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의 벼락이었다. 순서를 따지자면 대신들이 의향을 내고, 대비는 단지 그 결정만 할 것이어늘, 여기서 대비는 나아가서 그 승통자를 지정한 것이었다. 더구나 그 지정이 다른 사람도 아니요, 종실 친척 중 가장 영락되어 사람의 대접을 받지도 못하는 흥선군의 아들이었다.
대신들 가운데 감정의 동요가 분명히 일어났다. 그것을 대표하여 김좌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왕대비전마마, 흥선군은 대행왕 전하의 육촌 백씨로서 그다지 먼 종친은 아닙지만, 그 집안이 너무도 영락돼서 임금의 친가로서는 혹은 좀 부적당하지 않을까 하옵니다.”
이 말에 대하여 대비가 대답하기 전에 가로 뚫고 나선 것은 조성하였다. 격식으로 말하자면 대신들의 의논에 어디 뛰어들 자격이 못 되지만, 오늘의 중대한 역할을 맡은 성하는 격식을 무시하고 뛰쳐들었다.
“영상 합하!”
어디 감히 부르지도 못할 명사를 부르면서 성하는 한 무릎 앞으로 나왔다.
“재산이 없으면 가정이 영락되는 것은 정한 이치―영락되었다고 그 사람의 본질까지 더럽는 바가 아니올씨다. 대행왕 전하께서도 본시는 강화서 한미한 생활을 합신 일은 대감도 모르시는 바가 아니겠습니다. 흥선군의 둘째 도령으로 만약 왕자의 그릇이 못 된다 하면 모르거니와, 생활이 영락되었으니 좋지 못하다는 것은 일국의 수상의 말씀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대답한 말에 얼굴까지 검붉게 하고 성하를 노려 본 것은 하옥 김좌근의 아들 병기였다.
“여보!”
'이놈'이라 부르지 않은 것은 병기의 최대 관용이었다.
“당신은 웬 사람이기에 이 좌석이 무슨 좌석이라고 외람되이 주둥이를 놀리오?”
“나 말씀이오?”
이 때의 성하는 벌써 '소인'이 아니었다.
“나도 대감네들과 마찬가지로 외척의 한 사람―”
“외척? 외척이라도 이 좌석은 대비전마마와 재상들이 중대한 의논을 하는 좌석―잡인이 섞이지 못할 좌석이니 냉큼 나가오.”
그러나 성하는 대척하지 않았다.
“나도 대비전마마의 분부로써 오늘 이 좌석에서 한 마디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오.”
차차 격론으로 되어 가려는 것을 발 안의 대비가 말렸다.
“성하, 잠시 조용해라. 김 찬성도 조용하고…자, 수상의 의향을 들었으니 이번은 원상의 의향을 들어 봅시다.”
사 대의 임금을 먼저 보내고 지금 오 대째의 임금을 맞으려는 백발 재상 정원용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대왕대비전마마의 하교에 대하여 신이야 어찌 다른 의견이 있사오리까? 분부대로 거행할 따름이옵니다.”
“그럼 좌상의 의견은?”
“신도 어찌 다른 의견이 있사오리까? 대왕대비전마마의 하비(下批)는 신으로서는 용훼(容喙)하지 못하는 법이오니 처분대로 거행할 따름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