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야 영초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혹은 자네 말이 옳을지도 몰라. 잘못 생각했는지도 몰라. 옳고 글코를 막론하고, 군가(君家)에 대해서 상당한 대접은 해야느니. 우리 문내에서 모두 흥선군을 수모하고 멸시해도, 나는 아직껏 그래 본 적이 없네. 우리의 이해 관계를 둘째로 두고, 우리가 이 나라에 태어난 이상, 이 나라 임금의 친척되는 이를 어떻게 멸시하겠나? 흥선군이 잘났건 못났건, 나는 상당히 늘 대접하네. 한 때 철없는 때는 내 세도를 자세삼아 수모도 했고 멸시도 했지만, 내가 철든 이래로는 푸대접을 해 본 일이 없네.”
“네, 저도 무론 전에 흥선군에게 푸대접을 하거나 한 일은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그 이가 그런 난행을 할까 하고 기회 있을 적마다 생활상의 조력도 하고, 나 보다 앞에서 다른 사람이 흥선군을 욕을 뵈려면 감싸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단지 동정심으로만 아니라, 자위책으로라도 소홀히는 대접지 못할까 합니다.”
동생의 말을 듣고 있던 영초는 머리를 들어 동생을 고요히 바라보았다.
“흥선군의 작은도령이 무슨 생인가?”
“금년 열 살인 줄 생각합니다.”
“재…?”
“재황이.”
영초는 또 말을 끊었다. 잠시 있다가야 말하였다.
“여보게, 무서운 세상이 나타나리.”
“네…”
“만약―만약 말일세, 자네 추측대로 흥선군의 그 사이의 난행이 오로지 자기의 인물을 감추려는 가면이요, 그 가면 아래서 무서운 꿈을 도모하고 있었다면 장래에는 무서운 세상이 나타나리. 너 나 할 것 없이, 큰코 다칠 무서운 세상이 나타나리. 만약 흥선군이 이전 오위도총관 시대의 그 지력이 그냥 있고, 흥선군이 권력을 잡는 날이면, 필연코 무서운 세상이 나타날 것일세.
나도 짐작이 가는 바이지만, 이전 도총관 시대에, 뜰의 먼지 하나, 추녀의 거미줄 하나, 그 양반의 눈에 벗어난 것이 없었네. 만약 그 양반이 나라의 권리라는 것을 잡기만 하면, 남으로는 제주로부터 북으로는 백두산까지, 어느 소나무 한 그루, 어느 우물 하나, 그 양반의 손이 가 닿지 않을 것이 없을 것일세. 가로 뻗은 쓸데없는 가지는 잘라 버릴게고, 맑지 못한 우물은 메워 버릴 게고…찬찬하고 끈끈하고도 왈왈한 성미―자네 말과 같은 세상이 온다면 무서운 세상이 될 걸세.”
“그러면?”
“그러면 무얼, 별다른 일이야 있겠나?”
“그러면 우리 일문은?”
“김가 이가 할 것 있겠나? 전에 제조(提調) 시대에도 본 바여니와, 인재를 알아보는 눈은 무서울 겔세. 그 사람이 인재일 것 같으면 상놈 양반 구별하지 않고 쓰고, 무능할 것 같으면 아무런 좋은 배경을 가졌을지라도 내던지고말고…그 때문에 그 때도 말썽이 많았던 것은 자네도 기억하겠네 그려.”
영어도 몸을 떨었다. 인재 무능의 문제가 아니었다. 김씨 일문은 당연히 흥선의 눈으로 보자면 원수일 것이다. 그 원수 일문에 대한 처치를, 만약 그런 날이 온다하면 흥선은 어떻게 하려는가?