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상!”
발 안의 대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령하왔습니다.”
“이젠 대통도 결정되었소이다. 용상 맡으실 분을 어서 모셔 오도록 그 차비를 대시오.”
“즉시 거행하겠사옵니다.”
이젠 대사가 결정된 자리에 앉아서, 조성하는 눈을 굴려서 전내를 살펴보았다. 정원용, 조두순 등 원로 대신은 단지 어명을 복종한다는 엄숙한 표정만 나타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조금 눈을 더 굴려서 영의정 김좌근을 보매, 백두의 이 재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을 검붉게 하고 묵묵히 방바닥만 굽어보고 있었다. 병기는 나이가 젊으니만큼 분명히 그의 얼굴에서 흥분과 절망의 그림자를 감추지 못하였다. 연하여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머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품이 마음에 커다란 불안이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일찍이 이런 중대한 회의에 참여하여 보지 못한 성하는, 적지 않은 흥분과 호기심으로써 둘러보았다.
―당신네들의 몰락이외다. 당신네들의 세도가 한 천 년 갈 줄로 믿었습니까? 여름 날 한 떨기의 꽃, 시들 날이 있을 줄을 몰랐습니까?
이윽고 대비는 여관들을 거느리고 내전으로 들어갔다. 대비가 돌아간 뒤에는 재상들은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다만 도승지 민 치상의 지휘로 사관(史官)이 오늘의 경과를 기록하느라고 분주히 붓을 놀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영상!”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정원용이었다.
“네?”
좌근이 흠칫하여 대답하였다.
“자, 봉영의 차비를 댑시다. 대감이 민 승지를 데리고 흥선군 댁에 가셔서, 익성군을 모셔 오십시오.”
“네…”
대답은 하였으나 기운 없는 대답이었다.
“민 승지! 영감은 수상을 모시고 흥선군 댁으로 가도록 차비하게.”
그리고 이번은 훈련대장 김병국을 돌아보았다.
“대장! 대장은 어서 나가서 익성군을 봉영할 의장병을 준비하도록 마련하시오.”
금년에 나이 여든 하나―그 육십여 년을 벼슬을 산 늙은 재상 정원용은, 이런 경우를 당하여 일호의 착오없이 지휘를 하여 원상인 자기의 직책을 다하였다.
이리하여 신왕을 맞을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