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차차 흥선이 타락되어 들어가는 것을 볼 때에, 사람들은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왕족으로서 너무 잘난 체하다가는 그 화가 몸에 및는고로, 그것을 미연중에 피하고자, 혹은 흥선이 부러 타락하는 것이 아닌가―고. 그러나 차차 타락의 돗수가 넘어서 과하게 된 때에는, 모두 흥선을 내버리고 만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흥선과 가까이 사귀던 영어 김병국도, 다른 사람의 예에 빠지지 않고, 흥선의 은퇴를 단지 벼슬에 마음이 없어서하는 일이거니 하였다.

 

은퇴한 흥선이 차차 타락할 때에는 처음에는 경이의 눈으로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흥선과 가까이 사귀고 흥선의 사람됨을 아는 영어는, 흥선이 유혹에 이기지 못하여 타락될 인물은 결코 아님을 넉넉히 알았다. 그러는 동안에 김씨 일문에서는 늘 서로 수군수군 의논해 가면서 왕족 중의 좀 똑똑한 인물을 점고하여 처치하고 하였다. 역시 김씨의 한 사람으로 그 수군거림에 참가하고 한 영어는, 비로소 흥선의 타락의 원인을 알았다. 똑똑히 굴다가 화를 보느니, 못나게 굴어서 목숨을 보전하려는 심경을 알았다.

 

이전에 흥선의 인물을 잘 알던 영어니만큼 흥선의 타락이 눈물겨웠다. 그만큼 잘나고 의지가 굳고 억세던 흥선으로 하여금, 타락을 가식하지 않으면 목숨을 보전치 못할 지금의 세태를 밉게 보았다. 흥선이 일부러 타락을 가식하는지라, 구태여 그것을 깨뜨릴 필요는 없었다.

 

자기의 모든 친척들이 흥선을 웃고 경멸하고 놀릴 동안도, 영어는 결코 그런 야비한 희롱에 참가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같이 지낸 친구로 끝끝내 대접하였다. 가난하고 타락된 흥선에게 대하여, 그래도 호의를 보여주는 사람은 영어 형제뿐이었다. 이제는 거리의 무뢰한 밖에는 찾는 사람이 없는 흥선 댁을, 영어는 일부러 간간 찾았다. 흥선이 영어의 집에 찾아오면, 지나간 시절에 같이 놀던 친구로 여전히 대접하였다.

 

이제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흥선―가난하나 또한 구걸할 곳도 없는 흥선의 곤경을 짐작하고, 때때로 적지 않은 금전을 보내기도 하였다. 흥선 댁 도령을 위하여서도 '연줄 값'이라는 명목으로 백 냥 이백 냥씩 보내고 하였다. 흥선 댁 작은도령이 이 '사동 아저씨'를 찾아 오기라도 하면, 친조카나 다름 없이 귀애하고 하였다. 당당한 왕손으로서 단지 그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마음에 없는 타락된 행동을 하며, 뜻에 없는 비루한 언사를 하며, 가는 곳마다 수모를 받으며 다니는 흥선이 영어에게는 눈물겨웠다.

 

“상갓집 개!”

 

“흥설군!”

 

“먹걸리 대감!”

 

자기네의 일족이 흥선에게 대하여 이런 이름을 지어 주고 기뻐할 때에, 역시 그런 이름으로 부르며 웃기는 하지만, 내심으로는 흥선에게 대한 동정을 그냥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지라, 흥선도 그것을 짐작하고, 갑자기 어디 갈 일이라도 있으면, 영어에게 행차 하인을 빌어 가기도 하고, 가난한 흥선의 초라한 생일놀이나마, 놀이가 있을 때에는 영어를 반드시 청하고 하였다. 흥선의 작은아들 재황 소년도 영어에게만은 격의가 없이 놀러 다니고 아저씨 아저씨 하며 따랐다.

 

이 명철하던 공자가 오늘날같이 타락되지 않으면 안될―그 심경에 영어는 끝 없는 동정을 한 것이다. 그 뿐―그 이상 한 걸음 더 들어가서 흥선이 어떤 원대한 음모 아래 표면 타락을 가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까지는 생각이 및지 못하였다. 소위 이하전 역모 사건으로 김씨 일문이 모여서 의논을 하다가, 지금 남은 종친 중에 똑똑한 인물이 이제는 없는가고 일일이 점고할 적에 흥선의 이름도 그 때 올랐다.

 

흥선의 이름이 나오매 그 때 모두들 무릎을 두드리며 웃었다. 흥선 따위는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 때 영어는 속으로 커다랗게 수긍하였다. 만약 흥선으로서 내로라고 그냥 접접거리며 다녔으면, 이 날 반드시 흥선의 이름 위에 흑표가 찍혔을 것이다. 눈물겨운 타락 생활을 계속하였기에 그 점고에서 패스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뒤에 영어는 기괴한 일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