터이니, 닷새 동안을 잘 생각해서 닷새 뒤에 의논을 하도록 합시다. 그 동안은 무식하나마 이 노파가 대리를 보리다.”
무법한 하교였다. 그러나 지금에 있어서 이 나라를 대표하는 국모(國母)의 한 마디―뉘라서 감히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원상, 전후의 일을 착오 없도록 수고하시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대비는 여관에게 눈짓하여 어보를 받들어 앞세우고, 다른 여관들의 부축을 받아 당신의 처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