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 도끼와 어떤 날 어떤 집 제사에서 흥선을 만났다. 본시 흥선의 행사를 아니꼽게 보던 이 도끼는, 처음에는 흥선과 대하기조차 귀찮아서 외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좌석에서 먹기에 급급하여 염치를 돌아볼 줄을 모르는 흥선은, 여기서 한 잔 저기서 한 조각 끊임없이 먹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도 먹기에 급급하였기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의 옷에 장이며 술을 마구 뿌렸다. 이 도끼는 처음 한동안은 차차 옴쳐 들어가며 그것을 피하고 있으나, 정 참을 수가 없어서 드디어 고함을 질렀다.
“대감, 며칠 굶으셨소?”
한참 먹기에 정신이 팔렸던 흥선은 도끼 영감의 말에 눈이 퀭하여, 어리석은 웃음을 띄고 도끼를 바라보았다.
“대감! 속 좀 차리오. 대감 댁 할아버님의 체면을 보아서라도 속 좀 차리오. 그렇게 시장하거든 이따가 우리 집으로 오시오. 그러구 대감 댁에 모신 위패는 모두 묶어서 다른 데로 가져다 모시시오.”
잠시 어리석은 미소로써 도끼를 바라보면 흥선은 겨우 입을 열었다.
“다른 데 모시려두 누가 받아 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영감 드리리까?”
“에이! 사람 같지 않은 것!”
도끼는 뒷발로 방바닥을 차면서 일어나서 자리를 피하였다.
이렇듯 더욱 난행을 거듭하는 동안, 흥선의 성격이 이전과 다르게된 또 한 가지의 점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전엔 예사로이 받던 일도 지금은 성을 잘 내는 것이었다. 대관 댁을 기신기신 찾아다닐 때에, 이전에도 많고 많은 수모를 받았지만, 한 번도 얼굴에 나타내어 성내어 본 적이 없는 흥선이었다. 그런데 이즈음은 차차 노여워하는 일이 많아졌다.
작다란 몸집, 뾰족한 얼굴을 새파랗게 하여 가지고, 노여운 듯이 중얼거리고 돌아가는 양이, 도리어 권문들에게는 재미스러워서, 그들은 일부러 전보다 더 많이 흥선을 놀렸다.
어떤 날 흥선은 김병기의 내종사촌 되는 남병철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남병철은 역시 그의 외숙을 배경으로 삼고 당당한 세력을 잡고 있는 권문이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내 맏아들 재면이를 종친부(宗親府)의 무슨 관직이라도 하나 부탁하고자 왔습니다.”
이 날은 흥선은 술도 안 먹은 모양이었다.
병철은 잠시 흥선의 얼굴을 보다가,
“대감 댁 맏도령은 대감과 달라서 좀 어릿어릿하답디다 그려?”
하였다. '대감과 달라서'라 하는 말은 '대감과 같이'라는 반어(反語)였다.
“네, 좀 어리석기는 하지만 다 큰 녀석이 뻔뻔히 놀고 있는 꼴이 보기에 민망해서…”
“게다가 대감, 대감께 은밀히 충고하거니와, 이즈음 대감 좀 주의하시오. 이번 이하전이 역모에 대감도 한 몫 끼었다는 세평입니다. 그러니까 대감 댁 도령을 어떻게 주선을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