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찬시, 상감마마께옵서 불러 계시오.”

 

계해년 십 이월 초 여드렛날, 내관(內官)방에서 동관들과 한담을 하고 있던 내시 최 만서는, 나인의 전령으로 황급히 옷깃을 바로잡고 대조전(大造殿) 동온돌(東溫突)로 가서 읍하여 영을 기다렸다.

 

“만서냐? 좀―좀…”

 

섣달 초순부터 상감은 환후가 심상하지 못하여, 모두 경계들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부름으로 말미암아 만서가 등대했을 때는, 상감은 든든히 모는 의대를 차리고 금침 위에 일어나 앉아 있었다.

 

“상감마마, 등대하왔삽니다.”

 

“응, 만서냐? 좀 부액할 내관을 몇 불러라.”

 

“어디 납시오니까?”

 

“뜰이라도―너무 적적해서…”

 

만서는 내시청에 연한 전령줄을 흔들어 불렀다. 그리고 몇 사람의 내시가 협력을 하여 상감을 부액하여 뜰로 산보를 나섰다.

 

혹혹 쏘는 바람이 추녀 끝에서 노래를 하는 겨울날이었다. 댓돌에 나서는 참, 상감은 찬 바람에 혹 하니 느끼었다.

 

“상감마마, 바람이 차옵니다.”

 

“응, 차다.”

 

“도로 듭시면…”

 

그러나 상감은 뜰을 향하여 발을 옮겼다. 환후가 중하여 누워 있던 상감이라, 허공을 짚는 것과 같은 걸음으로 내관들의 부축을 받은 채, 왼편 익각을 끼고 돌아서 차차 중희당 앞으로 돌아갔다.

 

중희당 앞에까지 이르러서 상감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중희당을 바라보았다. 선왕 헌종이 승하한 전각이었다.

 

잠시 중희당을 바라보다가 부액한 내관을 돌아다보았다.

 

“내 나이 서른 셋, 의롭고 괴롭게 삼십여 년을 보냈구나!”

 

“상감마마, 무슨 하교시오니까?”

 

“…”

 

상감은 다시 용안을 들었다. 그리고 고목이 울창한 비원 쪽을 한참 뜻 없이 바라보았다. 자유로운 강화도의 초동 생활에서 궁으로 들어와서, 그 이래 괴롭고 구애 많은 십 사 년 간의 생활을 추억하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비원만 바라보다가 용안을 만서에게로 조금 돌렸다.

 

십 사 년 간을 한결같이 상감께 등후한 만서는, 용안에 나타난 표정으로 어의를 짐작하였다.

 

“상감마마, 매화틀(便器)을 묘오리까?”

 

상감은 고요히 머리를 끄덕이었다.

 

한 사람의 내관이 매화틀과 뒷목을 가지러 내조전 쪽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