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이 이 놀라운 소식을 자기의 부인에게 알 게 한 것은, 그 날 밤도 깊어서 집안 하인들도 모두 꿈의 나라에 헤매는 삼경쯤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흥선도 극도의 흥분은 좀 삭아져 있었다.
흥선이 오늘 대궐에 들어가서 조 대비를 뵙고, 거기서 의논한 의논이며, 겸하여 그 사이 십 수 년 간을 마음 속에 깊이 감추어 두었던 자기의 심경을 처음으로 자기의 부인에게 피력할 때에도 부인은 놀라지 않았다. 어떤 사건, 어떤 일이라도 이 부인을 놀라게 하지 못한다. 정유년(丁酉年) 겨울 그의 일생을 끝내기까지의 팔십 년 간의 짧지 않은 생애에, 어떤 놀라운 일이 돌발할지라도, 이 착하고 어진 부인은 고요히 그 사건을 맞은 것이었다.
이 날의 이 광희할 만한 흥선의 보고를 듣고도 부인은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한 뒤에 고요히 손을 들어서 이미 잠든 작은아들 재황이를 가리켰다.
“낮에 장난이 심하더니 곤히 잡니다.”
흥선도 그 아들을 보았다. 지금 철 모르고 곤히 자는 이 소년―일의 진행에 그다지 착오만 안 생기면, 장래에는 아들이라는 명칭으로는 도저히 부를 수도 없는 수년이었다. 낮에 장난이 심했기 때문에 얼굴이 모두 덜민 소년은, 무슨 꿈이라도 꾸는지 간간 입을 뻥싯거리며 깊이 잠들어 있다.
흥선이 자기의 아들의 위에 부었던 눈을 부인의 편으로 돌릴 때에 부인은 말을 계속하였다.
“그 일이 장래 이 애에게 행복되겠습니까?”
그리고 거기 미처 흥선이 대답을 못할 때에 부인의 말이 뒤를 좇았다.
“지금도 아무 불만이 없이 잘 지내는데요.”
만약 장래 그 일이 행복이 못 된다 하면, 왕위조차 부럽지 않다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아니, 이 애의 행복 문제가 아니라, 온 국민의 행복 문제외다. 학정, 토색, 외척 득세, 어지럽고 어지러운 세상에…”
“대감,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런 개혁은 모두 대감이 하실 일이지요? 어머니된 자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천 사람이 망하고 만 사람이 망할지라도 내 자식 하나만 편안하면 그뿐이지, 남을 잘 살게 하자고 내 자식을 내놓기는 어미의 마음으로는 힘든 일이외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편네로서 대감 하시는 일에 이렇다 저렇다 말씀은 안 하리다마는, 제 생각뿐으로는 그저 이대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으며 지내는 편이 제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외다. 그렇지만 이 애는 부인에게만 아니라 내게도 자식되는 애―낸들 왜 좋지 않은 일에 넣고 싶겠소? 이 뒤에 그런 날이 온다 해도, 책임질 힘든 일은 내가 질 게고, 영예돌아올 일은 이 애에게 돌리고―그래서 거대하고 부귀한 나라의…”
대군주가 되면 오죽이나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흥선은 채 맺지를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공상적이요 너무도 허황한 그 말은 차마 입 밖에 나오지를 않았다.
부인도 아들의 얼굴을 굽어 보았다. 자기의 신상에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또는 지금 자기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기를 위하여 어떤 의논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는, 연하여 무엇이 어떻다고 일을 벙싯거리며 곤하게 잠자고 있었다.
한참을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가야 부인은 머리를 지아버니에게로 돌렸다.
“마음대로 하세요. 대감의 의향에 계시기만 하면 어떤 일이든지 탓하지 않으리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편네가 무슨 참견을 하리까?―마는 이 애의 행불행은 대감께 책임을 맡깁니다. 불행하는 날에는 저도 몇 마디의 불평을 말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들어서 귀여운 듯이 잠든 소년의 윤기 있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뒤로부터는 흥선은 자기의 난행의 방법을 고쳤다. 이하전이 죽은 뒤부터는 가슴이 송구하여 더욱 난행을 심하게 하기는 하였지만, 대비와의 밀약이 성립된 뒤로부터는 한 가지의 행동을 더 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