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이 불러서 작은아들이 이렇게 대답하면, 흥선은 그의 눈을 힐책하는 듯이 굴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소년은 황급히 자기의 말을 정정하는 것이었다.
“불러 계시오니까?”
“오냐! 두멘 묘 오너라.”
그러면 소년의 의장에 가서 갓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옷벌 의대도 갈아 입으십니까?”
“아니로다. 입는다는 말은 쓰지 않는다. 옷도 잡수신다고 해야 한다.”
이 무뢰한 이하응이 무슨 필요로 제 작은아들에게 대궐에서 밖에는 통용되는 곳이 없는 궁화(宮話)를 가르치나?
“수건(手巾)이 아니라 수긴이로다. 바지는 봉지라야 한다. 저고리는 등의대라 한다. 머리는 마리, 눈은 안정, 코는 비중, 손은 수장, 발은 족장, 어깨는 견부, 허리는 요부, 상투는 치, 이빨은 어치, 혀는 설상, 귀는 이부, 젖은 유도―진지는 수라, 차는 다탕, 약은 탕제…”
소년은 까닭을 몰랐다. 자기의 지금 아버지에게 배우는 기괴한 언어가, 어느 나라에서 혹은 어떤 속에서 사용되는 말인지 그것조차 몰랐다. 그리고 단지 아버지가 가르쳐 주니 배울 따름이었다.
그 언어, 동작, 마음―모든 점에 대하여 작은아들에게 대해서는 감독과 감시가 여간 심하지 않았다. 거리에 나가서 동리 허튼 애들과 돈치기를 하며 노는 것은 괜찮으되, 가정 안에서 하인을 부린다든가 다른 가인들에게 대하여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사소한 일까지도 감독하고 주의하였다.
어질고 현명한 부인은 지아버니의 하는 일을 간섭하지 않았다. 만약 가정에서도 흥선이 밖에서와 마찬가지의 난행을 한다 하면, 부인은 당장 어린아들의 훈육을 아버지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밖에서는 별별 망칙한 소문을 다 내는 흥선이로되, 가정에 들기만 하면 엄격하고 규율 있는 가장이 되는지라, 부인도 흥선의 훈육을 방임하였다.
부인은 아들이 지금 배우는 언어며, 행동이 어디서 통용되는 것인지 그 점은 짐작이 갔다. 그러나 자기네의 아들이 그것을 배울 필요가 어디 있는지는 알지 못하였다. 배움으로써 손해는 없는 일이며, 더욱 이 왕가의 근친으로 태어난 집안인지라 상식상 가르치는 것이어니, 이만큼 짐작하고 부드러운 미소로써 이 가르치고 배우는 부자를 보고 하였다.
이 나라의 양반 집안의 전형적 현부(賢婦)인 흥선 부인은, 지아버니 흥선이 밖에서 부리는 난행을 책하지 않았다. 밖에서 아무리 난행을 할지라도, 일단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엄숙한 태도로 자손을 훈육하는 그 지아버니를 존경하고 사랑할 따름이었다.
가내는 평온하였다. 단지 가난하여 생활상 부자유가 많은 것뿐이 이 집안의 흉점이지, 그 밖에는 나무랄 데가 없는, 안온하고 점잖은 가정이었다. 이 가운데서 소년은 몸과 영이 무럭무럭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