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아이들이 다 잠들기를 기다려서 흥선은 다시 내실로 들어가서 부인에게 자기의 지금 계획하는 커다란 음모(?)를 말하였다. 부인은 깜짝 놀랐다. 반신반의하였다. 너무도 의외의 말인지라, 부인으로서는 얼른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그 말이 과히 엉터리 없는 말이 아닌 줄 짐작이 갈 때에, 부인은 기뻐하기 전에 먼저 탄식하였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착하고 어진 부인은 이런 경우에 임하여서도 자식의 위에 임한 영화보다도 먼저 자식의 안위를 근심하는 것이었다.
종가의 며느리로 들어온 부인은, 아직껏 역사상에 왕위 때문에 흘린 많고 많은 피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는 것이었다. 불행한 왕위보다는 안온한 빈공자(貧公子)의 생활이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더욱 달가왔다. 국상이 반포된 이래 조성하는 여간 분주하지 않았다.
벼슬이 승후관에 있으며 임금 없는 지금은 좀 한가할 것이로되, 별다른 임무를 진 성하는 잠시도 엉덩이를 붙일 겨를이 없었다.
하루에도 두 번, 세 번씩 흥선 댁에서 대비께로, 대비께서 흥선 댁으로 왔다 갔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차차 성하는 흥선을 알았다. 그 기괴한 인격과 기괴한 성격을 보고, 이런 가운데도 흥선 본래의 면목이 따로 있나 하고 반의로 지내던 성하는, 이번에 비로소 흥선 본래의 면목을 보았다. 아직껏 권문들에게 대하여 그렇듯 비굴한 웃음을 웃어가면서 부회하던 흥선이, 사건이 한 번 뒤집히게 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떠한 권력, 어떠한 세도도 모두 초개같이 보았다.
“대비께 이렇게 가서 여쭈게. 그리고 또 이렇게 이렇게 합시사고 여쭈게.”
각각으로 변하여 가는 동태에, 새로 새 지휘를 연하여 하며, 거기 대하여 만약 성하의 입에서 시의 권문들을 꺼리는 말이라도 나오면,
“천작이 막여일봉(千雀莫如一鳳)이라, 내게 심산이 있으니 아무 걱정 말게.”
하고 퉁겨 버렸다.
일변 대비께로, 혹은 원상 정원용에게로, 또는 좌의정 조두순(趙斗淳)에게로 흥선의 전갈을 받아 가지고 갔다 올 때마다 성하는 흥선의 심산(心算), 흥선의 궁리가 놀랍게도 정확히 들어가 맞는 데 경이의 눈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편지인지는 모르지만, 흥선의 편지를 받아 가지고 좌의정 조두순을 찾을 때, 성하는 무론 조두순에게서 좋은 대답이 있을 줄은 뜻도 안 하였다.
근엄하기 짝이 없고 흥선 같은 영락된 인물은 사람으로도 여기지 않을 두순인지라, 흥선의 편지를 받을지라도 내버리지 않고 펴 보기나 하면 상의 상이거니 이만큼 생각하고 갔더니, 조두순은 펴 볼 뿐 아니라 두 번, 세 번을 다시 보고 그리고 한참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한 뒤에,
“대감께 가거든 염려 맙시사고 여쭈오.”
하고 흔연히 승낙하였다. 이렇게 자기의 사랑에 들여박혀 성하를 내세워서 좌우편으로 운동해 나아가는 일이로되, 일호의 착오도 없이 순조로이 진행되는 것을 볼 때에, 성하는 흥선의 놀라운 통찰력과 지력에 경복하였다.
성하는 여기서 잠든 사자의 일어남을 보았다. 비로소 앞다리를 뻗치며 기지개를 하는 것을 보았다. 이 사자가 한 번 포함성을 지르며 일어날 때에, 쇠잔한 이 삼천리 강토는 새로운 활력을 얻을 것이었다.
그것은 빛나는 나라일 것이다. 부강한 백성일 것이다. 가멸은 강토일 것이다. 그리고 위와 아래가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평화의 왕국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장래의 빛나는 나라와, 그 때 이 잠에서 깨어난 사자 아래서 활동을 할 자기를 생각해 볼 때에, 젊은 성하의 마음은 누르려야 떠오르는 흥분을 온전히 눌러 버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