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은 이 말을 들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되었다.
“에익! 그게 무슨 말이람…”
흥선은 벌떡 일어섰다.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 가지고 흥선은 입술을 떨었다.
병철은 여기서 큰 소리로 웃었다.
“무얼, 대감도 참예했지? 나도 짐작이 안 가는 바는 아니지만 아직껏…”
흥선은 그 뒷말을 듣지를 않았다. 그리고 발로 방을 차고 중얼중얼 무슨 저주의 말을 퍼부으면서 작별도 고하지 않고 나갔다.
“대감! 대감!”
말 없이 돌아가는 흥선의 등을 향하여 병철은 몇 번 고함쳐 보았다. 그런 뒤에 그 성나서 돌아가는 꼴이 우스워서 하하하! 웃었다.
이전 같으면 이런 일에 성낼 흥선이 아니었다. 이보다도 더 크고 역한 수모를 받고도, 정 참을 수가 없으면 돌아 앉아서 한참을 참아 가지고는, 도로 얼굴에 비굴스런 미소를 띄고 바로 앉고 하던 흥선이었다. 이 급작스러운 '성격의 변화'를 권문들은 재미있게 여기었다. 그리고 흥선이 오기만 하면 성낼 소리를 부러 하고, 성나서 투덜거리며 돌아가는 흥선은 웃으며 보고 하였다.
“차차 늙어 가면 노염도 많은 법이야. 흥선도 올해 벌써 마흔 둘이지? 분명히 경신생이지? 노염도 차차 많아 갈 나이야.”
“철을 팔아서 노염을 바꾼 셈인가? 노염을 알기 전에 철을 좀 알지. 이젠 들 나이도 됐는데…”
“철은 연년이 줄고, 노염은 연년이 는다. 주책 없는 인물!”
중인은 중인대로, 상놈은 상놈대로, 양반은 양반대로 모두 한결같이 흥선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연년이, 다달이, 지각이 줄어 가는 흥선을, 권문 거족들은 한 때의 심심풀이를 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어릿광대로 여기었다. 흥선이 가는 곳마다 웃음의 꽃이 피고 하였다.
밖에서도 이전과 달라진 것과 같이, 가정 안에서도 흥선도 또한 이전과 달라졌다. 흥선이 가정에 돌아오는 시간은 극히 짧았지만, 그 셋은 시간 사이에는 아주 엄하고 규율 있는 가장이었다. 본시부터도 가정에서는 비교적 엄격한 가장이었지만, 난행의 돗수가 더하여 가면서 그 엄격함도 더하였다.
사랑에서는 천하장안의 네 사람의 친구를 모아 놓고 집이 무너질 듯 떠들다가라도, 발이 내실에만 들어서게 되면 얼굴에 나타났던 경한 표정은 씻은 듯이 없어지고, 순식간에 엄하고 규칙 있는 가장으로 변하고 하는 것이었다.
“재황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