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대비와 흥선의 사이에 맺어진 밀약―그것은 어떤 것이었던가?

 

김씨 일문에게 인손이를 잃고 거기 대한 복수의 염 때문에 눈이 어두운 조 대비는, 목적을 위하여서는 수단을 가릴 줄을 몰랐다.

 

“종실 공자 중에 한 영특한 소년을 신이 추천하리까?”

 

하면서 흥선이 자기의 둘째아들 재황이를 조 대비께 추천할 때에, 조 대비는 그 소년의 학식이 어떤지 인재가 어떤지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흥선이 추천하는 그 소년을 받는다 안 받는다의 말이 없이 제 이단의 문제로 들어갔다. 

 

즉―상감께서 후사가 없이 천추만세하는 날에, 그 다음으로 보위에 오르는 사람은 승하한 상감의 후사가 아니요, 당신의 지아버님되는 익종의 후사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당신의 아드님 헌종이 순조 대왕의 대를 잇고, 그 뒤에 현 상감조차 순조 대왕의 대를 이어서 그만 절사(絶嗣)가 된 그 아버님의 대를 조 대비는 어떻게 하여서든지 부활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의견에 대하여도 흥선은 찬성하였다. 이제 새로 들어오는 승계자는 조 대비를 양어머니로 삼고 들어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새로운 상감이 들어오면 그 때부터는 김씨의 세력을 뚝 잘라 버리고, 김씨 일문을 잔멸시켜야 하리라고 이런 의견을 제출할 때에도 흥선은 찬성하였다. 너무도 뻗은 그 세력을 꺾어 버리고, 조 대비를 배경으로 한 조씨 일파와 흥선 자신의 친구들로써 내각을 조직하여 권세를 휘둘러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인정과 기지에 밝은 흥선이 고귀한 노부인의 마음을 꿰어 보고 잡아당기기는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었다. 조 대비의 김씨 일문에게 대한 노염이 몹시 큰 것을 보기 때문에, 흥선은 침이 마르고 혀가 닳도록 김씨들을 욕을 하였다. 그리고 만약 자기가 김씨 일문의 유에 올라설 날이 오기만 하면, 김씨 일문은 종자도 남기지 않고 잔멸시킬 듯이 말하였다.

 

이 날 조 대비와 흥선의 사이에 성립된 밀약은 무론 '확실한 계획'이랄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만약 장래 여차한 세상이 이르면, 여차한 수단을 써서 여차한 정책을 베풀겠다는 막연한 의논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비록 막연한 의논이나마 이후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조대비는 다른 모든 왕족을 젖혀 놓고 흥선을 부르고, 그때 불리기만 하면 흥선은 조 대비를 위하여 견마의 힘을 다하겠노라는 밀약이 성립되었다.

 

하늘이 상감께 후사를 주려고 중궁이나 어귀 상궁의 몸에서 원자가 탄생할지는 모를 일이나, 왕실 공자 가운데서 동궁을 간택한다는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대왕대비이며 종실의 어른인) 조 대비의 권병으로서 눌러 버려서, 상감 재세(在世)할 동안은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동궁을 간택하지 않겠다는 밀약도 성립되었다.

 

“대감만 믿으오.”

 

“대비전마마만 믿사옵니다.”

 

이리하여 이 날 흥선이 성하의 인도로 입궐하여 조 대비께 뵙는 몇 시간 동안에, 커다란 사건 하나는 여기서 빚어진 것이다. 후사가 없이 상감이 천추만세하는 날에는,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아들 이 재황이가 영립되어, 익종의 대를 이어서 제 이십 육대의 조선 국왕이 되리라는 놀랍고도 커다란 사건 하나이, 그것은 마치 지금부터 십여 년 전, 헌종 대왕의 황후가 위중할 때에, 그 때의 대왕대비이던 김씨와 김 대비의 오라비되는 김좌근이가 헌종 승하한 뒤에는 '강화 도령'을 모시어다가 순조의 대를 이어서 제 이십 오대의 조선 국왕을 만들자고 의논한 것과 마찬가지로―

 

표면 모든 흥분과 긴장된 감정을 감추고, 그 날 흥선은 천연한 낯으로 조성하와 함께 자기의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