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성하, 이것 보게. 소위 국록이라 하면 얼마나 많은 듯이 생각되겠지만 이게 아닌가? 나도 정일품 현록대부라는 덕에 나라에서 한 달에 쌀 두섬 여덟 말과 콩 한 섬 닷 말씩을 타 먹겠지. 자네도 자네 품계에 따라서 타 먹을 게야. 그렇지만 이 봉록으로 자네 생활이 유지되나?”

 

녹봉이 이런 것은 흥선이 지적하지 않을지라도 성하도 아는 바였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생활이 유지되느냐는 질문은 성하에게 있어서는 기이한 질문이었다.

 

“하옥 김좌근―하지, '정일품 보국 송록대부 김좌근'일세그려. 이름은 좋지―그렇지만 나라에서 내어 주는 녹봉은 쌀 두 섬 여덟 말, 콩 한 섬 닷 말밖에는 약간한 직봉(職俸)밖에 없어. 그러나 김좌근 하면 그 집안의 식구가 얼마나 되나? 청지기가 이십여 명, 별배가 이십여명, 구종도 또 그만하지. 게다가 그놈들의 여편네 자식 모두 있다. 사랑 친솔만 말일세.

 

내실에는 또 얼마나 하인 비복들이 많은지 몰라. 적어도 영의정의 집에 달려서 먹는 생명이 백 명이 썩 넘을 걸세. 그 백여 명의 식솔을 거느리고 있는 주인 대감의 녹봉이 얼마냐 하면, 겨우 쌀 두 섬 몇 말 콩 한 섬 몇 말, 여기 현직에 대한 녹봉 약간―말하자면 영상 집 고양이 새끼 한 마리도 먹다 부족할 것밖에는 못되네그려…”

 

당시의 제도상 무슨 벼슬이든 하면, 종구품의 말직에 지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백주에 보행(步行)으로 길을 못간다. 하다 못해 나귀 한 마리, 마부 하나, 하인 하나, 이만한 하인이라도 있어야지, 그렇지 못하고는 길을 나가지를 못한다. 신분이 초헌(軺軒)을 타게 되면, 적어도 초헌이러라는데 부축할 별배 여덟 명 이상과 구종 여덟 명 이상은 가져야 한다.

 

“재상이 죽은 뒤에 그 장례 비용이 없는 것을 자랑했다는 것은 옛날 일―지금은 한 번 행차에도 그만한 위엄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게―제도가 그렇게 된 이상―그리고 녹봉이 또한 그렇듯 박힌 이상, 매관 매작을 하지 않고서 어떻게 살아가겠나? 제도부터가 벌써 매관 매작이나 학정을 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하게 되었으니깐, 그 사람들만 잘못했다고 책할 것이 아니라네.”

 

거대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제도를 꾸며 놓고 그 위에 적은 녹봉을 내어 주는 것은, 배면으로 매관 매작을 장려하는 일로 볼 수도 있었다. 아직껏은, 그저 당연히 그런 일이거니 하여 두었던 일에 대하여, 흥선의 지적을 듣고 성하는 미소로 경이의 눈을 떴다. 그리고 흥선의 얼굴을 뚫어져라 하고 쳐다보았다.

 

흥선은 알아 듣겠느냐는 듯이 머리를 기울여서 성하를 들여다보았다.

 

외척의 발호라 하는 것이 또한 커다란 문제였다. 이전 대궐에서 조 대비와 흥선이 마주 앉아 밀약을 할 때에, 이제 김씨 일문의 세력을 깨뜨리고, 그 대신 다른 세력을 세움에는 조 대비를 배경으로 삼은 조씨 세력을 주장하마 하는 것이 한 개의 커다란 조건이었다.

 

그리고 또한 조 대비가 지금 암암리에 활동을 하면서 일변 흥선을 불러들이며 하는 것은, 결코 이 조선이라는 땅 위에 좋은 정치를 펴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바가 아니요, 오로지 흥선군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면 그 연조로 조씨의 세도가 생길 것이며, 오늘날의 김씨들의 차지한 모든 귀한 자리가 조씨들의 손으로 들어오리라는 야욕 때문이었다.

 

그러한 조 대비에게 대하여 그 때 흥선은 맞장구를 치기는 하였지만, 이것은 흥선은 꿈도 안 꾸고 있는 일이었다. 김씨를 없이하고 조씨를 끌어들이면 무엇하랴? 그것은 이리를 내쫓고 호랑이를 끌어들이는 데 지나지 못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