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기는 멋 없어 교만하게만 굴어서 흥선군을 망신 준 일이 여러 번 있지 않습니까?”
“있지.”
“형님!”
“?”
“언제 흥선군을 한 번 아니 찾아보시렵니까?”
“?”
“그 마음을 한 번 떠보면 좋을 듯해서…”
“그 사이 이십 년 간을 그런 수모 멸시를 받으면서도 한 번도 안색을 변한 일이 없는 흥선군이 그렇게 쉽게 넘어갈 듯싶은가? 이러고 저러고 할 게 없이, 우리는 우리 일만 충실히 보세나. 만약 자네 눈이 글러서 흥선군은 사실 한 개의 치인이라면 말할 것이 없거니와, 그렇지 않고 마음에 무서운 패력을 감춘 사람이라면, 소위 지금의 당파 문제 같은 걸로 유혈의 참극까지는 내지 않을 것일세.
그러니깐 두고 보세. 자네도 흥선군에게 개인적으로 미움을 사지 않았을 것이고,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원수가 없어. 장래의 일이 어떻게 되리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흥선군이 권세를 잡는 일이 온다 하더라도 우리 형제게까지야 및겠나?”
형의 말을 들으면서 영어도 생각하여 보았다.
만약 자기와 자기의 형의 추측이 옳다 할진대, 장래 과연 무서운 세상은 현출이 될 것이다. 어떤 세상이냐고 누가 묻는다 하면 거기는 대답하기가 매우 힘들겠지만, 지금의 상식으로 추측하기 힘든 별다른 세상이 현출될 듯하였다.
“대궐에 원자(元子)만 탄생되면 문제가 없겠구만―”
“그러면야 문제가 없지. 그렇지만 나는 도리어 흥선군이 권세를 잡는 날이, 사실 한 번 와 봤으면 좋을 듯이 생각하네.”
“왜요?”
“지금 세상은 너무 타락됐어. 우선 나부터 그런 짓을 하지만, 나라 회계에 문서가 없고, 모든 사무가 혼돈 천지고―그 위에 같은 김문이라 해도 근(根)자 세도가 있고 병(炳)자 세도가 있어서 서로 경쟁하고, 병자 가운데도 교동(김병기) 세도가 있고 사동(병학 형제) 세도가 있어서 서로 경쟁하면서, 벼슬을 팔고 학정을 하니 이런 놈의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든지 힘 있는 이가 하나 생겨나서 위에서 꾹 눌러 놓아야지, 그렇지 않았다가는 망하네, 망해. 남이 하는 노릇이니 우리도 따라하기는 하지만 속으로 부끄럽기가 짝이 없어. 우리가 망할지도 한 번 세상이 뒤집혀지면 속이 시원하겠네.”
“그렇지만 우리 나라에는 종친이 정치에 간섭지 못하고 또 산 대원군이 없지 않습니까?”
“그게야 꾸미면 될 것이지. 법령이란 내기 탓이 아닌가? 종친이 정사에 간섭지 못한다 해도 세조 대왕께서 잠저시에 영의정을 지내신 일도 있고, 선례(先例)가 없는 바도 아니니깐… 좌우간 흥선군이 지금 치인의 행동을 하는 것이 가면이라 하면, 장래에 그맛 고생도 예상하지 않겠나? 무슨 수단을 죄 꾸미고 있을 것일세.”
“대왕대비마마를 인연해서 흥선군이 일어선다 하면 조성하, 조 영하 등 조씨의 세도할 날이 오겠지요?”
“글쎄, 흥선군이 조씨를 중용(重用)할지? 인물이 잘났으면여니와, 그렇지 못하면 경이원지해 버릴걸. 이전부터 벌족(閥族)의 세력을 몹시 미워했으니까―”
“어명으로 하는 일에 대비인들 어떻게 할 수 없지.”
그 날이 분명히 올지 안 올지는 확언을 할 수가 없으나, 지금의 타락된 환경에 앉아 있는 이 형제(그다지 마음이 꾀어 박히지 않은)는 일종의 공포와 호기심이 섞인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렸다. 혹은 자기네 일족이 잔멸할지도 모르는 그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